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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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다

새롭게 새기는 셰익스피어 문학의 정수

 

영국이 낳은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창비세계문학 50)이 셰익스피어 400주기를 맞아 유려한 우리말 번역으로 창비세계문학에서 새롭게 선보인다. 설준규 한신대 명예교수가 십여년에 걸쳐 다듬고 골라 완성한 이번 번역은 여러 권위 있는 편집본들을 꼼꼼히 대조하고 비평의 역사와 최근의 연구 성과를 두루 참조하여, 셰익스피어의 원문이 지니는 깊이와 아름다움을 적확하면서도 유려하게 새기고 있다. 운문과 산문으로 나뉜 원문의 특성을 매끄럽게 살리고, 셰익스피어의 천재적인 언어 구사와 연출 능력을 보여주는 시적 효과들을 세심하게 살폈다. 또 자유자재로 언어를 부리는 셰익스피어의 마술적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주인공 햄릿을 비롯하여, 인물과 상황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변화하는 언어들을 최대한 그 말맛에 걸맞게 옮기려는 시도가 단연 돋보인다.

성실한 번역에 더해, 300개에 가까운 주석으로 작품 이해를 도왔으며, 판본 등에 관한 배경지식부터 『햄릿』 해석의 주요 문제들과 번역상의 고민까지 고루 짚어주는 작품해설 및 고전적 평자들의 견해 중 흥미로운 내용들을 한데 엮은 부록을 100면 넘는 분량으로 수록하여, 셰익스피어를 처음 접하는 독자는 물론, 깊이 있는 번역본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도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한 시대가 아닌 모든 시대를 위한 작가 셰익스피어

그가 남긴 문학사상 가장 빛나는 희곡 『햄릿』

 

셰익스피어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이자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하나다. 당대에 이미 “한 시대가 아닌 모든 시대를 위한 작가”라는 조사로 그의 죽음을 기렸고, 이후 400년이 지나도록 살아남아 모든 세대, 모든 장르의 작가와 예술가 들에게 영향을 주며 그야말로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셰익스피어는 가장 현대적인 작가로서, 전세계에서 그 어느 작가보다도 더 활발히 언급되고, 공연되고, 차용되며 오늘의 세계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그는 언어권을 초월해 무수한 창작물에 영감이 되어왔으며, 누구도 그의 문화적 영향을 피해가기란 불가능하다.

셰익스피어는 평생 약 37편의 희곡과 154편의 쏘네트, 2편의 이야기시 등을 남겼는데, 그중 백미를 이루는 것이 ‘4대 비극’이라 불리는 1600년대 초반에 연달아 집필한 4편의 희곡이다. 1600년경에 발표된 『햄릿』은 4대 비극 중 가장 먼저 발표된 것으로, 셰익스피어 생전에도 가장 인기 있는 공연 중 하나였고 지금도 가장 많이 상연되고, 인용되고,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는 셰익스피어 문학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다. 『햄릿』을 한번도 접한 적이 없더라도 햄릿이 누구인지 알며, 한줄 한줄 거의 모든 문장이 인용되는 『햄릿』 속 표현들은 누구에게나 친숙할 정도다. 하지만 역시 『햄릿』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장은 극의 전환점에 놓인 햄릿의 독백을 여는 첫 줄,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일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발명한 가장 유명한 인간 햄릿

유려한 우리말 번역으로 다시 만나는 『햄릿』

 

“이대로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다.

어느 쪽이 더 장한가, 포학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으로 받아내는 것,


아니면 환난의 바다에 맞서 무기 들고

대적해서 끝장내는 것? 죽는 것—잠드는 것,

그뿐.”(3막 1장, 90~91면)

 

“만(萬) 사람의 마음을 지녔다”라고 일컬어질 만큼 인간에 대한 다각적이고 깊은 이해를 보여준 셰익스피어는 두고두고 다양한 해석과 비평을 불러일으킨 흥미로운 인물들을 창조해냈다. 셰익스피어의 공헌은 언어적인 천재를 발휘하여 근대 영어에 막대한 유산을 남긴 것이나 탁월한 연출 감각으로 연극 장르에 근간을 마련한 점에도 있겠으나, 그의 작품들이 여전히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데에는 “인간을 발명했다”고 표현될 정도로 인간 본성에 대한 유례없는 탐구와 성찰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데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희비극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현실의 인간보다 더 현실적인” 다양한 인물들을 창조해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햄릿은 문학사에 등장한 어떤 인물보다도 더 강렬하고 생생하게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해왔다. 시대를 거듭하며 햄릿의 인간됨과 행동을 둘러싸고 이미 너무나도 많은 분분한 해석이 쏟아졌지만, 햄릿은, 그리고 『햄릿』은 언제나 늘 새로운 의문과 여백을 남기며 다음 세대의 독자들을 기다린다.

연극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사로 꼽히는 “To be, or not to be”는 이러한 『햄릿』의 매력을 대변해주는 문장이다. 특히 번역본에서 이 독백은 여기에 함축된 포괄적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번역할 것인지에 따라 작품이나 인물에 대한 독해에 미묘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번 창비세계문학 번역본에서는 “이대로냐 아니냐”로 옮겼는데, 현실을 이대로 받아들일지 맞서 싸울지 삶의 방식을 두고 치열하게 자문하는 햄릿 독백의 문맥을 좀더 명확히 하고, 죽음의 문제까지 포함해서 삶의 근본적 변화를 모색하는 햄릿의 내면이 더 포괄적으로 드러나게 하려는 시도다. 역자 설준규 명예교수는 비단 이 문장을 다시 새기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간 축적된 『햄릿』 연구의 성과를 반영하고 셰익스피어의 언어에 대한 탐구와 영어-한국어 번역의 일반 문제들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셰익스피어의 원문이 지니는 깊이와 아름다움이 적확하면서도 유려한 한국어 문장으로 거듭나도록 공들여 우리말 『햄릿』 번역사에 새로운 예를 제시한다. 마술같이 능수능란한 셰익스피어의 언어들을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옮기되, 각각의 특성과 의미, 시적 효과를 신중하게 고려하였으며 인물과 상황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어투를 최대한 살린 번역으로 지금 우리말로 다시 읽는 『햄릿』의 의미를 한층 풍성하게 끌어내고 있다. 또 충실한 원문 번역에 꼼꼼하게 주석을 달고, 고금의 비평적 견해와 배경지식을 고루 소개하는 100여면에 달하는 작품해설 및 부록을 덧붙여 『햄릿』 읽기의 역사를 맛보고 독서를 더욱 즐겁게 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도록 하고 있다.

 

 

‖ 차례

 

등장인물

 

햄릿

 

부록 / 비평적 견해들

작품해설 / 『햄릿』 곰곰이 읽기

Ⅰ. 저작 연도, 판본, 출전, 언어

Ⅱ. 눈여겨볼 만한 이모저모

햄릿의 사람됨/햄릿의 복수 미루기?/유령/햄릿 vs. 레어티즈 vs. 포틴브라스/선왕 햄릿 vs. 현왕 클로디어스/덴마크라는 감옥, 그리고 폴로니어스/극중극: 무언극과 「곤자고 살해」/클로디어스의 ‘기도’와 햄릿의 선택/햄릿, 거트루드를 맞대면하다/돌아온 햄릿, 떠나는 햄릿

Ⅲ. 햄릿의 독백은 어떻게 번역되었나: “To be, or not to be”

번역을 마치고

작가연보

 

발간사

 

 

 

‖ 책 속에서

 

“이대로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다.

어느 쪽이 더 장한가, 포학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으로 받아내는 것,


아니면 환난의 바다에 맞서 무기 들고

대적해서 끝장내는 것? 죽는 것-잠드는 것,

그뿐.”(3막 1장, 90~91면)

 

“이 뒤엉킨 삶의 결박 풀어 던졌을 때,

저 죽음의 잠 속에 찾아들 꿈 떠올리면,

우리는 망설일 수밖에—그런 까닭에

이리도 긴 인생이란 재앙이 빚어지는 것.”(3막 1장, 91면)

 

“세상 관절이 다 어긋났어. 오, 저주스러운 악연,

내 굳이 태어나 이를 바로잡아야 하다니.”(1막 5장, 52면)

 

“인간이란 정말 대단한 걸작 아닌가? 이성은 얼마나 고결하고 능력은 얼마나 무한하며, 형상과 동작은 얼마나 반듯하고 장하며, 행동은 얼마나 천사 같고 이해력은 또 얼마나 신과도 같은가! 세상의 꽃이요 짐승들의 귀감이지—하지만, 내게, 이 티끌 중의 티끌이 다 뭐란 말인가? 난 인간이 시들해.”(2막 2장, 73면)

 

“죄는 이미 지은 것—허나 오, 어떤 기도가

내게 맞을까? ‘흉측한 살인을 용서하소서’?

그건 안되지. 살인으로 얻은 것들을

여전히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내 왕관, 내 야심, 그리고 내 왕비를.

용서도 받고 죄의 열매도 지킬 수 있을까?”(3막 3장, 120면)

 

“덴마크 왕국 안에 무언가 썩었어.”(1막 4장, 43면)

 

“좋고 나쁜 것이 따로 있나, 생각에 달렸지. 내겐 덴마크가 감옥일세.”(2막 2장, 71면)

 

 

‖ 추천 및 수상 내역

 

미국 SAT 추천 도서

서울대 권장도서 100

『가디언』 선정 ‘최고의 소설 100’

『뉴스위크』 선정 ‘최고의 명저 100’

노턴 출판사 선정 ‘영어권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문학작품 20’

 

 

‖ 옮긴이의 말

 

To be, or not to be. 『햄릿』의 이 독백은 셰익스피어의 대사 중, 아니, 유럽 연극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사일 것이다. 이 독백의 첫 행은 대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정도로 번역된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질문은 삶과 죽음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일 것인가 싸워서 넘어설 것인가 하는 삶의 방식에 관한 것이다. 동사 ‘be’는 ‘있다’와 ‘이다’ 두 뜻을 포괄하는데, 이 대목에도 두 뜻이 모두 실려 있다. ‘현 상태 그대로 있을 것이냐, 아니면 삶의 (죽음을 포함한) 근본적 변화를 모색할 것인가’라는 뜻으로 읽히기를 기대하면서 지금처럼 옮겨보았다.

백년 가까운 우리말 『햄릿』 번역사에 또 하나의 역본을 보태며, 역자 나름으로 공들였던 주요 사항들은 작품해설에 소상히 밝혀놓았고, 그밖에도 『햄릿』의 큰 매력인 등장인물들의 각인각색 말투를 실감 나게 옮기는 데도 적잖이 품을 들였다. 아울러 판본들 간 주요한 차이를 역주로나마 반영하여, 한가지 판본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햄릿』의 복합적 면모를 조명해보려고 했다.

—설준규(한신대 명예교수, 영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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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by Susan Snyder

The Folger Shakespeare Library in Washington, DC, is home to the world’s largest collection of Shakespeare’s printed works, and a magnet for Shakespeare scholars from around the globe. In addition to exhibitions open to the public throughout the year, the Folger offers a full calendar of performances and programs. For more information, visit Folger.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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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itional Information

Publisher
창비 Changbi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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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Nov 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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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s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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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36405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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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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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res
Drama / European / English, Irish, Scottish, Welsh
Literary Collections / American / General
Literary Collections / Ge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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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보석이여!”

단편소설의 제왕 체호프의 대표 중단편선

문학적 원숙기를 여는 중편 「지루한 이야기」 국내 초역

 

20세기 현대문학의 초석을 세운 단편소설의 제왕이자 셰익스피어에 비견되는 천재 극작가로 평가받는 러시아 대문호 안똔 체호프의 중단편선. 이 선집에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중편 「지루한 이야기」(1889)와 함께, 기괴함과 사실주의가 결합되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문제작 「검은 옷의 수도사」(1894), 그리고 가장 완성도 높은 대표작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1899) 등 3편의 작품이 묶여 있다. 국내 초역작인 「지루한 이야기」는 체호프의 저술 활동 10년을 결산하고 문학적 원숙기를 여는 이정표가 된 작품이며, 의사로서 그의 경력이 작가 체호프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새롭게 확증해준 작품이다. 어떤 문학사적 명명으로도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체호프는 막심 고리끼, 캐서린 맨스필드, 존 치버 등 여러 현대소설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삶이 지닌 범속함과 모호함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려낸 독특한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번역자 석영중 교수는 상세한 작품해설로 각 수록작의 의의뿐 아니라 의사와 작가라는 두가지 상보적 정체성을 지녔던 인간 체호프와 그의 문학을 좀더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맥락을 제공해준다.

 

 

삶의 모호함과 슬픔을 응시하는, 체호프 문학의 전환점

의사 체호프와 작가 체호프가 함께 쓴 「지루한 이야기」

 

“체호프는 글쓰기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했다. 세상 어디에서도 만나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글쓰기다. 그는 인상파 예술가들처럼 자기만의 특별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똘스또이

 

중편 「지루한 이야기」는 체호프가 생활비를 벌 목적으로 1880년부터 시작한 10년간의 저술 활동을 뒤로하고 작가로서 원숙기에 접어들며 발표한 첫 작품이다. 농노의 손자이자 도산한 잡화상의 아들로서 경제적으로 늘 어려웠던 체호프는 의과대학 재학 시절부터 졸업 후 의사로 일하는 동안에도 잡지에 필명으로 짤막한 이야기들을 기고한 고료로 생계를 꾸려갔다. 러시아 문단의 원로 그리고로비치와 제정러시아의 인기 일간지 편집장 알렉세이 쑤보린이 그의 재능을 알아본 1886년 이후에야 체호프는 더 적은 수의, 더 뛰어난 작품을 본명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889년작 「지루한 이야기」를 기점으로 체호프는 작가적 입지를 더욱 굳혀갔다.

‘어느 노인의 수기’라는 부제가 붙은 「지루한 이야기」는 한 명망 높은 병리학자의 말년을 통해 평생의 신념과 통합적 감수성이 허물어지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 그동안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체호프의 중단편 중 단연코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체호프가 처음으로 폐결핵 징후를 보인 해에, 형 니꼴라이의 사망 직후 쓰인 이 작품은 죽음을 앞두고 병증을 자각하는 노교수의 시각으로 죽음이란, 또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노교수는 “재능 있는 손끝에서 창조된 아름다운 예술품”과 같았던 지난 삶과 어울리는 ‘인간다운 죽음’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만일 죽음이란 것이 실제로 닥쳐온 위험이라면 나는 그것을 교사이자 학자이자 그리스도교 국가의 시민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맞이해야 하겠지. 즉 용감하고 평화로운 영혼으로 말이야. 그렇지만 나는 지금 피날레를 망치고 있어.”(63면) 삶의 끝자락에 선 노인은 온몸으로 허무감을 느끼지만, 실패였다고 규정하기에 그의 삶 곳곳에 밴 행복의 단서들은 너무나 아름답다.

똘스또이의 평가처럼 체호프의 단편소설이 새로운 종류의 글쓰기로서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데에는 그의 의사로서의 경력이 크게 작용했다.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은 후에도 체호프는 공공의료 사업에 헌신하는 ‘젬스뜨보(Земство) 의사’로서 직업적 소명을 다했다. 「지루한 이야기」에서 체호프는 형이상학적 관념 대신 고통에 관한 물리적인 개념과 어휘로 나이듦을 성찰하고 생의 굴곡을 응시한다. 이 소설이 노화의 증상들을 관찰하고 거기서부터 실존적 사색을 이끌어낸 것은 체호프가 가진 의사의 눈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의사로서의 체호프는 그의 문학에 객관성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작품에 박애주의의 자리를 마련했고, 현실로 구체화되지 않는 사상은 무의미함을 깨닫게 해주었으며, 신념과 현실 사이의 모순에 관한 작가적 성찰을 이끌어냈다. 체호프가 다른 선배 대문호들과 달리, ‘도덕’이나 ‘구원’ 같은 특정 주제나 사상을 자신의 문학의 핵심으로 내세우지 않은 이유는 책상물림 대신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의미와 무의미 사이 인간 실존을 탐사하는 소설들

문제작 「검은 옷의 수도사」와 대표작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범속하고 천박하고 시시한 삶을 윤색 없이, 마치 관찰자처럼 그렸던 체호프는 일각에서 ‘절망의 작가’로 불리기도 했으나, 절망은 결코 그의 결론이 아니었다. 그는 답을 열어둔 채, 철저하고 냉정한 관찰을 통해 인간적인 것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이었다. 체호프의 문학이 범속성을 주로 다룬다 함은 그가 계급이나 지위를 불문하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삶의 핵심에 관심을 두었다는 뜻이다.

「검은 옷의 수도사」는 사실주의와 신비주의가 기이하게 결합해 있어 체호프의 단편소설 중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1890년 악명 높은 유배지 싸할린 섬을 탐사한 이후 체호프가 인간에 대한 깊어진 이해를 바탕으로 쓴 작품 중 하나로, 작가 자신은 이를 과대망상을 주제로 한 의학소설이라 명명했다. 한 촉망받는 젊은 인문학자가 환각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수도사를 만나며 정신적, 신체적으로 변해가는 이야기다. 발표 당시부터 ‘검은 옷의 수도사는 영감을 주는 정령인가, 파멸시키는 악마인가’ ‘청년은 비극적 천재인가, 추악한 이기주의자인가’ 등 저자의 의도와 내용의 의미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체호프에게 현상 자체는 도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체호프 특유의 모호함과 기괴함을 통해 소설은 환대가 일순간 뒤틀린 열정이 되고, 사랑이 어느 틈에 몰이해가 되고, 자유로운 정신 활동이 어느새 병증이 되는 인간의 조건을 절묘하게 보여준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체호프가 건강 악화로 요양차 이주한 얄따에서 현지를 배경으로 집필한 작품으로, 체호프 단편소설 중 손꼽히는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이기적인 중년 남성과 특별한 매력 없는 젊은 여성 간의 불륜은 체호프의 손에서 사랑의 질료인 시간과 연민에 대한 성찰로 변화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남녀의 불륜이라는 통속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도덕주의를 따르지 않는 이 소설은 이전의 체호프 소설에는 낯설었던 ‘사랑’이라는 주제를 문학적으로 완성시킨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옮긴이의 말처럼 “범속한 불륜이 닥터 체호프의 시각에 포착된 삶의 일면이라면, 그 범속한 일상 속에서 작은 의미의 불씨를 찾아낸 것은 작가 체호프의 눈이리라”(244면).

『지루한 이야기』에 실린 3편의 중단편은 44세의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체호프가 불과 29세에서 39세 사이에 발표한 소설들임에도 각각의 방식으로 원숙함의 경지를 보여주며, 누추한 일상과 그 안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들을 확인하게 해준다.

 

 

‖ 차례

 

지루한 이야기

―어느 노인의 수기

 

검은 옷의 수도사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작품해설/모호하고 슬픈, 그래서 매혹적인

작가연보

발간사

 

 

 

‖ 책 속에서

 

“그녀에게 아이스크림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의 척도였다. 나를 칭찬하고 싶으면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바닐라 맛이야.’ 그녀의 손가락에는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하나는 피스타치오, 다른 하나는 바닐라, 세번째는 산딸기, 이런 식이었다. 아침에 인사를 하러 들어오면 나는 그녀를 무릎에 앉히고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며 말하곤 했다. ‘바닐라…… 피스타치오…… 레몬……’” (「지루한 이야기」, 17면)

 

“이 시간이면 누군가 방에 들어올까봐 두렵고 갑자기 죽을까봐 두렵고 내 눈물이 부끄럽다. 전반적으로 내 영혼 속에 무언가 견딜 수 없는 게 있다는 느낌이 든다. 더이상 램프도 책들도 마룻바닥 위의 그림자도 거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참을 수가 없다.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나를 거칠게 아파트에서 끌어낸다. 나는 벌떡 일어나 서둘러 옷을 입고 집안의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살금살금 거리로 나간다. 어디로 가느냐고?

여기에 대한 답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머릿속에 들어앉아 있다. 까쨔한테로.” (「지루한 이야기」, 57면)

 

“내가 아무리 많이 생각해도, 그리고 내 생각의 범위가 아무리 넓어도, 내 소망은 무언가 아주 중심적인 어떤 것, 대단히 중요한 어떤 것을 결여한다. 그걸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과학에 대한 나의 애착, 더 살고 싶다는 나의 소망, 낯선 침대에 앉아 스스로를 알려고 하는 시도, 이 모든 생각과 감정, 그리고 내가 삼라만상과 관련하여 정립하는 개념들에는 모든 것을 하나의 전체로 엮어주는 공통적인 무언가가 빠져 있다. 내 안에서는 감정과 생각이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아무리 능숙한 분석가라 할지라도 과학과 연극과 문학과 학생들에 관한 내 의견, 그리고 내 상상력이 그리는 온갖 그림에서 살아 있는 인간의 신이라 알려진, 혹은 공통이념이라 알려진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지루한 이야기」, 102~03면)

 

“어째서, 어째서 당신들은 나를 치료한다고 했지? 브롬화칼륨, 휴식, 뜨거운 목욕, 감시 감독, 내가 한모금 넘길 때마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안달복달하기, 이 모든 것이 결국 나를 멍청이로 만들 거라고. 그래, 나 미쳤었어. 과대망상증이 있었어. 하지만 그때는 즐거웠고 건강했고 행복했어. 나는 재미있고 창조적인 인간이었지. 지금 나는 좀더 합리적이고 좀더 튼튼하게 되었어. 하지만 그 대신 그냥 보통 사람이 되었어. 평범한 놈이 되었어. 사는 게 지겨워…… 아, 당신들 나한테 정말로 잔인했어!” (「검은 옷의 수도사」, 154면)

 

“너무나도 평범한 이 말이 어쩐 일인지 구로프를 갑자기 당혹스럽게 했다. 그의 말은 모욕적이고 불결하게 들렸다. 이 무슨 몰상식한 인간들인가! 이 무의미한 밤들, 이 재미없고 따분한 날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광란의 카드 게임, 폭식, 만취, 늘 똑같은 수다. 불필요한 행동과 판에 박힌 듯한 이야기들이 세월의 가장 좋은 부분과 활력을 가로채가고 결국 남는 것은 꼬리도 잘리고 날개도 잘린 삶인데, 우리는 마치 정신병동이나 수인부대에 감금이라도 된 듯 거기서 도망칠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다니!”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186면)

 

“어쩌면 이 변함없음, 우리 개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 완벽한 무관심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지상의 삶과 중단 없는 완성을 약속해주는지도 모른다. 새벽의 여명 속에서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이는 젊은 여성과 나란히 앉아 있노라니 구로프는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바다와 산과 구름과 드넓은 창공이 그리는 동화처럼 아름다운 광경에 매혹되었다. 우리 스스로가 존재의 고결한 목적과 자신의 인간적 가치에 관해 잊은 채 생각하고 저지르는 일들을 제외한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186면)

 

 

‖ 옮긴이의 말

 

체호프는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위대함을 추구했던 작가다. 그는 낙관과 염세 사이, 웃음과 눈물 사이, 의미와 무의미 사이, 진지함과 시시한 것 사이의 경계선에 놓인 우리 대부분의 삶을 객관적이고 냉정한 의사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강인한 의지와 열정으로 삶을 살았으며 작가의 언어로 그것을 풀어놓았다. 단순한 문체로 쓰인 이야기들은 때로 망치로 돌변해 독자의 뒤통수를 내리친다. 그의 작품 중 난해하고 복잡한 소설은 한편도 없지만 쉽게 읽히거나 이해되는 소설 또한 단 한편도 없다.

―석영중 (고려대 노문학과 교수)


Changbi Publishers

18세기 시민문학의 정점이자 19세기 위대한 리얼리즘의 선구적 작품. 세계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연애소설의 하나.
―루카치

매혹적인 감정과 조숙한 예술적 감성이 절묘하게 결합된 걸작.
―토마스 만


청년 괴테가 ‘가슴의 피를 먹여 탄생시킨 작품’

삶에 고뇌하는 모든 청춘에게 바치는 자유와 젊음, 사랑의 기록

괴테가 스물다섯살에 발표한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간 비운의 사랑과 자신의 쓰라린 실연이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청년 괴테는 법관 시보로 근무하던 중 샤를로테 부프라는 여성을 만나 첫눈에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임을 느끼지만, 그녀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몸이었고 절망감을 이기지 못한 괴테는 수습 근무를 중단하고 낙향한다. 고향으로 돌아와 실연의 아픔을 달래던 차에 결혼한 여성을 사랑한 친구의 자살 소식을 접한 괴테는 죽음의 충동과 싸워가며 4주 만에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완성한다. “나는 몽유병자처럼 거의 무의식중에 써내려갔다. 작품을 통해 폭풍우처럼 격렬한 격정에서 구제되었고, 일생일대의 고해를 하고 난 후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처럼 괴테에게 이 작품은 실연의 고통과 치명적인 격정으로부터 벗어나는 치유를 의미하기도 했다. 절대적 사랑을 희구하는 순수한 영혼과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이자,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는 예리한 지성을 지닌 청년의 영원한 상징, 베르터. 베르터의 자아실현 욕구는 감성과 이성의 전면적 발현을 통해 전인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갈구하던 당대 청년들의 집단적 열망을 대변했고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왔다. 베르터 씬드롬을 일으키며 당시 유럽인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이 작품은 전인적 이상을 추구한 ‘질풍노도(슈투름 운트 드랑)’ 문학운동의 구심 역할을 했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작가들에게 찬탄과 매력의 대상이 되어왔다. 서구문학사 최초로 ‘세계문학’의 반열에 오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시대를 뛰어넘어 삶에 고뇌하는 모든 청춘에게 여전한 울림을 주는 명실상부한 고전이다.


엄정한 번역으로 새롭게 만나는 불멸의 고전

그간 꾸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독일어 본래 발음과 동떨어진 ‘베르테르’라는 잘못된 표기가 여전히 통용되어왔다. 그러나 오늘날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널리 읽힐 고전인 까닭에 새 번역을 내놓으며 원어의 발음에 가까운 ‘베르터’로 바로잡았다. 제목 역시 그간 널리 알려진 ‘슬픔’ 대신 ‘젊은 베르터의 고뇌’로 옮겼는데, ‘슬픔’이라는 단어는 주인공을 죽음으로 몰아간 처절한 감정을 담아내기에 다소 부족하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사랑에서 비롯된 괴로움 말고도 신분차별에서 오는 모멸감, 갑갑한 사회환경에서 오는 권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을 고려하여 ‘고뇌’를 번역어로 선택했다. 원제에 쓰인 독일어 단어 ‘Leiden’이 복수형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며, 사전적인 의미 역시 ‘슬픔’보다는 ‘고뇌, 고통, 괴로움, 수난’ 등을 가리킨다.

가장 적확한 번역을 찾기 위한 노력은 본문에서도 두드러지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편지글의 번역 문체이다. 이 작품은 편지글의 형식을 빌리고 있으나 실제로 내용의 대부분은 베르터의 독백으로 이어지며 일기처럼 쓰인 부분도 상당하다. 이 작품에서 서간체 형식은 소통이나 대화의 의미라기보다는 주인공의 내밀한 생각과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독자들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독백 효과를 주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일인칭 독백체를 살려 번역했으며, 이러한 시도를 통해 베르터의 내면 풍경을 한결 여실하게, 사뭇 새로운 느낌으로 대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그간의 낯익음보다는 낯선 엄밀함을 추구함으로써 그저 또 하나의 번역본이 아닌 진정 새로운 번역으로 세대를 거듭하며 빛을 발하고 있는 청춘의 고전을 다시 만나게 하고 있다.

‘창비세계문학’을 펴내며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이래 한국문학을 풍성하게 하고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담론을 주도해온 창비가 오직 좋은 책으로 독자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창비세계문학’을 출간했다. ‘창비세계문학’이 다른 시공간에서 우리와 닮은 삶을 만나게 해주고, 가보지 못한 길을 걷게 하며, 그 길 끝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를 소망한다. 또한 무한경쟁에 내몰린 젊은이와 청소년들에게 삶의 소중함과 기쁨을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목록을 쌓아갈수록 ‘창비세계문학’이 독자들의 사랑으로 무르익고 그 감동이 세대를 넘나들며 이어진다면 더없는 보람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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