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기피하는 오염 지역에서 살아남아 보육원의 골칫거리로 자라온 소녀, 차온.
정해진 운명을 바꾸고자 애쓰던 때 수상한 남자를 만난다.
이질적인 회색 눈동자가 특별한, 아름다운 남자를.
“첩자가 되겠다고?”
“네. 여기서 죽을 수 없으니까요.”
남자를 만난 게 운명을 바꿀 기회임을 차온은 알았다.
그 기회의 끝이 눈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다른 기회를 잡았을까.
* * *
첫 만남부터, 우연히 마주쳤을 때도 차온은 전혀 기죽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차온은 절망했다.
아름다운 남자, 시열은 차온을 이해할 수 없었다.
“걱정하다가 죽고. 봐주다가 죽고. 믿다가 뒤통수 맞고. 여기가 좀 그래. 그러니 먼저 죽여야지.”
“그쪽 옆에 있으면 나는, 나는 얼마 안 가서 모든 선을 다 넘어 버릴 것 같아요.”
시열은 거칠게 차온의 뺨을 잡아서 위로 들었다.
그 바람에 차온의 눈에 고인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보육원에 처박혀서 나오지 말지 그랬어.”
차온의 입술이 벌어졌다. 꽤 모양이 예뻤다.
“그럼 이런 일 안 겪었잖아.”
시열은 붙잡혀 도망가지 못하는 차온의 입술에 키스했다.
울음기 낀 목소리가 그대로 삼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