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개정판): 인간의 본질을 밝히는 인문학의 첫 번째 질문

Free sample

 살아 있음은 이미 우주의 기적이다!

인문학의 첫 번째 질문에서 얻은 위대한 삶의 지혜 





◎ 도서 소개


인문학의 첫 번째 질문, “나는 누구인가?” 


강신주, 최진석, 고미숙, 슬라보예 지젝…

우리 시대 학자 7인과 함께한 감동과 성찰의 인문학! 


인간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의 열풍 끝에 남은 본질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 삶의 황폐화와 사회 가치의 퇴색, 현실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의 부재로 현대인들은 인간과 삶,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품기 시작했다.

그 물음 끝에 탄생한 『나는 누구인가』는 2013년 가을 플라톤 아카데미가 주최한 동명의 대중강연을 엮은 것으로, 당시 매회 매진을 기록하며, 2만 명 이상 청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1부에서 강신주, 고미숙, 김상근, 이태수는 자본주의 사회 속 진실된 자아를 찾기 위한 인간의 본질을 밝힌다. 2부에서 슬라보예 지젝, 최진석, 정용석은 사회에 대한 비판을 뛰어넘어 개인의 고귀한 인성과 생명의 가치를 회복하는 법을 통해 삶의 태도를 정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부조리한 세상과 이에 맞서는 개인의 태도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단단한 정체성을 갖게 되며, 결국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의 철학을 형성하게 된다. 우리 시대 학자 7인이 전하는 살아온 날에 대한 성찰과 다가올 날에 관한 용기를 담았다. 





◎ 출판사 서평


나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야 할까?

따뜻한 인간성에 관한 7가지 통찰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현대인들이 잊고 살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개인의 삶이 점점 황폐해지고 사회 가치가 희미해지는 요즘, 이러한 근원적인 물음은 우리 삶에 더욱 중요해졌다. ‘인간’을 탐구하고 ‘인생’을 공부하는 학문인 인문학 열풍이 거세진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 물음 끝에 탄생한 『나는 누구인가』는 2013년 가을 플라톤 아카데미가 주최한 동명의 대중강연을 엮은 것으로, 당시 매회 매진을 기록하며, 2만 명 이상 청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눈앞에서 듣는 것처럼 강신주, 최진석, 고미숙, 슬라보예 지젝 등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 7인이 전하는 삶의 지혜와 인문학적 통찰이 뜨거운 감동과 함께 생생하게 전달된다. 우리 일상에 맞닿은 사례들을 중심으로 인간의 본모습을 탐구하며, 위대한 고전과 사상가들의 핵심 메시지를 깊이 있고 흥미롭게 분석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물음에 명쾌한 해답을 얻을 것이며, 흔들리고 방황하는 삶에 용기와 철학을 정립할 것이다. 


경계선에 선 주체로 나를 돌아보다!

존재의 근원과 삶의 철학 


 동양 및 서양 철학, 종교, 생물 등 다양한 시각으로 인간의 본질을 분석한 7인의 학자는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는 개인의 태도를 통해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는 단단한 정체성을 형성하도록 이끈다. 

1부에서는 자본주의 사회 속 진실된 자아를 찾기 위한 인간의 본질을 밝히고자 한다.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개인의 고귀한 인성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전한 강신주, ‘스마트’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여 덜어내는 삶을 통한 순환과 생명의 가치를 일깨워준 고미숙, 인간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의 기원을 찾아 나서며 우리 삶에 적용 가능한 인문학적 메시지를 전한 김상근,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는 플라톤의 정의를 시작으로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인간의 본질을 풀어낸 이태수를 통해 우리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고민을 함께한다.

2부에서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뛰어넘어 개인의 고귀한 인성과 생명의 가치를 회복하는 법을 통해 삶의 태도를 정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사회가 성장한 만큼 인간은 소외된다는 문제의식을 통해 한국 사회를 분석한 슬라보예 지젝은 개인의 사소한 변화가 우리 사회에 올바른 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역설한다. 외부의 시선이나 기준이 아닌, 내가 욕망의 주체이자 기준의 생산자가 되어야 함을 제안하며 나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법을 알려준 최진석, 생물학적으로 불가사의에 가까운 우리 개개인의 고유성을 인식시키며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준 정용석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의 철학을 형성하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내 삶에 철학이 있다는 의미다. 우리 시대 학자 7인이 전하는 살아온 날들에 대한 깊은 성찰과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뜨거운 용기를 담았다. 





◎ 본문 중에서


인문학도 그렇고 철학도 그렇고 모든 예술이라는 것은 그 생경한 느낌의 세계와 위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모든 비밀이 있습니다. (…) 모든 예술, 모든 인문학의 존재 이유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17쪽) 


인문학자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자본주의를 통제하지 못하면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획일화된 노예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28~29쪽) 


애덤 스미스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을 동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 동물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인간에게는 고귀한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리적인 것을 거스르는 일, 사랑, 연대, 공감입니다. (35쪽) 


‘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곧 ‘나는 누구인가’라는 훨씬 근원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우리가 보통 ‘나’라고 말할 때는 내가 의식하고 감성으로 느낄 수 있는 정도의 ‘나’라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몸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그 경계를 뛰어넘게 됩니다. 몸에는 의식으로 전혀 포착할 수 없는 것, 그리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39쪽) 


사랑에도 생로병사가 있고 사계절이 있습니다. (…) 그래서 누구든 사랑의 종말에 대한 훈련과 자기 단련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고 내 몸이 갖고 있는 생명의 리듬입니다. (56쪽) 


화폐는 축적의 개념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설령 축적했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돈이 갖고 있는 이념과 에너지로 인해 언젠가는 폭발하거나 어디론가 흘러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돈은 절대 사람의 힘으로 묶어놓을 수 없습니다. 이런 화폐의 운동성에 대해 자각함으로써 화폐의 에너지에 끌려 다니지 않고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61~62쪽) 


인문학은 힐링이나 이데올로기 비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학문’이고, 중세 대학의 현학주의에 맞서서 생긴 피렌체 상공인들의 새로운 학문적 요구로 출발했습니다. (73쪽) 


먼저 우리가 제일 고민해야 할 인문학의 가장 기초적인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성찰입니다. 이것은 진실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이것은 ‘진·선·미의 인문학’ 중에서 진에 해당하는 ‘진리의 성찰’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도덕적인 삶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과 성찰입니다. (…) 이때 도덕적 판단은 이성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인문학의 과제는 ‘어떻게 죽느냐’ 즉 탁월함의 추구를 통해 얼마나 창조적인 삶을 살고, 그리고 얼마나 멋지게 죽느냐 하는 미에 대한 과제입니다. (77~78쪽)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인간 존재 자체를 스스로 문제 삼을 수 있는, 반성적 사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인간을 탐구한다는 인문학이 그렇듯 독특한 인간의 면모에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112쪽) 


내가 어떤 존재인지도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에 의해 드러납니다. 내가 살아온 삶,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삶, 그 전체 스토리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려질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작정인지 알면 그 사람을 좀 안다고 생각합니다. (112~113쪽) 


우리가 기대하는 그대로 실현되지 않더라도 그런 기대가 인간의 삶을 이끌어가야 인간은 살 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최상의 아름다움까지는 알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추구하는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일 수 있습니다. (138쪽) 


사실상 한반도에서 겪은 이 역사적 고통은 완전히 극복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어떻게든 치유되어야 하는 상처이자 트라우마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처는 우리를 자유롭게도 하기 때문입니다. (…)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히 고립되었다는 뜻일 테니까요. (144쪽) 


혁명이라는 것이 항상 거대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회적 역동성을 살펴보면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변화가 촉발되어 점차 거대한 산사태와 같은 변화가 이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9쪽)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성에 제어되지 않고 욕망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고, 이념의 수행자가 아니라 욕망의 실행자가 된다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말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삶의 궁극적인 동력은 결국 나를 표현함에 있어야 합니다. (190쪽) 


보편적 이념과 같은 외부의 기준이라는 것은 술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술 찌꺼기에 빗대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보편적 이념과 보편적 기준들은 이미 지나간 가공물에 불과합니다. 그것들에서 벗어나 욕망의 담당자로서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에 선 주체로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192쪽) 


지구의 시작부터 멸망까지, 우주의 시작부터 멸망까지 보더라도 여러분은 단 한 번만 존재하게 됩니다. 이 놀라운 고유함이 여러분들이 지니고 있는 ‘형이하학적’ 속성입니다. (218쪽) 


우리는 ‘살아 있는 물체’라는 것만으로도 이 우주의 기적이지만, 또한 각자의 정체성은 10400분의 1의 초미세 확률에 해당하는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어찌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19쪽) 


Read more

About the author

 ※ 저자소개 



이름: 강신주약력: 대중철학자 대중철학자이자 카리스마 있는 인문학 강연자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철학이 필요한 시간』, 『인문학 명강 동양고전(공저)』, 『강신주의 감정수업』, 『강신주의 다상담 1, 2, 3』, 『철학 VS 철학』 등이 있다.


  




이름: 고미숙약력: 고전평론가 고전평론가로 활동 중이며, 고려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식인공동체인 감이당에서 연구 중이다. 저서로는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등이 있다.


  





 이름: 김상근약력: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및 연합신학대학원 교수연세대학교(학사),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종교학 석사), 에모리 대학(석사)에서 수학했으며, 16세기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에 대한 연구로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Ph. D.)를 취득했다. 

16세기 동서양 문화•사상의 원류를 찾기 위해 르네상스 예술로 표현된 유럽의 시대정신을 추적하며, 동서양 역사를 단면으로 잘라, 신대륙의 발견, 르네상스 예술,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동서 문화 교류사 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저자의 “르네상스와 창조성” 강의는 강의는 SERI ceo 등에 초대되며 최고경영자들 사이에서 놓쳐서는 안 될 최고 인기강의로 손꼽히고 있다. 

지금도 해야 하는 것과 잘 하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하나로 일치시키자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며 학문에 매진하고 있다.

또한 국내 최초로 설립된 인문학 지원 공익재단인 (재)플라톤 아카데미의 본부장으로서 ‘인문학의 심화와 확산’을 위해서 공헌하고 있으며, SBS <아이러브人> 등 수백 회에 달하는 강연을 통해서 도전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탁월한 인문학 강연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저서

《마키아벨리》(21세기북스) - 

《르네상스 창조경영》(21세기북스, 공저) -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르네상스 명작 100선》(연세대학교출판부) -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 문광부 우수학술도서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 SBS 스페셜 다큐멘터리로 방영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 삼성경제연구소(SeriCEO)추천 CEO를 위한 필독서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평단문화사)

《엘 그레코: 지중해의 영혼을 그린 화가》(연세대학교출판부)

《세계지도의 역사와 한반도의 지리적 발견》(살림)

《동서 문화의 교류와 예수회 선교역사》(한들)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평단, 번역)

《Strange Names of God》(Peter Lang Publishing)

외 70여 편의 전공 관련 논문



  




이름: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약력: 철학자․문화비평가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교 사회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사상을 통해 세계적인 석학으로 불리고 있다. 류블랴나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파리 제8대학에서 정신분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폭력이란 무엇인가』, 『멈춰라, 생각하라』, 『HOW TO READ 라캉』,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등이 있다.  




이름: 이태수약력: 

인제대학교 교수


인제대학교 인간환경미래연구원 원장

인제대학교 교수로 동 대학교 인간환경미래연구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이다. 괴팅겐게오르크아우구스트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인문학 명강 서양고전(공저)』 등이 있다.  




이름: 정용석약력: 경희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경희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텍사스-오스틴대학교에서 미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하버드의대에서 수학했다. 주요 연구 주제는 바이러스와 숙주의 지속감염학, 바이러스 유전정보의 분자진화학 등이다. 한국미생물학회 바이러스분과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ICTV 한국학회대표를 맡고 있다.  




이름: 최진석약력: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 흑룡강대학교를 거쳐 북경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인간이 그리는 무늬』,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이 있고, 역서로는 『노자의소(공역)』, 『중국사상 명강의』, 『장자철학』, 『노장신론』 등이 있다.  


Read more

Reviews

4.0
1 total
Loading...

Additional Information

Publisher
BOOK21 PUBLISHING GROUP
Read more
Published on
May 30, 2016
Read more
Pages
240
Read more
ISBN
9788950965181
Read more
Language
Korean
Read more
Genres
Philosophy / Ethics & Moral Philosophy
Read more
Content Protection
This content is DRM protected.
Read more
Read Aloud
Available on Android devices
Read more

Reading information

Smartphones and Tablets

Install the Google Play Books app for Android and iPad/iPhone. It syncs automatically with your account and allows you to read online or offline wherever you are.

Laptops and Computers

You can read books purchased on Google Play using your computer's web browser.

eReaders and other devices

To read on e-ink devices like the Sony eReader or Barnes & Noble Nook, you'll need to download a file and transfer it to your device. Please follow the detailed Help center instructions to transfer the files to supported eReaders.
최진석
 세상에 없던 수업, 우리가 기다려온 통찰!

철학 없는 시대를 위한 최진석 교수의 생각 혁명 





◎ 도서 소개


지식을 버리고 철학을 시작하라! 


인문학자 최진석 교수가 제시하는

 생각의 노예에서 생각의 주인이 되는 법 


 왜 우리는 철학을 해야 하는가? 철학이 나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철학이 지금 이 시대를 극복할 해답을 줄 수 있는가? 소란 섞인 건국, 기적적인 산업화, 혁명적인 민주화는 이루어냈지만 개인의 삶으로도, 국가적으로도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 지금 우리는 전진과 후퇴의 경계에 서 있다.

그리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철학을 시작하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철학은 철학자들이 남긴 내용을 숙지하거나 그들을 따라 살아보는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즉 누군가가 한 생각의 결과를 ‘배우는’ 철학이었다. 그러나 철학은 이론화된 진리를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철학이란 스스로 삶에 관해 직접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그리고 생각하지 못하는 개인으로 이루어진 국가는 그 방향성을 상실한 것과 같다. 생각의 높이가 시선의 높이를 결정하고, 시선의 높이가 활동의 높이를 결정하며, 활동의 높이가 삶의 수준을 결정하여, 결국 세계의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철학이란 자기 스스로 삶의 격을 결정하는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갖는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

2015년 건명원(建明苑)에서 진행한 다섯 차례의 철학 강의를 묶은 이번 책은 건명원의 초대 원장인 최진석 교수가 개인과 사회를 날카롭게 관찰해온 사유의 결정체다. 저자는 나라를 이끌어갈 개인을 각성시키고 함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혁명가이자 문명의 깃발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며 인문적, 지성적, 문화적, 예술적 차원으로의 선진화를 철학을 통해 제시한다. 





◎ 출판사 서평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우리 사회는 개인의 삶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지금 전진과 후퇴의 경계선에 서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한탄했던 비주체적이고 비독립적인 1925년의 조선과 2017년의 대한민국은 달라진 것이 없다. 선진화로의 상승은 고사하고 민주화 이전의 단계로도 역행하는 형상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는 철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철학은 문명의 끝에 자리하여 우리가 걸어온 삶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철학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전술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시선을 통해 전략적인 차원으로의 상승을 이끌며 기능적인 대답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체적이고 인격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주위의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 온전한 나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획득한 생각의 높이는 시선의 높이를, 시선의 높이는 활동의 높이를, 활동의 높이는 다시 삶의 수준을 상승시키며, 이는 결국 국가의 수준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인문적, 지성적, 문화적, 예술적 차원으로의 선진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는 서양 주도의 세계에서 동양이 어떻게 가치를 회복할 것인가와도 궁극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철학은

 국가 발전의 기초다 


 진정한 의미의 철학은 ‘부정(不定)․선도(先導)․독립(獨立)․진인(眞人)’의 네 단계를 통해 현실 속에서 구체화된다. 즉 기존의 것을 철저히 ‘부정’하고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며 기존의 것과의 불화를 자초하는 용기를 통해 종속적인 나에서 ‘독립’해 주체적인 나를 회복함으로써 자신만의 진리를 구성하는 참된 나, 즉 ‘진인’을 이루는 것이다.

본래 서양의 학문인 철학은 서양이 세계를 바라보는 전략적 시선의 합으로, 이러한 철학이 동아시아에 진입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서양의 제국주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완전 승리를 의미하는 첫 사건인 1840년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1860년 베이징조약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동양을 패배시킨 서양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 꾸준히 관찰한다. 구국구망(救國救亡), 즉 조국과 민족을 모두 구해내기 위한 방법으로 서양학습(向西方学習)을 택한 것이다.

그 시작으로 서양의 대포와 군함을 핵심으로 한 과학기술을, 다음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치제도를 받아들였으나 종래에는 그 배후의 힘이 문화, 윤리, 사상, 철학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서양의 것으로 일순간 바꾸어버린다. 문화, 윤리, 사상, 철학이야말로 국가를 지배하는 가장 높은 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철학이란 인간 개인의 독립적인 삶을 넘어 한 국가의 선진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기준이 된다. 중국이 철학을 통해 서양을 증오하는 것에서 나아가 전략적으로 극복하고자 한 것처럼 우리 또한 지금의 대한민국을 분노의 대상이 아닌 전략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철학 속에 있는 것이다. 


배우는 철학에서

 생각하는 철학으로 


 지금까지 우리는 한번도 진정한 의미의 철학을 한 적이 없다. 철학은 보통 명사와 같이 쓰이지만 동사로 작동할 때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이제 우리는 철학자들이 남긴 내용을 단순히 숙지하는 ‘배우는’ 철학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철학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태어난 것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인 세계를 배재한 철학은 진정한 의미의 철학이 아니며 이러한 이론으로서의 철학을 진리인양 믿는 것, 나아가 철학을 직접 생산하지 못하고 수입한다는 것은 곧 생각을 수입한다는 것과 같다. 그리고 생각의 종속은 가치관뿐 아니라 산업까지도 포함해 삶 전체의 종속을 의미한다. 즉 철학이란 자기 스스로 삶의 격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 한마디로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갖는 것이다.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는 분열된 삶에서 벗어나 해와 달을 동시에 장악하는 활동성[明]을 통해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곳[苑]으로 건너가는 도전을 하는 것이야말로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훈고(訓詁)적 기풍에서 벗어나 창의적 기풍을 생산하는 선진화의 길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철학을 배우는 것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이동시키는 첫 시도며 개인, 더 나아가 사회가 철학적 시선을 갖도록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 본문 중에서


철학을 수입한다는 말은 곧 생각을 수입한다는 뜻입니다. 생각을 수입한다는 말은 우리가 수입하는 그 생각의 노선을 따라서 산다는 뜻이고요. 생각의 종속은 가치관뿐 아니라 산업까지도 포함해 삶 전체의 종속을 의미합니다. (24~25쪽) 


지금과는 전혀 다르면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그 시선이 인문적 시선이고 철학적 시선이고 문화적 시선이며 예술적 시선입니다. 이 차원의 시선을 우리의 것으로 가져야만 ‘따라하기’가 선도하기로 바뀌고, 훈고의 습관이 창의의 기풍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28쪽) 


철학적인 높이로 상승한 단계의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바로 전면적인 부정을 이야기합니다. 전면적인 부정은 새로운 생성을 기약하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생성이라는 것은 바로 전략적인 높이에서 자기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자신이 직접 그 길을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76쪽) 


지금 우리가 철학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이유는 동아시아 역사에서도 보았듯이 서양에 대한 패배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동아시아적인 승리, 동아시아적인 가치를 회복할 것인가 하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77쪽) 


철학이란 철학자들이 남긴 내용을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삶의 격을 철학적인 시선의 높이에서 결정하고 행위하는 것, 그 실천적 영역을 의미합니다. (92쪽) 


철학적 지식, 그것은 철학이 아닙니다. 철학은 기실 명사와 같은 쓰임을 갖고 있지만, 동사처럼 작동할 때만 철학입니다. (114쪽) 


어떤 나라가 문화적인가 아닌가 하는 점은 바로 장르를 만들 수 있는지의 여부가 결정한다고 봅니다. (…) 장르를 만들면 그 장르가 새로운 산업이 되어서 경제적인 성취를 이루고, 경제적인 성취가 힘을 형성하여 앞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장르−선도력−선진은 이렇게 연결됩니다. 장르를 개인 차원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꿈’입니다. (121~122쪽) 


자신에게만 있는 이 궁금증과 호기심이 안에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일, 이것을 질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질문할 때에만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 고유한 존재가 자신의 욕망을 발휘하는 형태가 바로 질문입니다. 그래서 질문은 미래적이고 개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125쪽) 


철학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발생합니다. 그래서 시대의 자식으로 태어납니다. 모든 철학은 그 시대를 관념으로 포착해서 고도의 추상적인 이론으로 구조화한 것입니다. (158쪽) 


우리가 철학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높은 차원에서 현실로서의 지금 이 세계를 읽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사유를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사유하는 것입니다. (163쪽) 


아직은 오지 않은 곳으로 건너가려는 시도, 이것이 반역의 삶입니다. 모든 창의적 결과들은 다 반역의 결과들입니다. 우리나라처럼 특히 훈고의 기풍으로만 채워진 상황에서 이는 더욱 절실한 삶의 태도이지요. (170쪽) 


탁월한 인간은 항상 ‘다음’이나 ‘너머’를 꿈꿉니다. 우리가 ‘독립’을 강조하는 이유도 ‘독립’만이 ‘다음’이나 ‘너머’로 넘어가도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머’나 ‘다음’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 이때 불안을 감당하면서 무엇인가를 감행하는 일을 비로소 ‘용기’라고 말할 수 있죠. (223쪽) 


나와 사회를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기풍으로 채우는 일은 결국 나와 사회를 인격적으로 성숙시키는 일이며 또한 인격적으로 준비시키는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 대답은 기능이지만, 질문은 인격입니다. 창의성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인격이라는 토양에서 튀어나오는 것이죠. (240~241쪽) 


자기살해를 거친 다음에야 참된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등장합니다. 이 참된 인간을 장자는 ‘진인(眞人)’이라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무아(無我)’라는 표현도 글자 그대로 ‘자신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참된 자기로 등장하는 절차를 말하는 것이지요. (244쪽) 


푸코는 이러한 종속적 주체성을 벗어나서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자신이 하는 모든 판단과 행위가 모두 자기의 결정으로부터 나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주체, 이 사람이 능동적 주체입니다. (249쪽) 


우리는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는 지(知)에 매몰되어 한편을 지키는 일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해와 달을 동시적 사건으로 장악하는 명(明)의 활동성을 동력으로 삼아 차라리 황무지로 달려가야 합니다. 이미 있는 것에 편입되어 안정되기보다는, 아직은 이름 붙지 않은 모호한 곳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흔들리는 불안을 자초해야 합니다. 훈고에 갇힌 조국에 창의의 기풍을 생산하려 덤벼야 합니다. (285쪽) 


성숙된 개인은 그냥 ‘개인’이 아닙니다. (…) 성숙된 개인은 반드시 그 성숙도에 따라 동조자를 갖게 됩니다. 즉 사회적 확산을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302쪽) 


모든 철학가나 예술가가 혁명가이고 더 나아가 문명의 깃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 개인의 성숙은 매우 높은 수준의 사회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305쪽) 


생각의 결과들이 어떤 구체적인 세계를 토대로 형성된 것인지를 이해한 후, 지금의 세계에서 나에게 포착된 시대의 문제를 지성적인 높이에서 계속 생각해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철학입니다. 생각의 결과를 배우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철학인 것입니다. (319쪽) 


김상근
 속(俗)과 성(聖)이 공존하는 세상을 담아낸 화가

미켈란젤로가 죽은 뒤 7년, 새로운 미켈란젤로가 탄생하다 





◎ 도서 소개


“길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나의 스승이오.” 


속된 세상에서 거룩함을 발견한 화가, 카라바조

 그의 삶에서 근대 예술과 역사를 읽다 


1571년 밀라노에서 태어나 1610년, 39세의 나이로 짧은 인생을 마감한 비운의 화가.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자가 된 광기의 화가. 거장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난 지 7년 뒤 같은 이름으로 이탈리아 미술사에 등장한 천재 화가. 르네상스 매너리즘에 종지부를 찍고 어둠과 빛으로 표현하는 테네브리즘(Tenebrism) 기법을 창시한 화가. 16세기 종교적 분열을 작품 속에 통합시켰던 위대한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예술사적으로는 르네상스 후기, 유럽사적으로는 종교개혁 말기에 활동했던 그는 예술이 종교적 도구로 머물고 있던 시대적 조건을 극복하고 개인의 주관에 따라 성서를 해석했다. 그렇기에 카라바조의 인생과 작품에는 르네상스의 전개부터 종교개혁의 양상까지, 생동감 넘치는 예술사와 유럽사가 담겨 있다. 특히 성(聖)과 속(俗)의 끊이지 않는 대비를 통해 아름다움과 추함, 폭력과 고요, 전통과 파괴, 현실과 초월, 빛과 어둠을 한곳에 담아냈으며 이러한 그의 이중성은 작품을 넘어 인생 전체를 드리우고 있었다.

르네상스 전문가도 미술평론가도 아닌 인문학자 김상근 교수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카라바조에 주목한다. 카라바조의 작품 속에는 예술에 주어진 종교적 의무감 대신 일상의 생동감 넘치는 장면이 있었다. 그에게는 로마의 뒷골목이 거룩한 곳이었으며 헐벗은 이웃들이 성자였다. 속된 세상에서 거룩함을 발견한 카라바조, 우리는 그의 인생과 작품을 통해 어둠이 드리워진 한국 사회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을 찬란한 빛의 존재를 기대하게 된다. 





◎ 출판사 서평


예술사와 유럽사를 뒤섞다

16세기 말 시대정신을 담아낸 화가, 카라바조 


 유럽에서 빈센트 반 고흐를 능가하는 격정적인 삶을 산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카라바조는 수많은 전기물이 출간될 만큼 미술사적으로 중요하지만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카라바조가 활동했던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은 예술사적으로는 르네상스 후기 매너리즘의 형식주의가, 유럽사적으로는 가톨릭교회의 개혁 운동이 박차를 가하던 때였다. 당시 미술품들은 가톨릭교회의 회복이라는 신앙심 고취를 위한 종교적 도구였으며, 이를 넘어 신앙의 가시적인 표현이었다. 우리는 카라바조의 인생과 예술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전개와 종교개혁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문학자 김상근 교수가 각국의 카라바조 연구자들의 저술과 인터뷰, 작품 해설을 통해 예술사와 유럽사의 통합을 시도했다. 카라바조의 작품에는 예술에 주어진 종교적 의무감 대신 일상의 생동감 넘치는 장면이 담겨 있다. 그림 속 성서를 전통적인 교회의 해석이 아닌 주관적 해석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카라바조의 그림에는 천군천사의 나팔소리나 초자연적인 장면 대신 로마의 흔한 밤거리나 선술집이 등장한다.

이는 16세기말에 태동한 시대정신인 ‘개인의 탄생(The Birth of Individual)’과 관련이 있다. 이때는 교회의 제도적인 획일주의가 아닌 개인과 하나님 사이의 주관적 관계가 강화되던 시기였고 카라바조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작품에 드러내고자 했다. 비록 이러한 변화에 반기를 든 이들에 의해 17세기의 기록들 모두가 카라바조에 대한 모독으로 넘쳐나지만 그가 당시의 시대정신을 최초로 담아낸 화가이며 예술사적으로 한 시대를 열고, 유럽사적으로도 한 시대를 통합한 화가인 것은 분명하다. 


속(俗)과 성(聖)을 뒤섞다

 이중성의 화가, 카라바조 


 로마 뒷골목 음습한 곳에 웅크리고 있을 법한 거지나 몸을 파는 창녀가 어둠 속에게 비친 한 줄기 빛을 통해 예수로, 막달라 마리아로, 성자로 분한다. 신의 은총은 크고 화려한 성당이나 대저택뿐 아니라 로마의 지저분한 밤거리 또한 비추고 있다.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어둠과 빛은 단순히 명암이 아니었다. 어둡고 음습한 공간을 비치는 빛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한 줄기 희망이었다. 그에게 속된 세상은 성스러움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그는 이웃들에게서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찾았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모든 사람이 그에게 스승이었다. 카라바조의 작품에서는 성과 속의 교묘한 대비가 끊이지 않았다. 아름다움과 추함, 폭력과 고요, 전통과 파괴, 현실과 초월, 빛과 어둠…. 이러한 그의 이중적인 행보는 그의 인생과 작품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그를 후원해준 귀족들 덕분에 가난의 그림자를 딛고 재능을 맘껏 펼쳤던 카라바조는 <성 마태의 소명>, <성 마태의 순교>로 단번에 이탈리아 최고의 화가로 등극했지만 난폭한 성격 탓에 여러 번의 사고를 일삼다가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자 신세로 연고 없는 곳에서 생을 끝내고 만다. 

그의 후기 작품은 자기 앞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죽음의 그림자와 비참한 죽음으로 마감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한 본성에 대한 고뇌의 성찰로 채워졌다. 인생 자체가 성과 속의 대비로 이루어졌던 카라바조. 자연의 빛을 파괴하고 인위적인 빛으로 이야기하던 카라바조는 실은 가장 자연에 가까운 사실주의적 그림을 그린 화가다. 그의 이러한 예술혼과 실험정신은 그가 화가를 넘어 진정한 구도자로 불릴 수 있는 이유다.

김상근 교수가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에서 카라바조의 걸작 <성 바울의 회심>과 <십자가에 못 박힌 성 베드로>를 보고 어느 미술평론가의 말을 떠올린 것처럼 이 책을 읽은 독자 또한 이 말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카라바조 이전에도 미술이 있었고, 카라바조 이후에도 미술이 있었다. 그러나 카라바조 때문에 이 둘은 절대 같은 것이 될 수 없었다.” 





◎ 본문 중에서


39년의 짧은 인생을 살면서 르네상스와 매너리즘(Mannerism)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던 천재 화가. 후원자나 고객의 주문에 의해 작품의 내용과 구도가 결정되던 시대에 그들의 예술 감각을 조롱하는 그림을 그렸던 사람. 미켈란젤로와 경쟁하며 거장의 작품을 마음껏 뒤틀었던 인물. 밤거리의 패싸움과 살인의 추억으로 얼룩졌던 화가. 살인자의 신분으로 이탈리아 반도 끝까지 도망쳤지만, 추기경과 귀족들의 비호를 받으며 마지막까지 충격적인 그림을 그렸던 반항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오는 은총의 의미를 신앙적으로 표현했던 화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화폭에 드러냄으로써 예술의 의미를 단번에 뒤집고 새로운 생각의 틀을 보여주었던 인물…. (17~18쪽) 


카라바조가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사망한 지 7년째 되던 해인, 1571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그의 예술사적 위치를 명확히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의 본명이 ‘미켈란젤로’라는 사실도 그가 처해 있던 문화사적 배경을 잘 드러내고 있다.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난 다음 ‘새로운 미켈란젤로’가 이탈리아 미술사에 등장한 것이다. (22~23쪽)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는 가톨릭교회를 위한 예술가였지만, 카라바조는 16세기의 종교적 분열을 작품 속에서 통합시켰던 위대한 화가였던 것이다. (26쪽) 


카라바조의 그림 중 종교화를 이해하는 열쇠는 성(聖) 속에 교묘히 어우러져 있는 속(俗)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있다.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93쪽) 


사람들은 카라바조의 작품에서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이 지나간 다음에 찾아오는 침묵의 의미를 발견했다.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을 영접하는, 한 줄기 빛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하나님의 은총은 그렇게 어둠 속에 침묵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고 있었다. 카라바조는 그렇게 속을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면서 가장 성스러운 종교화 전통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176쪽) 


카라바조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저 사람들이 모두 나의 스승들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작품 의뢰인이 전통적 미의 기준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에게서 찾고 있을 때, 카라바조는 속의 세계를 오가는 평범한 로마의 이웃들에게서 거룩함과 아름다움의 근원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176쪽) 


겸손과 교만의 이중성은 마치 화면에 등장하고 있는 카라바조의 두 얼굴처럼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상징한다. 카라바조의 마지막 작품은 철저한 자기 성찰을 담은 것이었으며, 불합리성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제시하는 인간성에 대한 이해였던 것이다. (311쪽) 


흔히 다 빈치의 명암법을 총괄해 키아로스쿠로라고 표현한다. 3차원적인 사물의 입체 관계를 명암의 조절을 통해서 2차원 공간에서 표현하는 방식이다. 카라바조는 ‘어둠의 방식’인 테네브리즘을 통해 키아로스쿠로 명암법을 완성시켰다. (319쪽) 


극단은 늘 통하듯이 자연의 빛을 파괴하고 인위적인 빛을 만들어 테네브리즘을 창시한 인물이 가장 자연에 가까운 ‘사실주의적’ 그림을 그린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은 서양 미술사의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321쪽) 


그는 종교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동시대 가톨릭교회가 요구하는 반종교개혁적인 시대정신을 담아낼 수 있었고, 동시에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에서 인간의 내면세계를 조망하는 위대한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카라바조 종교화에서 볼 수 있는 살인미학은 바로 우리 내면에 감춰져 있는 추악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중략) 그리고 그 추함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우리들의 사악한 현실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깃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성(聖)과 속(俗)의 구획 정리를 새롭게 시도했다는 점에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미학적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25~326쪽) 


카라바조의 작품 속에 나타난 시대정신은 완전히 종교개혁적인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반종교개혁적인 것도 아니었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주제는 다르지만 그 구조는 공통적’이었던 16세기의 시대정신을 대변하고 있다. 개인의 탄생을 배태했던 16세기말의 시대정신은 결코 종교개혁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카라바조와 같은 가톨릭적인 인물에 의해 공유되었던, 개신교 종교개혁자들과 가톨릭교회의 예술가에 의해 향유되었던 보편적인 16세기의 시대정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331~332쪽) 


그는 언제나 시대의 전통에 따라 주제를 선택했지만, 작품에 나타난 해석은 항상 전통 파괴적(iconoclastic)이었다. 그의 그림은 언제나 철저한 현실세계에 뿌리박고 있었지만, 표현된 이미지는 언제나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담고 있었다. 그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고상했으나, 그림의 구체적인 표현은 속되고 평범했다. 그의 그림은 언제나 칠흑과 같은 어둠에 사로잡혀 있었으나, 한 줄기 빛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 다니던 범법자를 사람들 은 추종했으며, 오히려 그의 작품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이중성’이 드러난다. (332쪽) 


신정근
 제자백가부터 『열하일기』까지 인간의 삶을 아우르는 3000년의 지혜!

인간이란 누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특히 일찍부터 문명이 발달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서양철학과는 다른 형태로 우주와 인간, 정치와 사회의 존재를 규명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었다. 

한동안 우리 사회는 경제와 경영 등의 실용학문이 사회를 이끌며 실용과는 동떨어진 인문학은 외면 받는 현상이 나타났었다. 그러나 최근 인간에 대한 연구야말로 무엇보다 삶을 관통하는 핵심주제라는 것을 인식한 지식인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인문학의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이 주최하고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에서 주관한 ‘東洋고전, 2012년을 말하다’ 강의는 1만 3000여 명의 사람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 내며 인문학 열풍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강의는 『논어』를 시작으로 『맹자』, 『장자』 등 제자백가 사상과 『한중록』, 『금오신화』 등 한국의 고전까지 동양고전의 전반을 아우르는 총 14강의 강의로 이루어졌다. 각각의 강의는 강신주, 고미숙, 성백효, 정재서, 한형조 등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인문학자들이 참여해 그 빛을 더했다. 또한 본격적인 강의에 앞서 진행된 박웅현, 주경철의 기조강연은 동양고전의 의미를 일깨우며 청중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매 회마다 1700여 좌석이 꽉 채우는 기염을 토하며 대학생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그간 인문학에 목말라 있던 사람들의 열광적인 참여가 이어졌다. 이번에 출간된 『인문학 명강 동양고전』(강신주 외 지음, 21세기북스 펴냄)은 당시의 강의 중 이백과 두보를 제외한 13번의 강의를 엮은 것이다. 이 책 한 권만으로도 당시의 뜨거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최고의 인문학자들이 펼치는 흥미로운 고전의 향연

인간의 삶과 행복, 철학이 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이 책은 강의를 크게 3부로 나눠 재구성되었다. 1부 ‘동양고전에서 인생을 만나다’에서는 『논어』, 『격몽요결』 등 다시 한 번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지혜의 문장을 담아낸 고전의 진수를 만나본다. 2부 ‘동양고전으로 행복을 꿈꾸다’에서는 『장자』, 『중용』, 『시경』 등에서 나타난 자유와 행복, 천국, 사랑과 같은 고귀한 가치를 어떻게 삶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본다. 마지막 3부 ‘동양고전에서 창조를 발견하다’에서는 『산해경』, 『열하일기』 등에서 한계를 넘어 두려움 없이 마음껏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동경한 신화 속 인물들과 저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동양고전은 서양고전에 비해 아직은 생소하지만 그 안에는 동양 고유의 문화 속에 간직된 역사와 정치, 사람이 숨 쉬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문학자들이 전하는 동양고전의 이야기는 그래서 결코 낯설지 않다. 백성들을 지혜롭게 다스리는 목민관의 규칙을 담은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현재의 여느 공무원규정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공직자가 가져야 할 태도와 신념을 잘 나타낸다. 죽을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궁형(거세형)을 자처하면서까지 집필한 사마천의 『사기』는 단순한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군상의 내밀한 모습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방대한 자료다. 흥미로운 신화의 세계가 펼쳐지는 『산해경』은 동양적인 관점으로 상상력을 자극할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지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박물지로서의 역할까지 한다. 

동양고전은 한자의 난해함과 고루하다는 편견으로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자 하나하나가 가진 깊은 뜻과 방대한 분량의 글이 담고 있는 역사와 문화, 우리 선조들이 가진 해학과 철학을 이해한다면 겉으로 볼 때와는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한형조 교수는 “퇴계 두 권, 율곡 두 권 이 정도면 평생을 해도 새롭고 아직도 가야 될 곳이 있기 때문에 책을 많이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처음 동양고전을 접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고, 기존에 동양고전에 관심이 있던 사람에게는 더 넓은 시야를 갖도록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김상근
 


아름다운 삶에서 죽음을 보다

삶에 던져진 마지막 물음과 인문학에서 찾은 최후의 답 





◎ 도서 소개


인문학에 던져진 대단원의 물음,

삶과 죽음의 연속성을 이야기하다 


인간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의 열풍 끝에 남은 본질적인 물음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신학에 대한 반발로 인문학이 탄생했던 중세의 시대적 요구와 지금 현대인들이 느끼는 삶에 대한 체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삶 자체가 황폐해지고 사회 가치가 희미해지면서 현실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이 부재한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반발로 일어난 인문학에 대한 소구는 다양한 사회적 함의를 낳았고 현대인들은 인간과 삶,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품기 시작했다. 

이에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플라톤 아카데미의 시리즈 강연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아름다운 삶과 죽음 Beautiful life’에 10만 명 청중은 열광했다. 그리고 이를 묶어낸 책 『나는 누구인가』『어떻게 살 것인가』를 통해 수만 명의 독자가 인간의 정체성과 인생에 관한 본질적인 물음에 답을 찾았다. 그리고 이제 인생에 관한 대단원의 물음을 책으로 담은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삶과 죽음의 연속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생태학자, 공학자, 철학자, 건축가, 신학자, 종교학자, 의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섬세한 시각을 발휘하는 최고 학자 8인은 죽음을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삶과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으며, 죽음에 대한 물음이 도달하는 자리가 결국 삶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번 책은 주로 해외 학자의 논의를 통해서 접할 수 있었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국내 최고 학자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삶의 순간에 마주한 죽음

- 생태학자, 과학자, 철학자, 건축가의 시선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는 죽음이야말로 생명의 가장 보편적인 속성이라고 말한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DNA가 복제를 통해 만들어낸 우연의 결과물이기에 모든 생명은 태초에 하나로부터 나뉘는 일원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즉 원래 하나였던 자연과 공생하는 법을 알고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아름다운 삶과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임을 전한다. 

공학자가 바라본 죽음은 명확한 결론을 향해 전개된다. 황농문 교수는 죽음을 삶을 위한 필요조건이라 본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의식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꺼려하지만 이를 온전히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죽음에 직면하는 순간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으며 살아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김애령 교수는 죽음 앞에서 철학자의 역할을 고민한다. 죽음이란 존재론적인 결함이자 유한한 자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슬픔이기에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아름답게 사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늘과 고통으로 얼룩진 삶이라도 이를 이야기로 만들어 스스로를 관조하고 이를 함께 나눌 친구가 있다면 좋은 삶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종성 건축가는 건축이 언뜻 죽음과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건축이야말로 삶을 오롯이 담고 있는 공간이며, 그렇기에 건축의 미학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삶과 그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비잔틴 양식부터 신고전주의 양식에 이르는 건축의 역사를 통해 건축에 담긴 우리의 모습을 찾아본다. 


죽음의 숙고로 완성하는 삶

- 신학자, 종교학자, 철학자, 의학자의 시선 


신학자 김상근 교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의 성찰에서 시작한 인문학적 사유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공공 이익에 대한 실천으로 발전되었음을 짚고 넘어간다. 그리고 이제 인문학에 남겨진 마지막 과제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우아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레코-로만과 히브리 전통에서 죽음의 의미를 찾는다. 이와 함께 죽음은 벽이 아닌 평화(Shalom)의 세계로 나아가는 문이라는 희망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종교철학자 정재현 교수는 오늘날 삶 밖으로 내몰린 죽음을 삶 안으로 다시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래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은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 과정에 있으며 죽음으로써 몸 전체가 살아가는 생명의 역설이 우리 몸 자체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죽음을 숙명과 해방의 대립 구도로 보는 것을 떠나 ‘유한한 초월’, 즉 삶 안에서 죽음을 발견해 남은 삶인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원로 철학자 강영안 교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현상학, 그 의미를 살펴보는 해석학, 관계를 생각하는 윤리학을 통해 죽음을 분석한 뒤, 선물과 같은 삶을 ‘감사(Eucharist)’라고 표현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이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했고 플라톤은 철학의 가장 중요한 임무를 멜레테 타나투, 즉 죽음에 대한 수련이라고 했다. 이는 죽음에 대한 철학의 분석에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어린 나이에 가까운 이의 죽음을 접하고 의사의 길을 결심한 윤영호 교수는 죽음을 절망이 아닌 희망의 순간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삶은 선택으로 주어진 것이기에 건강한 목표와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삶이며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라는 것이다. 


유한의 시간 속에서

불변의 진리를 논하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이지만 그 누구도 죽음을 경험해본 적은 없다. 죽음은 살아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으며 죽어서는 절대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은 삶의 바깥에 자리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중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 허락된 유한의 시간은 삶의 끝에 자리한 불변의 진리를 조금씩 앞당겨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죽음과 삶을 떨어뜨려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다. 죽음을 삶의 흐름이 가져오는 결과로 보든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보든 죽음은 우리 삶의 영역 안에 자리한다. 톨스토이는 죽음을 의식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을 신과 동물의 상태로 비교하는데, 이는 죽음을 삶 속으로 소환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느끼게 한다. 죽음이야말로 나를 나일 수 있게 하는 고유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존재의 의미를 물었던 ‘나는 누구인가’, 공동선으로의 확장을 고민했던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마무리하는 대단원의 주제인 이유다. 강연을 한 8인 학자들의 입, 이를 담아낸 10만 청중의 귀, 마지막으로 이를 되새길 수만 독자들의 눈에는 이제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아름다운 세상이 담길 것이다. 삶과 죽음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연의 원리임을 우리 모두 깨달았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오랫동안 생명에 대해 공부하면서 깨달은 점 중 하나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하나의 공통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죽음’입니다. 생명의 가장 보편적인 속성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20쪽) 


죽음을 직면하면 온갖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외부의 기대들이 모두 떨어져나갑니다. 그리고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습니다. (…) 살아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71쪽) 


시간은 많은 것을 피어나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탄생하게 하고 변화하게 합니다. 또 많은 것을 파괴하고 해체하고 늙게 하고 낡게 하고 저물게 하고 죽게 합니다. (…) 인간의 시간은 존재론적인 결함이기도 하고, 유한한 자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슬픔이기도 합니다. (78~79쪽) 


아름다운 삶은 고통이나 슬픔을 경험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그 고통이나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이해하느냐를 통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삶은 결코 확신이나 확실성으로 가득 찬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이 가지고 있는 그늘, 고통, 눈물, 불확실성, 연약함을 끌어안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103쪽) 


이런 요소들이 갖춰질 때 건축물로서의 아름다움이 완성되어 제대로 빛을 발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죽음 또한 우리 삶의 일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삶이 있어야 아름다운 죽음이 있고, 그때 비로소 하나의 인생이 완성되는 것일 테니까요. (139쪽) 


우연의 연속에 불과한 사다리 같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 그리고 그 운명이 다하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죽음을 맞이한 우리는 그 미지의 세계를 향해 몸을 날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운명입니다. (159쪽) 


예수는 분노하거나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평화를 기원합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샬롬”이라고 외칩니다. 예수에게 죽음은 벽도 문도 아니었습니다. 후회와 분노를 넘어서는 평화의 길이었습니다. (183쪽) 


우리의 본능은 죽음에 저항하며 삶과 죽음의 관계를 가능한 한 멀리 떼어놓으려 합니다. (…) 그런데 여기서 가장 심각한 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바깥으로 내몰린 죽음이 오히려 삶을 일그러뜨린다는 점입니다. 그 문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곧 우리의 몫입니다. 그래서 바깥으로 내몰렸던 죽음을 삶 속으로 끌고 들어오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합니다. (187쪽) 


욕망으로 죽음을 덮어버리면 삶이 일그러지고 맙니다. (…) 이렇게 볼 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삶을 더 풍요롭고 가치 있게 엮어내려는 노력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삶에서 죽음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밀어냈던 죽음을 삶과 함께 엮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191쪽)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들은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거칩니다. (…) 말하자면 몸은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죽음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들이 끊임없이 죽음으로써 몸 전체가 살아가는 생명의 역설을 우리 몸은 이미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204~205쪽) 


죽지 않을 것처럼, 아직 죽지 않은 것처럼 살지 말고 이미 죽은 사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말씀이 바로 이를 가리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사는 삶은 덤으로 사는 것입니다. 덤의 시간들, 순간들, 그것이 바로 지금입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추립니다: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라! Carpe diem!” (215쪽) 


하이데거는 그 끝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끝이 있으므로 해서 너와 나 구별도 없이 군중 속에 무리지어 사는 그런 삶이 아니라 비로소 누구와도 혼돈되지 않는 나 자신, 존재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죽음은 누구의 죽음도 아닌 나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242쪽)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의 삶 자체를 내게 주어진 값진 선물이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죽음은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삶이 정말로 살 만한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49쪽) 


만약에 우리가 우주라는 하나의 몸에 존재하는 세포라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각자의 이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라는 몸을 위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봉사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 서로 믿고 조화를 이루며 봉사하는 삶, 바로 이것이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270~271쪽)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죽지 못해 사는 것도 아닙니다. 죽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다가 아름답게 죽음을 마무리하는 것까지가 인생의 완성입니다. 나무는 죽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납니다. 다시 대지로 돌아간 우리 역시 어디선가 다른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죽음은 자연으로의 회귀이며 또 다른 시작입니다. (275쪽) 

김상근
 


유한의 시간 속에서 불변의 진리를 논하다!

살아서는 경험할 수 없고 죽어서는 전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근원적 연속성 





◎ 도서 소개


인문학의 세 번째 질문,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최재천, 김상근, 강영안, 황농문… 삶에 던져진 마지막 물음과 인문학에서 찾은 최후의 답! 


인생에 관한 대단원의 물음,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삶의 황폐화와 사회 가치의 퇴색, 현실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의 부재로 현대인들은 인간과 삶,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품기 시작했다. 그 물음 끝에 탄생한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2015년 봄 플라톤 아카데미가 주최한 동명의 대중강연을 엮은 것으로, 누적 10만 명 이상 청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1부에서 최재천, 황농문, 김애령, 김종성은 우리 삶의 영역 안에 이미 자리하고 있는 죽음의 본질을 드러내고 2부에서 김상근, 정재현, 강영안, 윤영호는 죽음을 의식하는 삶이 지닌 진정한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태학자, 공학자, 철학자, 건축가, 신학자, 종교학자, 의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섬세한 시각을 발휘하는 최고 학자 8인은 죽음을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삶과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으며, 죽음에 대한 물음이 도달하는 자리가 결국 삶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죽음을 삶의 흐름이 가져오는 결과로 보든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보든 죽음은 우리 삶의 영역 안에 자리하며, 궁극적으로 나를 나일 수 있게 하는 고유한 가치로 발현한다. 





◎ 출판사 서평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까? 아름다운 자연의 원리를 향한 8가지 용기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현대인들이 잊고 살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개인의 삶이 점점 황폐해지고 사회 가치가 희미해지는 요즘, 이러한 근원적인 물음은 우리 삶에 더욱 중요해졌다. ‘인간’을 탐구하고 ‘인생’을 공부하는 학문인 인문학 열풍이 거세진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그 물음 끝에 탄생한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2015년 봄 플라톤 아카데미가 주최한 동명의 대중강연을 엮은 것으로, 누적 10만 명 이상 청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눈앞에서 듣는 것처럼 최재천, 김상근, 강영안, 황농문 등 이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 8인이 전하는 삶의 지혜와 인문학적 통찰이 뜨거운 감동과 함께 생생하게 전해진다. 위대한 고전과 과학적 진실을 통해 삶과 죽음의 연속성을 이야기하며, 우리 일상에 맞닿은 사례들을 중심으로 죽음이 전하는 메시지를 깊이 있고 흥미롭게 해석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생의 마지막 물음에 잔잔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삶과 죽음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연의 원리임을 깨닫게 된다. 



삶의 순간에 마주한 죽음 죽음의 숙고로 완성하는 삶 


 생태학자, 공학자, 철학자, 건축가, 신학자, 종교학자, 의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섬세한 시각을 발휘하는 최고 학자 8인은 죽음을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1부에서는 우리 삶의 영역 안에 이미 자리하고 있는 죽음의 본질이 드러난다. 원래 하나였던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법을 알고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아름다운 삶과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임을 전한 최재천, 죽음을 온전히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한 황농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인정하고 아름답게 사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임을 이야기한 김애령, 삶을 오롯이 담고 있는 공간인 건축으로부터 죽음에 접근한 김종성을 통해 우리는 살아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죽음에 한 발짝 가까워진다. 2부에서는 죽음을 의식하는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죽음은 벽이 아닌 평화(Shalom)의 세계로 나아가는 문이라는 희망의 이야기를 담아낸 김상근, 죽음을 숙명과 해방의 대립 구도로 보는 것을 떠나 ‘유한한 초월’, 즉 삶 안에서 죽음을 발견해 남은 삶인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라고 말하는 정재현, 철학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멜레테 타나투, 즉 죽음에 대한 수련을 위해 현상학, 해석학, 윤리학의 시선으로 죽음을 분석한 강영안, 죽음을 절망이 아닌 희망의 순간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윤영호를 통해 우리는 인간에게 허락된 유한의 시간 속에서 죽음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맞이하는 법을 배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삶과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으며, 죽음에 대한 물음이 도달하는 자리가 결국 삶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 본문 중에서


오랫동안 생명에 대해 공부하면서 깨달은 점 중 하나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하나의 공통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죽음입니다. ‘생명’의 가장 보편적인 속성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21쪽) 


죽음에 직면하면 온갖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외부의 기대들이 모두 떨어져나갑니다. 그리고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습니다. (…) 살아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73쪽) 


시간은 많은 것을 피어나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탄생하게 하고 변화하게 합니다. 또 많은 것을 파괴하고 해체하고 늙게 하고 낡게 하고 저물게 하고 죽게 합니다. (…) 인간의 시간은 존재론적인 결함이기도 하고, 유한한 자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슬픔이기도 합니다. (81쪽) 


아름다운 삶은 고통이나 슬픔을 경험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그 고통이나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이해하느냐를 통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삶은 결코 확신이나 확실성으로 가득 찬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이 가지고 있는 그늘, 고통, 눈물, 불확실성, 연약함을 끌어안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106~107쪽) 


이런 요소들이 갖춰질 때 건축물로서의 아름다움이 완성되어 제대로 빛을 발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죽음 또한 우리 삶의 일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삶이 있어야 아름다운 죽음이 있고, 그때 비로소 하나의 인생이 완성되는 것일 테니까요. (144쪽) 


우연의 연속에 불과한 사다리 같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 그리고 그 운명이 다하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죽음을 맞이한 우리는 그 미지의 세계를 향해 몸을 날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운명입니다. (163~164쪽) 


예수는 분노하거나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평화를 기원합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샬롬”이라 고 외칩니다. 예수에게 죽음은 벽도 문도 아니었습니다. 후회와 분노를 넘어서는 평화의 길이었습니다. (187쪽) 


우리의 본능은 죽음에 저항하며 삶과 죽음의 관계를 가능한 한 멀리 떼어놓으려 합니다. (…) 그런데 여기서 가장 심각한 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바깥으로 내몰린 죽음이 오히려 삶을 일그러뜨린다는 점입니다. 그 문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곧 우리의 몫입니다. 그래서 바깥으로 내몰렸던 죽음을 삶 속으로 끌고 들어오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합니다. (191쪽) 


욕망으로 죽음을 덮어버리면 삶이 일그러지고 맙니다. (…) 이렇게 볼 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삶을 더 풍요롭고 가치 있게 엮어내려는 노력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삶에서 죽음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밀어냈던 죽음을 삶과 함께 엮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196쪽)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들은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거칩니다. (…) 말하자면 몸은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죽음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들이 끊임없이 죽음으로써 몸 전체가 살아가는 생명의 역설을 우리 몸은 이미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209쪽) 


죽지 않을 것처럼, 아직 죽지 않은 것처럼 살지 말고 이미 죽은 사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말씀이 바로 이를 가리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사는 삶은 덤으로 사는 것입니다. 덤의 시간들, 순간들, 그것이 바로 지금입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추립니다: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라! Carpe diem!” (219쪽) 


하이데거는 그 끝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끝이 있으므로 해서 너와 나 구별도 없이 군중 속에 무리지어 사는 그런 삶이 아니라 비로소 누구와도 혼돈되지 않는 나 자신, 존재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죽음은 누구의 죽음도 아닌 나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246쪽)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의 삶 자체를 내게 주어진 값진 선물이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죽음은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삶이 정말로 살 만한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53쪽) 


만약에 우리가 우주라는 하나의 몸에 존재하는 세포라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각자의 이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라는 몸을 위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봉사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 서로 믿고 조화를 이루며 봉사하는 삶, 바로 이것이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275~276쪽)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죽지 못해 사는 것도 아닙니다. 죽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다가 아름답게 죽음을 마무리하는 것까지가 인생의 완성입니다. 나무는 죽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납니다. 다시 대지로 돌아간 우리 역시 어디선가 다른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죽음은 자연으로의 회귀이며 또 다른 시작입니다. (279쪽) 


슬라보예 지젝
 새로운 시대의 첫 세대가 될 것인가

 인류의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인가 





◎ 도서 소개


인공지능의 승리, 난민과 지역 분쟁, 종교 갈등, 기후 변화…

문명전환의 시대, 재앙인가 기회인가? 


동서양 대표 지성이 진단한 인류의 위기와 실천적 대안 


 인간과 인공지능의 세기적 대결,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난민과 지역 분쟁, 종교 갈등, 기후 변화, 그리고 국가 권력의 재편성 등 격동과 이변으로 기록된 지난 세계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물음을 던진다. 이에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는 대중 강연 ‘문명전환과 아시아의 미래’를 통해 시대적 의식 전환을 위한 실천에 앞장섰고, 세계 각국 석학과 함께한 그 역동적 숙고의 시간이 마침내 책으로 재탄생했다.

여기에서 슬라보예 지젝, 메리 에블린 터커, 뚜웨이밍, 어빈 라슬로, 쑨거, 김우창은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난 통합적 시선을 통해 우리 모두가 세계시민을 넘어 지구시민의 자세를 가질 것을 제안한다.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사고를 회복함으로써 비로소 인간과 지구, 그리고 우주를 연결하는 삶을 살 수 있으며, 이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흐름에도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나부터 시작할 수 있는 열린 사고로의 전환과 그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통해 다음 세대에도 지속 가능한 미래를 우리 모두에게 제시한다. 





◎ 출판사 서평


인간 중심의 물질 시대에서 공존하는 열린 시대로

 인간 너머의 가치를 회복하다! 


시대에 대한 반성과 미래를 향한 노력은 세계사적 전환의 한가운데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주어진 과제다. 이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 마련된 플라톤 아카데미 대중 강연 ‘문명전환과 아시아의 미래’에서 철학, 생태, 정치, 과학, 종교 등 각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확장된 시각을 통해 국제적 차원의 문제의식과 대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들의 성찰이 더 깊은 숙고를 거쳐 책으로 재탄생했다.

분열과 통합, 문명과 자연, 자유와 절제라는 세계사적 대립 앞에서 기록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유교의 가치와 연대가 서양 철학과 기독교 정신, 정치 사회적 이데올로기와 다르지 않으며 결국 동양과 서양이 따로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나와 너,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 지구와 우주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세상 만물과 사상이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통합적 사상과 시선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역사의 다음 장을 이어갈 수 있는 마지막 대안인 것이다. 


격동하는 세계 속에서 인류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문명의 내일, 세계 지성에게 묻는다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고민하기 위해 모인 세계적인 석학 6인은 국가와 학문의 경계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공동체적 통합이라는 공통적인 메시지를 담은 실천적 대안을 제시한다.

제1부에서는 학문과 종교적 사상이 어떻게 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 속에 적용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넓은 의미의 이성적 사고를 통해 삶을 존중하는 태도와 앎의 의미를 확장시킨 김우창, 유교와 기독교 사상을 통해 인간과 지구, 우주를 유기체적으로 연결한 메리 에블린 터커, 고립된 개인이 아닌 인간 공동체 전체의 생존을 위한 유교의 영적 휴머니즘을 제안한 뚜웨이밍을 통해 특정 영역에 국한되어 있던 사상의 확장성을 경험하게 된다.

제2부에서는 세계의 공동체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사고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다양한 사회 체제가 가진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정치 경제적 대안을 제시한 슬라보예 지젝, 인류를 지구라는 우주선의 탑승자로 명명하며 지구 생태계를 전체론적 관점을 통해 바라볼 것을 강조한 어빈 라슬로, 개별성을 훼손하는 보편성에서 탈피해 각자의 특수성과 연대를 추구하는 새로운 개념의 평행 이동하는 보편성을 주장한 쑨 거를 통해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통합적 사고를 회복한다.

인간과 지구, 그리고 우주까지 포함하는 확장된 시야에는 인문학적 가치가 인류의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으며 다가올 미래에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고민하도록 이끈다. 



◎ 본문 중에서


이성적 사고란 단지 정보를 많이 모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신중하게 하고 대상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27~28쪽) 


이성적인 추구에도 윤리적인 성격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사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자체가 윤리적 성격을 띠기 때문입니다. (43쪽) 


윤리적 결단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을 대할 때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산다는 것은 시시각각 결단과 선택의 순간에 놓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주체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윤리적 결단을 위해서는 바로 이 주체적인 사고가 필요합니다. (44쪽) 


유교는 단순한 윤리나 정치철학, 이념 체계가 아닙니다. 서양의 전통과는 다른 심오한 영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유교는 인간의 상호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세계 그리고 우주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사상입니다. (63쪽) 


유교에서의 인간은 우주적인 존재이지 인간 중심적인 개인이 아닙니다. 인간을 대우주와 관련한 소우주로 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주와 지구, 인간이 세 개의 꼭짓점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67쪽) 


우주로의 지향성은 곧 인간 정체성의 기초입니다. 고유의 의식을 가진 인간은 우주가 진화하는 과정의 주변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인간은 우주의 진화 과정에서 탄생한 중심적인 존재이며, 우주의 미래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76~77쪽) 


우리는 인간중심주의적인 생각 너머에 더욱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 존재의 핵심인 ‘소중한’ 지구 말입니다. 소중한 지구라는 개념으로 우리는 인간중심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모든 생명체들을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106쪽) 


휴머니즘은 인간성의 표현이면서 인간을 초월한 우주적인 과정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을 참여자로 인식해야 합니다. (112쪽) 


생산에 집중한 전통적인 사회에서의 자연은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무한한 배경이었습니다. (…) 환경이 오염되어도 거대한 자연이 알아서 정화시키겠지 하며 그냥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러한 게임을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자연은 더 이상 그러한 작용을 할 수 없습니다. (147~148쪽) 


자연환경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우리 자신의 유한성을 인지해야 합니다. 자연은 결코 무한한 배경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인간에 의해 쉽게 파괴될 수 있는 아주 취약한 존재입니다. 바로 여기에 역설이 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강하다고 느끼며 지구를 정복하는 순간, 오히려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태롭게 만듭니다. (151쪽) 


오늘날과 같이 열린 상황에서는 여러 옵션 중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릅니다. 새로운 자유와 가능성, 새로운 복종과 지배, 새로운 고통과 같은 열린 가능성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새로운 기회가 열리기 마련이니까요. (163쪽) 


우리는 지구 생태계라는 전체적인 맥락을 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지구 생태계의 일부분입니다. 이러한 소속감을 망각하면 곧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구 우주선’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우주선 안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175쪽) 


우리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시대, 즉 지구에서 새로 시작된 인류세의 첫 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이 지구 우주선의 마지막 세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시대의 첫 세대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194쪽)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구 우주선의 가족 구성원입니다. ‘나’와 ‘너’가 아닌 ‘우리’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한 가족 안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 또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구시민으로서의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199~200쪽) 


새로운 보편성은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에 위치하며, 평행 이동하는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보편성은 다양한 특수성 사이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특수성 위에 두어서도 안 됩니다. 다시 말해 보편성을 최상위 가치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뒤집을 필요가 있습니다. (230쪽) 


보편성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우선 각기 다른 특수성 사이에서 상호 이해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상호 이해란 각자의 특수성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지 특수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닙니다. (231쪽) 


우리의 유일한 선택은 개방 그리고 타인과의 연대 추구입니다. 그 연대는 특수성과 개별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특수성을 충분히 살리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결국 진정한 보편성이란 서로 다른 특수성을 연계하는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매개체를 통해 특정한 지역이나 나라가 아닌 인류 전체에 행복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240~241쪽) 


최진석
“당신은 보편적 이념의 수행자입니까, 자기 꿈의 실현자입니까?”

“당신은 바람직함을 지키며 삽니까, 바라는 걸 이루며 삽니까?”

“당신은 원 오브 뎀one of them입니까, 유일한 자기입니까?”


-EBS [인문학 특강] 화제의 명강,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를 책으로 만나다!


EBS [인문학 특강]에서 최진석 교수가 청중에게 던진 이 세 가지 질문은, 지식과 경험을 쌓아가지만 더 자유롭지 못하고 더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고, 이후 그의 강연에 더욱 열광하게 만들었다. 저자 최진석 교수는 대학과 기업, 각종 단체를 종횡무진하며 사람들의 생각을 명쾌하게 만들고 허를 찌르는 깨달음과 감동을 선사하는 동양철학의 대가이자 ‘창조 인문학의 전도사’로 통한다. 그는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을 통해, 2500년 전 노자의 생각법에서 ‘현대인의 생존법’을 끄집어내는 동시에 지금 우리의 삶과 사유를 뒤흔드는 통찰을 전달한다.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은 단순히 노자 철학을 소개하거나 《도덕경》을 해설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노자와 《도덕경》을 화두로 삼아, 인류의 생각과 철학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피는 것부터 시작하여 인생 철학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또 개인의 삶을 바꾸는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를 변혁하는 데 노자의 사상이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도 설명한다. 노자의 시대적 맞수 공자의 사상과 치밀하게 비교하는 것은 물론이고, 헤겔·다윈·마르크스·프로이트·니체 등 근현대 서구의 사상가들과도 전방위적으로 견주며 노자를 현대적으로 재탄생시킨 저자의 지적 모험은 인문학적 생각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길로 인도한다


최진석
 세상에 없던 수업, 우리가 기다려온 통찰!

철학 없는 시대를 위한 최진석 교수의 생각 혁명 





◎ 도서 소개


지식을 버리고 철학을 시작하라! 


인문학자 최진석 교수가 제시하는

 생각의 노예에서 생각의 주인이 되는 법 


 왜 우리는 철학을 해야 하는가? 철학이 나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철학이 지금 이 시대를 극복할 해답을 줄 수 있는가? 소란 섞인 건국, 기적적인 산업화, 혁명적인 민주화는 이루어냈지만 개인의 삶으로도, 국가적으로도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 지금 우리는 전진과 후퇴의 경계에 서 있다.

그리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철학을 시작하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철학은 철학자들이 남긴 내용을 숙지하거나 그들을 따라 살아보는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즉 누군가가 한 생각의 결과를 ‘배우는’ 철학이었다. 그러나 철학은 이론화된 진리를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철학이란 스스로 삶에 관해 직접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그리고 생각하지 못하는 개인으로 이루어진 국가는 그 방향성을 상실한 것과 같다. 생각의 높이가 시선의 높이를 결정하고, 시선의 높이가 활동의 높이를 결정하며, 활동의 높이가 삶의 수준을 결정하여, 결국 세계의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철학이란 자기 스스로 삶의 격을 결정하는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갖는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

2015년 건명원(建明苑)에서 진행한 다섯 차례의 철학 강의를 묶은 이번 책은 건명원의 초대 원장인 최진석 교수가 개인과 사회를 날카롭게 관찰해온 사유의 결정체다. 저자는 나라를 이끌어갈 개인을 각성시키고 함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혁명가이자 문명의 깃발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며 인문적, 지성적, 문화적, 예술적 차원으로의 선진화를 철학을 통해 제시한다. 





◎ 출판사 서평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우리 사회는 개인의 삶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지금 전진과 후퇴의 경계선에 서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한탄했던 비주체적이고 비독립적인 1925년의 조선과 2017년의 대한민국은 달라진 것이 없다. 선진화로의 상승은 고사하고 민주화 이전의 단계로도 역행하는 형상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는 철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철학은 문명의 끝에 자리하여 우리가 걸어온 삶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철학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전술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시선을 통해 전략적인 차원으로의 상승을 이끌며 기능적인 대답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체적이고 인격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주위의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 온전한 나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획득한 생각의 높이는 시선의 높이를, 시선의 높이는 활동의 높이를, 활동의 높이는 다시 삶의 수준을 상승시키며, 이는 결국 국가의 수준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인문적, 지성적, 문화적, 예술적 차원으로의 선진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는 서양 주도의 세계에서 동양이 어떻게 가치를 회복할 것인가와도 궁극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철학은

 국가 발전의 기초다 


 진정한 의미의 철학은 ‘부정(不定)․선도(先導)․독립(獨立)․진인(眞人)’의 네 단계를 통해 현실 속에서 구체화된다. 즉 기존의 것을 철저히 ‘부정’하고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며 기존의 것과의 불화를 자초하는 용기를 통해 종속적인 나에서 ‘독립’해 주체적인 나를 회복함으로써 자신만의 진리를 구성하는 참된 나, 즉 ‘진인’을 이루는 것이다.

본래 서양의 학문인 철학은 서양이 세계를 바라보는 전략적 시선의 합으로, 이러한 철학이 동아시아에 진입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서양의 제국주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완전 승리를 의미하는 첫 사건인 1840년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1860년 베이징조약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동양을 패배시킨 서양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 꾸준히 관찰한다. 구국구망(救國救亡), 즉 조국과 민족을 모두 구해내기 위한 방법으로 서양학습(向西方学習)을 택한 것이다.

그 시작으로 서양의 대포와 군함을 핵심으로 한 과학기술을, 다음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치제도를 받아들였으나 종래에는 그 배후의 힘이 문화, 윤리, 사상, 철학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서양의 것으로 일순간 바꾸어버린다. 문화, 윤리, 사상, 철학이야말로 국가를 지배하는 가장 높은 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철학이란 인간 개인의 독립적인 삶을 넘어 한 국가의 선진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기준이 된다. 중국이 철학을 통해 서양을 증오하는 것에서 나아가 전략적으로 극복하고자 한 것처럼 우리 또한 지금의 대한민국을 분노의 대상이 아닌 전략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철학 속에 있는 것이다. 


배우는 철학에서

 생각하는 철학으로 


 지금까지 우리는 한번도 진정한 의미의 철학을 한 적이 없다. 철학은 보통 명사와 같이 쓰이지만 동사로 작동할 때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이제 우리는 철학자들이 남긴 내용을 단순히 숙지하는 ‘배우는’ 철학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철학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태어난 것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인 세계를 배재한 철학은 진정한 의미의 철학이 아니며 이러한 이론으로서의 철학을 진리인양 믿는 것, 나아가 철학을 직접 생산하지 못하고 수입한다는 것은 곧 생각을 수입한다는 것과 같다. 그리고 생각의 종속은 가치관뿐 아니라 산업까지도 포함해 삶 전체의 종속을 의미한다. 즉 철학이란 자기 스스로 삶의 격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 한마디로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갖는 것이다.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는 분열된 삶에서 벗어나 해와 달을 동시에 장악하는 활동성[明]을 통해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곳[苑]으로 건너가는 도전을 하는 것이야말로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훈고(訓詁)적 기풍에서 벗어나 창의적 기풍을 생산하는 선진화의 길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철학을 배우는 것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이동시키는 첫 시도며 개인, 더 나아가 사회가 철학적 시선을 갖도록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 본문 중에서


철학을 수입한다는 말은 곧 생각을 수입한다는 뜻입니다. 생각을 수입한다는 말은 우리가 수입하는 그 생각의 노선을 따라서 산다는 뜻이고요. 생각의 종속은 가치관뿐 아니라 산업까지도 포함해 삶 전체의 종속을 의미합니다. (24~25쪽) 


지금과는 전혀 다르면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그 시선이 인문적 시선이고 철학적 시선이고 문화적 시선이며 예술적 시선입니다. 이 차원의 시선을 우리의 것으로 가져야만 ‘따라하기’가 선도하기로 바뀌고, 훈고의 습관이 창의의 기풍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28쪽) 


철학적인 높이로 상승한 단계의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바로 전면적인 부정을 이야기합니다. 전면적인 부정은 새로운 생성을 기약하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생성이라는 것은 바로 전략적인 높이에서 자기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자신이 직접 그 길을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76쪽) 


지금 우리가 철학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이유는 동아시아 역사에서도 보았듯이 서양에 대한 패배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동아시아적인 승리, 동아시아적인 가치를 회복할 것인가 하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77쪽) 


철학이란 철학자들이 남긴 내용을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삶의 격을 철학적인 시선의 높이에서 결정하고 행위하는 것, 그 실천적 영역을 의미합니다. (92쪽) 


철학적 지식, 그것은 철학이 아닙니다. 철학은 기실 명사와 같은 쓰임을 갖고 있지만, 동사처럼 작동할 때만 철학입니다. (114쪽) 


어떤 나라가 문화적인가 아닌가 하는 점은 바로 장르를 만들 수 있는지의 여부가 결정한다고 봅니다. (…) 장르를 만들면 그 장르가 새로운 산업이 되어서 경제적인 성취를 이루고, 경제적인 성취가 힘을 형성하여 앞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장르−선도력−선진은 이렇게 연결됩니다. 장르를 개인 차원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꿈’입니다. (121~122쪽) 


자신에게만 있는 이 궁금증과 호기심이 안에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일, 이것을 질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질문할 때에만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 고유한 존재가 자신의 욕망을 발휘하는 형태가 바로 질문입니다. 그래서 질문은 미래적이고 개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125쪽) 


철학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발생합니다. 그래서 시대의 자식으로 태어납니다. 모든 철학은 그 시대를 관념으로 포착해서 고도의 추상적인 이론으로 구조화한 것입니다. (158쪽) 


우리가 철학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높은 차원에서 현실로서의 지금 이 세계를 읽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사유를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사유하는 것입니다. (163쪽) 


아직은 오지 않은 곳으로 건너가려는 시도, 이것이 반역의 삶입니다. 모든 창의적 결과들은 다 반역의 결과들입니다. 우리나라처럼 특히 훈고의 기풍으로만 채워진 상황에서 이는 더욱 절실한 삶의 태도이지요. (170쪽) 


탁월한 인간은 항상 ‘다음’이나 ‘너머’를 꿈꿉니다. 우리가 ‘독립’을 강조하는 이유도 ‘독립’만이 ‘다음’이나 ‘너머’로 넘어가도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머’나 ‘다음’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 이때 불안을 감당하면서 무엇인가를 감행하는 일을 비로소 ‘용기’라고 말할 수 있죠. (223쪽) 


나와 사회를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기풍으로 채우는 일은 결국 나와 사회를 인격적으로 성숙시키는 일이며 또한 인격적으로 준비시키는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 대답은 기능이지만, 질문은 인격입니다. 창의성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인격이라는 토양에서 튀어나오는 것이죠. (240~241쪽) 


자기살해를 거친 다음에야 참된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등장합니다. 이 참된 인간을 장자는 ‘진인(眞人)’이라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무아(無我)’라는 표현도 글자 그대로 ‘자신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참된 자기로 등장하는 절차를 말하는 것이지요. (244쪽) 


푸코는 이러한 종속적 주체성을 벗어나서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자신이 하는 모든 판단과 행위가 모두 자기의 결정으로부터 나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주체, 이 사람이 능동적 주체입니다. (249쪽) 


우리는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는 지(知)에 매몰되어 한편을 지키는 일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해와 달을 동시적 사건으로 장악하는 명(明)의 활동성을 동력으로 삼아 차라리 황무지로 달려가야 합니다. 이미 있는 것에 편입되어 안정되기보다는, 아직은 이름 붙지 않은 모호한 곳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흔들리는 불안을 자초해야 합니다. 훈고에 갇힌 조국에 창의의 기풍을 생산하려 덤벼야 합니다. (285쪽) 


성숙된 개인은 그냥 ‘개인’이 아닙니다. (…) 성숙된 개인은 반드시 그 성숙도에 따라 동조자를 갖게 됩니다. 즉 사회적 확산을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302쪽) 


모든 철학가나 예술가가 혁명가이고 더 나아가 문명의 깃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 개인의 성숙은 매우 높은 수준의 사회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305쪽) 


생각의 결과들이 어떤 구체적인 세계를 토대로 형성된 것인지를 이해한 후, 지금의 세계에서 나에게 포착된 시대의 문제를 지성적인 높이에서 계속 생각해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철학입니다. 생각의 결과를 배우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철학인 것입니다. (319쪽) 


©2017 GoogleSite Terms of ServicePrivacyDevelopersArtistsAbout Google
By purchasing this item, you are transacting with Google Payments and agreeing to the Google Payments Terms of Service and Privacy Not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