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둔

1997 • Dakika 135
PG-13
Ukadiriaji
Kipengee hiki hakipatikani

Kuhusu filamu hii

1933년 13대 달라이 라마가 서거한 뒤, 레팅 린포체('린포체'는 영적 스승을 의미하는 칭호임)는 고인이 된 라마와 역대 모든 달라이 라마의 대를 이어 관세음보살의 현신이 될 14대 달라이 라마를 찾을 때까지 섭정직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레팅은 환영을 보고 그 환영의 배경이 된 국경의 변방지대에 소년을 찾으러 승려들을 보냈다. 오랜 탐색 끝에 후보자로 여겨지는 2살의 라모 된둡이 발견된다. 태어날 때 불교의 성조(聖鳥)인 까마귀가 소년을 지켰으며 또한 티벳의 수도이자, 달라이 라마의 사원이 있는 라사에 가려고 한다는 소년. 승려들은 소년의 집으로 가서 똑같이 생긴 여러 개의 물건을 보여주면서 마지막 테스트를 했다. 각각의 물건에는 13대 달라이 라마가 사용하던 것이 들어 있으며 소년은 그의 물건을 집으면 되는 것이었다. 라모 된둡은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 바로 그가 14대 달라이 라마 '쿤둔'(The Presence, 고귀한 존재)이었다. 불과 5세에 세상을 구원하는 쿤둔의 자리에 즉위한 이 소년은 그러나 가장 치열한 역사의 격동에 놓여진다. 2차 대전 후, 중국이 일본에서 벗어나 혼돈을 겪고 있을 때 소년은 불과 열 두 살이었다. 공산화된 중국이 1957년 마침내 침공해오고 자신의 동포가 아무런 무기 없이 그들 앞에 무자비하게 죽어갈 때도 소년은 사춘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1959년 18세의 나이에 소년은 중국의 암살위협을 피해 긴 망명길을 떠난다. 1959년 독립시위에 대한 잔혹한 진압으로 티벳 전체인구의 20%인 120만 명이 학살되었다. 문화 대혁명 기간동안 홍위병들에 의해 4500여 개 사원이 폐쇄됐으며 수많은 티벳인이 정치적인 이유로 감옥에 갇히거나 행방불명됐다. 최근 티벳에서 망명, 다람살라에 머물고 있는 텀딩이라는 사람은 "60년 이후로도 약 20만 명이 더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UN을 비롯 세계 열강들은 티벳을 외면했고 쿤둔은 홀로 외롭고도 기이한 저항을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그의 저항이었다. 일체의 폭력도 개입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세계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1989년 노벨상 위원회는 평화상을 그에게 수여한다.
Ukadiriaji
PG-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