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씨남정기』는『구운몽(九雲夢)』의 작가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 1637~1692)이 숙종 15년 인현왕후가 폐출된 것을 반대하여 귀양을 가 쓰게 된 작품으로, 사씨 부인이 첩 교씨의 간계에 휘말려 남쪽으로 가기까지의 기록이라는 뜻이다. 당시 양반들은 소설을 허구라고 치부하며 멀리한 반면, 김만중은 소설 양식에 특별한 애정이 있었다. 따분한 역사서와 달리 소설이 독자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흔히『사씨남정기』는 부부, 처첩간의 갈등을 다룬 여성 소설로 알려졌는데, 김만중의 생애와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 등을 고려해볼 때 이 작품은 이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는 흥미진진한 고전 소설이다. 어리석은 사대부를 비판하고 이상적인 사회상을 그린 소설 『사씨남정기』의 배경은 중국인데, 이는 양반 사대부들 사이에서 소설을 금기시하는 풍조를 김만중이 염두에 둔 동시에, 당시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하게 위해서 부러 중국을 배경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김만중은 유 한림의 어리석음과 우유부단함을 작품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으며, 물질적 탐욕에 빠져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교씨, 동청, 냉진, 엄숭 등)들을 들춰내어 처단하고, 사씨가 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모든 시련을 이겨내는 것을 보여준다. 김만중의 종손 김춘택은 1709년 한글본『사씨남정기』를 양반 사대부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이 작품을 한문으로 번역하는데, 이는『사씨남정기』를 여성 소설로만 보지 않고, 교씨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양반 사대부 유 한림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현명하고 어진 사씨의 모습에서 조선 시대 이상적인 여인상은 물론 이상적인 신하의 모습을 발견하여 알리려는 목적에서였다. 이 작품을 쓸 당시 유배지에서 병들어 죽음을 앞두었던 김만중은 이렇게『사씨남정기』에 절절한 마음을 담아 사대부로서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상을 꿈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