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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에서 소외된 비운의 황녀 ‘덕혜옹주’를 세상에 알리며 소설가로서 입지를 다진 작가 권비영의 신작. 역사와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영혼들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그가 다시 일제강점기로 돌아갔다. 이번엔 기록에 남아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명씨로 살다가 잊히거나 잊혀져갈 우리 소녀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절대로 우리가 쉽게 잊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혹독한 시련의 세월이었던 일제강점기.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는 정치 외교적인 사안과 엮이며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이 상처를 위해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몽화』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된 소설이다. 저자는 일본의 폐탄광을 살펴보다 그 앞에서 무심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 꽃나무를 바라보게 된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마음속 씨앗도 드디어 꽃을 피우게 된 순간이었다. 

주재소 순사를 때린 죄로 아버지는 만주로 도망가고 어머니가 그런 아버지를 찾으러 나서면서 홀홀단신 경성 이모네로 오게 된 영실. 그의 눈앞에 개천 건너편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두 소녀 은화, 정인이 나타난다. 부모를 다시 만날 기약은 없고, 눈앞에 놓인 운명이 기생이며, 아버지가 일본 앞잡이라 손가락질 받는 저마다의 상처 속에서 영그는 우정은 서로에게 살아가는 힘이 된다. 하지만 나날이 독이 오른 듯 일본제국주의의 핍박이 심해지는 1940년대, 역사의 미친 풍랑은 급기야 세 소녀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데……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줄거리

경성의 어둑어둑한 거리 ‘이모네 국밥집’ 앞에서 어머니는 딸의 등을 떠밀고 사라진다. 이로써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와도 헤어져 홀홀단신 이모네로 오게 된 영실. 팍팍하고 신산한 이모의 살림을 바라보며 이제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음을 직감한다. 부모 생각과 못다 마친 중학교 학업 때문에 우울하던 영실은 개천 건너 으리으리한 기와집들을 구경하다, 그곳에 사는 두 또래의 여학생 은화, 정인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삶도 순탄치만은 않다. 은화는 조실부모하고 기생집 주인에게 길러져 자신도 곧 기생이 되는 운명을 맞아야 한다는 두려움에 떨었고, 정인은 아버지가 일본 앞잡이인데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먼 타국으로 보내려 해 우울증을 앓는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막막한 삶 속에서 서로만이 살아가는 힘이 되어 우정은 한층 더 돈독해진다. 하지만 조선을 말살시켜 흡수해버리려는 일본제국주의의 야심으로 핍박은 날로 강도를 더해간다. 이유 없이 혹은 일자리를 준다며 소녀와 장정들이 사냥되듯 끌려가고 이제는 부모가 준 자신의 이름도 쓸 수가 없어진다. 역사의 미친 풍랑은 급기야 세 소녀도 갈기갈기 찢어 놓는데……. 

■ 출판사 서평

부모도 나라도 없던 환란의 시절,
그래도 희망을 꿈꾸던 세 소녀가 있었다

여기 세 소녀, 영실, 은화, 정인이 있다. 영실은 홀홀단신으로 경성 이모네로 온다. 아버지가 주재소 순사를 때리고 만주로 도피한 후, 아버지를 찾겠다고 어머니마저 영실을 이모에게 맡겨둔 채 만주로 떠났다. 부모와 외따로이 떨어진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이모 역시 국밥집을 운영하며 신산하게 살고 있어 못다 마친 중학교 학업을 계속할 수 있으리란 희망도 깨어진다.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그의 눈앞에 운명처럼 두 소녀 은화, 정인이 나타난다. 

은화는 부모를 잃고 화월각이라는 큰 기생집 주인의 손에 자랐다. 빼어난 외모에 두 친구에 비해 성숙하며 똑똑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기생이 되는 것이 길러준 것에 대한 보은이라는 부담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한편, 정인은 아버지가 일본 앞잡이인데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먼 타국으로 자신을 보내려 해 우울증을 앓는다. 이 세 소녀는 독립군의 은신처인 다리 아래 동굴을 아지트 삼아 모여, 우정을 나눈다. 숨이 막히게 괴로웠던 일들도 별천지 같은 동굴에서 친구들과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지고 살아갈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영원할 것만 같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상황은 녹록치 않다. 일제의 핍박은 독이 오른 듯 그 잔인함을 더해갔다. 정인은 결국 아버지의 강제로 불란서로 떠나고 은화는 기생이 되는 걸 피하기 위해 가출을 감행하다 무서운 곳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홀로 남은 영실은 세상 천지 혼자 남은 것처럼 떨다가 일본으로 떠난다. 과연 이들은 예전처럼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을까? 


얼마 전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와 위안부 문제에 합의한 일을 기점으로 다시 한 번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일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귀향>의 열풍은 이러한 관심을 방증한다. 위안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이 영화는 수익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투자자를 찾지 못해 14년 만에야 빛을 본 저예산 영화다. 하지만 현재, 수 주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해외 배급도 앞두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그들의 상처를 되새기는 것이 우리가 이 문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몽화』가 태어난 계기도 그랬다. 집필 후기에서 권비영 작가는 ‘위안부 문제’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오래 고민해왔으며, 일본의 폐탄광을 살펴보다 그 앞에서 무심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 꽃나무와 떨어지는 꽃송이를 바라보면서 그 오랜 고민이 때를 만난 듯 생명력을 얻었다고 밝혔다.『몽화』는 그 이름처럼 꽃송이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작가는 이들을 끌어안고 칩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춥고 맨발인 영혼들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로 이야기를 엮어갔다. 그들의 삶을 진실성 있게 풀어내어 독자들이 그 속으로 젖어들고 그 아픔에 공감하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문학이 할 수 있는 진혼일 것이다.    

각기 다른 환경에 처한 세 소녀의 일그러진 일상들을 통해 씨줄과 날줄로 얽히는 사람들의 애환을 통해, 존재감도 없이 사라져야 했던 소녀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냄으로써 그 암흑의 시대를 견뎌 온 소녀들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따스한 손길을 건네고 싶었다. 곳곳에, 슬픈 눈빛으로 서 있는, 위안부였던 소녀들의 맨발에 신발을 신겨 주고 싶었다. 그래서 가슴 저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통곡을 함께하고 싶었다. _<집필 후기> 중 

『몽화』는 곱씹어볼 만한 메시지뿐만 아니라, 저자의 전작 『덕혜옹주』에서 검증된 대로 시대극이 주는 매력은 물론 드라마적 재미도 충분하다. 특히 다음 세 가지 요소가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1. 눈앞에 보이는 듯 생생한 1940년대 

삶보다 죽음이 가까운, 온통 절망뿐인 세상이다. 저자는 당시의 혹독한 상황을 역사적 고증을 통해 생생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예를 들어, 은화가 가출하여 내몰린 거리의 풍경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곧 그녀를 잡아먹을 기세로 으르렁 거린다. 잠깐 머문 여인숙의 주인은 의뭉스럽고 집요하게 일자리를 제의하고 길거리의 벽보와 신문엔 위안부 모집 광고가 그녀를 유혹한다. 그리고 과거 화월각에 있었던 기생 언니는 은화에게 차가운 현실을 확인시켜주기도 한다.

- 기생하던 애가 나와서 뭘 하겠니? 힘든 일을 할 것도 아니고…….
은화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얼른 대꾸했다. 또박또박, 잘못된 일을 정정하듯이.
- 언니. 나, 기생은 아니잖아요.
- 엎어치나 메어치나, 그게 그거지. 너, 거기서 살았는데 머리만 안 얹었지 뭐가 다르니?
영란 언니의 말투도 싸늘하게 바뀌어 있었다. 반드르르한 가구나 화려한 장신구들이 갑자기 창이나 쇠스랑 같은 무기처럼 느껴졌다. 그곳은 그녀가 머물 곳이 아니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멍하니 서 있는 은화에게 영란의 말이 화살처럼 꽂혔다. (…)
- 그래, 인생은 어차피 혼자 겪어야 하는 전쟁이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_ p. 122

소설은 위안부뿐만 아니라, 상당 부분 강제 징용 피해 상황도 그리고 있다. 강제 징용 당해 온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을 훼손당한 채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일하는 탄광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옥에 가깝다. 

가장 무서운 고문 도구는 단연 황소의 성기를 말려 만든 채찍으로, 등에 맞으면 살점이 그대로 묻어나올 정도로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것은 황소의 생식기 윗부분에 돌을 매달아 나뭇가지에 걸어서 건조시켜 만든다고 했다. 상국은 그걸 보면서 진저리를 쳤다. 그러면 노무는 슬쩍 눈길을 돌렸다. _ p. 196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탄 덩어리처럼 보였다. 순간, 무엇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이 멍해졌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탄부 하나가 물 호스를 가져와 차 씨의 얼굴에 뿌려 댔다. 차 씨가 움찔거렸다. 아직 숨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탄가루가 씻겨 나가자 해골 같은 차 씨의 허연 얼굴이 드러났다.
- 에이, 조센징! 재수 없다! 빠가야로!
노무는 채찍을 허공에다 내리치며 분을 삭이고 있었다. _ p. 292

2. 개성 강한 등장인물과 케미 

억척스럽고 정 많지만, 남자를 상대하는 데는 이골이나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위해서라면 색을 파는 것도 대수롭지 않은 영실의 이모 을순이라든지, 을순의 정부(情夫)로 일본인이면서도 나라보다는 자신의 이해득실이 더 중요한 의뭉스러운 장사꾼 나카무라, 정인 네 머슴으로 주인댁 아들 대신 강제 징용에 끌려가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지만 약자만 보면 보호하려 드는 우직한 사내 칠복, 정보력 강하고 눈치도 빠르고 상황 판단력도 강해 탄광촌에서 박사로 불리며 칠복의 탈출을 돕는 쾌활한 남자 정한우 등,『몽화』는 세 소녀 외에 마치 박경리 소설 속 인물 같은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이 등장해 극의 재미를 더한다. 

또한 영실을 중심으로 잘생긴 엘리트지만 우유부단하고 허약한 도련님 태일과 머슴 출신이지만 우직하고 영실을 끝까지 보호하려는 칠복과의 삼각관계나, 을순과 나카무라의 사랑과 잇속을 넘나드는 장사꾼적인 애정 관계 역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한축으로 작용한다.

3. 시대의 아이템 - 가투, 시조

소설에서 흥미로운 놀이 하나가 등장한다. 바로 ‘가투’다. 가투의 놀이 방법은 이렇다. 

100장의 카드에 100수의 시조 초장 혹은 중장을 적어 놓고 ‘꽃쪽’이라 부른다. ‘엽쪽’이라 부르는 또 다른 100장에는 같은 시조의 종장만 적혀 있다. 꽃쪽 초장 또는 중장을 읽어서 엽쪽을 찾아내는 놀이, 가투 _ p.104

소설 속에서는 조선 총독부나 경시청 관리들의 부인이나 애인들이 모여 친목 도모를 위해 하는 놀이로 그려지고 있다. 다소 생소한, 이 놀이는 1920년대 선진문물이 가속화되던 시기에 3·1운동에 의해 시조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문학 장르로 자리매김하며 자리 잡았고, 시조에 나오는 망국의 회고나 나라의 근심이 식민지 현실에 대한 심상과 이어져 인기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시조는 가투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 친구들의 정한을 대변하는 장치로 소설 곳곳에 등장하여 한층 더 짙은 정서를 이끌어낸다.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밤중의 광명이 너만 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영실은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윤선도의 <오우가>를 읊고, 은화는 위안부를 겪은 상처로 자살을 결심하며 정민교의 <간밤에 부던 바람에>를 읊는다. 

간밤에 부던 바람에 만정도화 다 지거다
아이는 비를 들고 쓸오려 하는고야
낙환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슴하리오.

부모도 나라도 없다. 안전한 울타리는 광풍에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는 깊은 상처뿐이다. 이제는 죽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면, 희망은 있다. 꽃송이는 떨어졌으나 스러지지 않고 희망을 꿈꾼다. 그래서 태어난 이름이 몽화(夢花)다. 『몽화』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며 현재를 사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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