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물 #계약 #전문직물 #화가 #모델 #오해/착각 #잔잔물 #성장물
#무심공 #천재공 #미인공 #순진수 #소심수 #헌신수 #상처수
'나'는 원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에다, 군대에서의 가혹 행위가 얽혀지면서 심한 대인기피증을 가지고 있는 어둠 속 삶을 산다. 제대 후 알바 자리를 찾던 '나'는 친구의 소개로 유명한 화가인 이미주의 모델 겸 집안 잡일을 시작한다. 사진보다 더 사실적이면서도, 온갖 감정을 녹여내는 풍경화로 유명한 이미주. 그는 세련되고 말끔한 미모를 가진 화가이지만, 평상시에는 라면만 끓여 먹으면서 거적때기 같은 것만 걸치고 사는 은둔 생활자이다. 인물화라고는 발표한 적이 없는 이미주가 '나'를 모델로 선택한 것도 이상하지만, 1년 간 일하는 내내 이미주는 '나'를 두고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그저 스케치북을 들고 크로키 정도만 끄적일 뿐이다. 그래도 높은 급여와 편한 일에 '나'는 아무 불평 없이 정기적으로 이미주 앞에 마주 앉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복학을 위해서 일을 그만두겠다는 '나'에게 이미주가 던진 말은 '돌아오게 될 거야. '
인간들 사이가 제일 어색한 소심한 모델과 압도적 카리스마를 가졌지만 은둔 생활을 하는 화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세밀하면서도 잘 읽히는 필체로 그려진 단편. 푸치니의 아리아 Nessun Dorma를 틀어 놓고 읽는다면, 소설 마지막 문장의 울림이 더욱 커질 듯.
시간과 비용은 줄이고, 재미는 높여서 스낵처럼 즐기는 BL - 한뼘 BL 컬렉션.
<목차>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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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리즈 및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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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분량: 약 2.6만자 (종이책 추정 분량: 51쪽)
<미리 보기>
그는 매일 라면만 먹는다. 현관에 들어서면 텁텁하고 자극적인 라면 냄새가 났다. 거의 매일 그랬다. 유화 기름과 인스턴트식품의 냄새가 섞인 집은 악취로 가득했다. 집주인은 본인의 정신머리답게 환기에도 관심이 없었다. 항상 내가 들어서자마자 창문을 열어야 했다. 작업실로 들어가는 길에 부엌을 곁눈질 하면 성의 없이 쌓인 냄비 산이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 봤을 때는 적잖은 충격과 냄비가 쓰러지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그 뒤로는 내가 설거지를 하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었다.
혼자 사는 집다운 부엌은 그 남자를 무섭도록 빼닮았다. 뼈대와 껍데기는 세련되고 다부졌지만 몸뚱이는 말라 형편없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잠도 제대로 자지 않았다. 온전히 그의 공간인 집이자 작업실은 주인에게 학대 받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소모적이고 이기적으로.
처음엔 분명히 좋은 집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집이 있으면 이렇게 안 살지. 항상 되뇌지만 우습게도 정말 내 집이 아닌데 그런 생각이 무슨 소용이랴. 환기를 시킬 때마다 먼지덩이가 뭉쳐 굴러다니는 것이 눈에 보였고 기분 탓인지 대리석 바닥은 항상 찐득한 상태였다.
평범한 사람과 달리 예술 하는 양반이라 해까닥 돌아버렸거니 했다.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범주라 그렇게 여기는 것이 나에게도 좋았다.
나는 조용한 집을 거닐며 그를 불렀다. 미주 씨. 바로 옆에 있는 듯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불렀다. 대답이 없는 것도 익숙하다. 그는 말수가 없었고 동시에 내가 하는 일에 입을 대는 일도 없었다. 웬만한 것은 내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현관과 부엌, 복도를 가로질러 거실로 가자 소파에 죽은 듯 엎드려 자는 이미주를 찾았다. 웃통은 왜 벗고 있데. 큰 골격 사이에 어릿하게 보이는 뼈가 볼품없다. 얼마나 기척 없이 자는지 등어리가 요동이 없었다. 멀찍이 조금 지켜보다 가까이 갔다. 너무 조용한데. 섬뜩한 기분에 손날을 코 밑에 댔다. 뜻밖에 시원하게 트인 눈매에 속눈썹이 길다. 마치 저주에 걸려 잠든 비운의 왕자 같은 얼굴이다. 비록 모양새는 어디나 있을 법한 비렁뱅이였지만.
손끝에 닿는 숨이 미미하다. 고개가 기울었다. 잘 모르겠는데. 숨을 쉬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살겠다는 것인지 이만 죽겠다는 것인지.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다시 불렀다. 미주 씨 저 왔어요. 빨지 않은 옷 탓인지, 삼시 세끼 라면만 처먹는 몸이 드디어 썩는 것인지. 콤콤한 냄새가 났다.
죽진 않았겠지. 생활이 워낙 불규칙한 사람이라 깨우는 것을 포기했다. 뭘 해야 하지. 그냥 오늘은 이만 간다며 쪽지를 쓸까하다 침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웬일로? 유화 냄새가 익숙하지 않은 나 때문에 보통은 문을 닫아두는 사람이다. 몸을 일으켜 가까이 갔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느끼자마자 냄비째 쏟아져 말라붙은 라면과 범벅된 티셔츠 쪼가리가 있었다. 할 말이 없군. 순간 인간에 대한 모멸감이 불쑥 치밀었다. 잠시라도 애처로움을 느낀 것이 거짓말 같다. 이유 모를 화가 치밀며 잠이나 나고 있는 남자가 한심스러웠다.
그래도 찝찝했는지 옷은 벗었다. 짐승 수준은 아니라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아니 짐승도 제 몸은 닦고 살지 않나. 언제 먹었는지 가늠도 안 된다. 그 와중에 죽기는 싫어서 라면은 끓였나 보다. 나 가고나면 어쩌려고 이러나. 딴에는 일 년 동안 정 들었나. 별별 생각이 떠올랐다. 짜증을 참고 설거지를 하는데 그 사이에 잠에서 깼는지 욕실 방향에서 물을 트는 소리가 났다. 씻나보다. 엎질러진 바닥을 치운다고 다용도실을 들락날락거렸다. 처음엔 잠깐 모델만 해주고 간단하게 치우기만 하면 된다고 듣고 왔는데. 누굴 가정부로 아나. 한심한 인간. 엎드려 걸레질을 하자 부산스러운 소리에 깼는지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가까이 온다. 괜히 마른 침을 삼켰다. 나도 모르게 더 억척스러워지는 걸레질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나를 불렀다. 고개만 돌려 대답했다. 흐르는 물기만 겨우 갈무리한 이미주가 서 있었다.
"뭐해."
"몰라서 묻는 거 아니잖아요."
입에서 타박인지, 불평불만인지 모를 것이 퉁명스럽게 그를 쏘아붙였다. 말을 너무 까칠하게 했다. 팔짱을 끼고선 잠자코 나를 쳐다봤다. 나는 다시 청소에 집중했다. 뒤통수 뒤에서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더니 다시 가까워졌다. 펑하고 터지듯 들리는 카메라 플래시에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뭐예요."
폴라로이드 사진기가 메롱 하듯 사진을 뱉어냈다. 정작 사진을 찍은 놈은 대답도 않고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나 보고 있는 폼에 속이 터진다.
"선생님."
"다 치웠어?"
"대충했어요."
"이리 와."
걸레를 냄비에 넣은 채 엉거주춤 일어섰다.
"아 해."
그가 저도 입을 벌리며 명령했다. 반사적으로 침을 한번 삼킨 채 똑같이 입을 떼자 막 나온 사진을 입에 물렸다. 뱉기도 전에 목에는 카메라가 걸렸다. 하필 카메라를 가슴이 아니라 등에 반대로 걸어놓는 바람에 목이 뻐근하니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가 손끝으로 목에 걸린 카메라 줄을 매만졌다. 개 목줄이라도 찬 기분이었다. 막 씻고 나온 사람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개운한 냄새가 났다. 여러 의미로 숨이 막힐 것 같다.
"놓고 와 작업하게."
<한뼘 BL 컬렉션 시리즈>
시간과 비용 부담을 확 줄여서, BL 초심자도 가볍게 읽는 컬렉션입니다.
내 취향이 무엇인지, 어떤 주인공에게 끌리는지, 다른 사람들은 뭘 읽고 좋아하는지 궁금하셨지만, 몇십만 자가 넘는 장편을 다 떼야 알 수 있다는 생각..... 이제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가볍게 읽으면서 스낵처럼 즐기는 새로운 스타일의 BL들이 찾아 옵니다.
앞으로 나올 한뼘 BL 시리즈를 기대해 주세요.
(참고) 한뼘 BL 컬렉션 내 번호는, 편의상의 부여된 것으로, 읽는 순서와 관련이 없습니다. 컬렉션 내 모든 작품이 그 자체로 완결됩니다.
출간 (예정) 목록
_잠복 근무_송닷새
_클럽 블랙_송닷새
_우주 정찰대를 위한 경고문_따랴랴
_시선의 길목_먼스먼스
_책도깨비_경계선
_생일 소원_리커
위의 도서 외 매달 10여종 이상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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