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外史: 一生必讀古典文學名著

谷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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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的白話長篇小說,自《水滸》、《三國演義》等不朽巨著問世以後,在知識分子及市民階層中都產生了很大的影響,以小說鋪陳歷史,演述英雄豪傑、才子佳人,成為明清二代普遍的文化現象,小說家的地位因此而得到奠定。但後世作品,除了不多幾部能與《水滸》、《三國》並駕齊驅外,大多數在反映社會的深度上或在人物的刻劃上沒有很令人滿意的成就。直到清代康、乾時,才出現了《紅樓夢》與《儒林外史》這兩部在小說史上有劃時代意義的作品。《紅樓夢》把筆觸瞄準封建豪門大院;而《儒林外史》則把鋒芒射向社會,——寫秀才舉人、翰院名士、市井細民,而且是客觀的、寫實的,這在中國小說中是不多見的。

《儒林外史》的作者是康、乾年間名人吳敬梓。吳敬梓(1701一1754),字敏軒,一字粒民,晚號文木老人,安徽全椒人。他出身於歷代顯宦之家,十八歲中秀才,乾隆元年(1735)安徽巡撫薦應博學鴻詞,他托病不就。生平除著有《儒林外史》外,尚有《文木山房集》。《儒林外史》所表現的正是吳敬梓親身所歷所聞,也寄托了他看重文行出處、鄙視功名富貴的高尚情操。

《儒林外史》是一部諷刺小說,是一幅活生生的社會面貌圖。正如惺園退士所說,它摹繪世故人情,真如鑄鼎象物,魃魅魍魎,畢現尺幅;而復以數賢人砥柱中流,振興世教。其寫君子也,如睹道貌,如聞格言;其寫小人也,窺其肺腑,描其聲態,畫圖所不能到者,筆乃足以達之」。臥鬧草堂刻本評說:「慎勿讀《儒林外史》,讀竟乃覺日用酬酢之間,無往而非《儒林外史》。」由此可見,《儒林外史》以生動形象的筆墨,逼真地反映了社會。正因為如此,考據家們曾經把書中的人物一一與歷史上真人真事相比照,推斷出書中人物的藝術原形。還有人特地跑到茶館中去體驗現實,名之為「溫習《儒林外史》」。這一切,都充分說明了《儒林外史》的成功與偉大。

由於吳敬梓具有高深的文學修養,又有豐富的社會閱歷,所以才能把那個時代寫深寫透。他把民間口語加以提煉,以樸素、幽默、本色的語言,寫科舉的腐朽黑暗,腐儒及假名士的庸俗可笑,貪官污吏的刻薄可鄙,無不恰到好處,謔而不苛,不墮落暴露小說的惡趣之中。在藝術結構上,它沒有貫穿到底的人物,而是分階段地展開,正如魯迅先生所說,「如集諸碎錦,合為帖子。雖非巨幅,而時見珍異」。這種體制,對清晚期小說有很大影響,如《海上花列傳》、《官場現形記》等,均模擬《儒林外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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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吳敬梓(1701年—1754年)字敏軒,一字文木,號粒民,安徽滁全椒人,清代現實主義作家。又因自故鄉安徽全椒移居江蘇江寧(今南京市),所以自稱「秦淮寓客」。
生平
世代為地方世族,「家聲科第從來美」,曾祖吳國對是順治年間的探花。祖父吳旦是個監生,伯叔祖吳晟、吳昺皆進士及第,「一時名公巨卿多出其門」。吳敬梓十三歲喪母,十四歲隨父吳霖起至贛榆任所。少時有文名,他「讀書才過目,輒能背誦」,二十三歲考取秀才,此年父吳霖起病故,但止於此,科舉場上一直不順遂。
吳父生前留下了二萬多兩銀錢的鉅額遺產,可是敬梓「素不習治生,性富豪上」「傾酒歌呼,窮日夜」,「生性豁達,急朋友之急」,族人之間有「奪產之變」,「兄弟參商,宗族詬誶」,視之為敗家子,「鄉里傳為子弟戒」。雍正十一年(1733年)二月,與續弦葉氏移家金陵秦淮水亭,住在秦淮河畔的白板橋西,家境已困,仍好交友,「四方文酒之士,推為盟主」。
乾隆元年(1736年),安徽巡撫趙國麟、江寧巡導唐時琳,和學臺鄭江力薦他前去參加博學鴻詞科廷試,他因消渴加劇拒絕,堂兄吳檠、友人程廷祚則落選而歸。晚年生活困頓,要靠買文和朋友接濟度日,「囊無一錢守,腹作千雷鳴」,以至以書易米。每年一到冬天,氣溫苦寒,與朋友在晚上到城外繞行,歌吟嘯呼,稱之為「暖足」。密友程晉芳在《文木先生傳》描述:「出城南門,繞城堞行數十里,歌吟嘯呼,相與應和,逮明,入水西門,各大笑散去,夜夜如是,謂之暖足」「餘生平交友,莫貧於敏軒。抵淮訪余,檢其橐,筆硯都無。余曰:此吾輩所倚以生,可暫離耶?敏軒笑曰:吾胸中自有筆墨,不煩是也。其流風餘韻,足以掩映一時。窒其躬,傳其學,天之於敏軒,倘意別有在,未可以流俗好尚測之也。」。吳敬梓在真州曾投靠革職回鄉的官紳楊凱,由於生活困窘,他有《雨》詩曰:「明晨銜泥問楊子,妻兒待米何時還」,表示希望楊凱資助其生活。
乾隆十九年(1754年),吳敬梓54歲那一年,到江蘇揚州訪友痛飲,微醉之中,反覆朗誦唐人張祜的《縱游淮南》一詩,主要是去投靠兩淮鹽運使盧見曾,十月二十八日(1754年12月11日),與自北京南下的王又曾在舟中痛飲銷寒。歸來之後,酒酣耳熱,痰涌氣促,救治不及,頃刻辭世。時為一月十一日。當時守在床邊的只有幼子吳鏊。生前好友金兆燕和王又曾協助料理喪事, 其時,吳敬梓一貧如洗,「可憐猶剩典衣錢」,盧見曾替他購棺裝殮,遺柩得以歸葬金陵清涼山下。民國文學家胡適,曾蒐求吳敬梓的佚著而不可得。胡適在《吳敬梓傳》說:「安徽的第一大文豪,不是方苞,不是劉大櫆,也不是姚鼐,是全椒的吳敬梓。」
吳敬梓有三子,其中長子吳烺是數學家,著有《周髀算經·補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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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
谷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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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Jun 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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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s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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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Chi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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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res
Fiction / Classics
Fiction / Literary
Literary Collections / Asian / Chi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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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殘遊記》中玉賢(毓賢)和剛弼(剛毅)兩位清代官員,實際就是殘忍與剛愎的代表。魯迅在評論《老殘遊記》時寫道:「摘發所謂清官之可恨,或尤甚於贓官,言人所未嘗言,雖作者亦甚自喜」。《老殘遊記》也並非完全寫實,例如寫莊宮保影射山東巡撫張曜時,便有不公正之描寫。《老殘遊記》一書對革命也有所反感,例如罵過孫中山領導革命是「制犬」、「毒龍」等等。
《老殘遊記》是不經意的作品。美籍華人夏志清認為「從劉鶚在《老殘遊記》中所表現出的藝術才能來看,不是不會撰述面面俱圓的故事,而是他不滿前人以情節為中心的小說,又有野心包攬更高更繁雜的完整性,以與他個人對國計民生的看法互相呼應」;又說:「《老殘遊記》文如其題,是主人翁所視、所思、所言、所行的第三人稱的遊記,這遊記對布局或多或少是漫不經心的,又鍾意貌屬枝節或有始無終的事情,使它大類於現代的抒情小說,而不似任何型態的傳統中國小說。」,結論《老殘遊記》是「近乎革命式的成就」。
1903年《老殘遊記》最早刊於《繍像小説》,作者署名「洪都百錬生」,或署「劉鐵雲」、 或署「丹徒劉鐵雲」。自1903年至2003年以來,《老殘遊記》印行的中文版本共有186種。魯迅在《中國小說史略》中稱劉鶚的《老殘遊記》、李寶嘉的《官場現形記》、吳趼人的《二十年目睹之怪現狀》和曾樸的《孽海花》為「晚清四大譴責小說」。
 
중국문학사에서 소설은 문학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명대(明代)에 들어와 삼국지를 비롯한 사대기서(四大奇書)가 창작되고 크게 유행하면서 소설은 문학의 한 형식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청대(淸代)에 들어와 ≪유림외사≫와 조설근의 ≪홍루몽≫이 출현하고 보급되면서 소설은 문학으로서의 확실한 지위를 차지하였고, 청대 말기에는 사회 개조의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소설 융성의 기폭제 역할을 한 작품이 바로 ≪유림외사≫다.

≪유림외사≫의 유림(儒林)은 무사의 상대적 개념인 문사(文士) 계층을 망라하는 뜻을 지닌 말이고, 외사(外史)는 국가에 의한 공식적 역사기록인 정사(正史)가 아닌 ‘개인에 의한 사실 기록’이라는 뜻이다.
당시 문사는 오직 팔고문(八股文)이란 형식적 문장만을 잘 지어 과거에 합격해 출세하는 것을 인생의 유일한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그렇지만 과거제도는 참된 인재를 뽑지 못하고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한 인간만을 양산하는 폐단을 낳았다. 오경재가 경험한 유림의 세계는 과거제도에 의해 인간성이 철저하게 파괴된 세계였다. 오경재는 ≪유림외사≫에서 과거에 정신을 잃은 사대부들의 가련한 모습과 탐욕에 빠진 비열한 행동, 관리들의 파렴치와 수탈을 담담한 필치로 생동감 있게 담았다.

형식상 장회(章回) 소설인 ≪유림외사≫는 그 구조가 아주 독특하다. ≪유림외사≫는 주인공도 없고, 간단히 요약할 만한 줄거리도 없다. ≪수호전≫은 송강을 비롯한 108인이 양산박에 집결하고, ≪서유기≫는 삼장법사가 천축국에 불경을 구하러 간다는 줄거리가 있으나, ≪유림외사≫는 소설 전체가 짧은 삽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계층의 여러 인물이 차례차례 등장해 자기 역할을 마치면 사라져 버린다. 이런 구성은 자칫 산만해 보일 수 있지만, 오경재는 오히려 이런 구성을 통해 자유로운 공간을 조성하고 인물의 성격을 다채롭게 창조했다.


≪유림외사≫ 제1회에서는 원(元)나라 말기의 시인 왕면(王冕)의 일생을 묘사해 인물 평가의 모범을 제시하고, 이어 제2회, 제3회에 범진, 주진과 같은 인물을 등장시켜 당시 사회가 만들어낸 전형적 인간형을 묘사했다. 회가 거듭할수록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허위, 파렴치, 잔인, 우둔, 교활한 인물과 바른 심성을 가진 도덕군자의 모습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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