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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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세월을 넘어 탄생한 절정의 노래


고은 시인 등단 50주년 기념 신작시집



한국시를 대표하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세계시단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고은 시인의 신작시집 『허공』(창비시선 292)이 출간되었다.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는 시인이 이를 기념하여 신작 107편을 묶어 펴낸 것이다. 한국현대시사의 절반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지난 반세기를 정리하고, 시의 근원으로 돌아가 새롭게 출발하는 시인의 식지 않은 창작열이 고스란히 담긴 명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번 신작 시집을 보면 고은 문학의 끝이 어디인지 좀처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발하는 시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내 여생의 숙주(宿主) 역시 변함없이 시이고 시와 시의 외부이다”라고 선언하는 ‘시인의 말’에서도 보듯 고은 문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갱신과 변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그의 문학인생은 『창작과비평』2008년 가을호 이장욱 시인과의 ‘대화’에서도 밝혔듯 정박하지 않는 “표류와 표착의 연속”이었고, “집조차 길”이라고 표현할 만큼 여전히 열정적인 도상(途上)에 있는 것이다.


시집 제목 ‘허공’이 암시하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가득 차 있으면서 텅 비어 있는 허공은 모든 정형화되어 있는 것들을 불식시키고 수렴하는 공간이며, 또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초월하는 시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시인은 “지긋지긋한 시대의 거리”를 지나 “그냥 바라보”라고만 한다. “그 허공만한 데”는 없다고 외치는 것이다.(「허공)) 허공은 또한 ‘춤추는’ 공간이고 ‘뉘우치는’ 공간이며 “순수한 바깥”으로 시인으로 하여금 온몸으로 노래하게 만든다. “맨몸/맨넋으로 쓴다/허공에 쓴다”(「허공에 쓴다)). 안과 밖도 다 허공 같은 것으로 “밖은 텅 비었고/안은 텅 차 있다”(「울란바타르의 처음)). 허공은 시인의 지난 반세기 동안의 엄청난 작업과 성과에 안주하지 않는 정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허공은 자연스럽게 ‘백지’로 변주되기도 한다.



이 무한가능 하염없는 백지 없이는


저의 여생 하루도 한나절도 숨막혀 살 수 없습니다 (「여생」 부분)



허공과 백지에 대한 천착은 시의 근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려는 강렬한 의지의 반영이다. 시력 반세기를 거쳐온 뒤에도 “당신께서 가장 높으십니다”(「라싸에서」)라고 구걸하는 거지의 한마디를 깨달음의 언어로 받아들이고 부끄러워하며 겸손함을 잃지 않는 시인, “무일푼의 나로 돌아가” “달걀로부터 시작하고 싶다”(「울란바타르의 마음」)는 새출발을 다짐하는 시인. 근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시인에게 가장 원초적인 언어에 대한 탐구는 자연스럽다. 그래서 언어의 한계에 대한 부단한 고민과 이를 반영한 시론적 성격을 띠는 시들도 주목을 요한다.



오늘도 가갸거겨의 무기수 감방에서/하루를 중얼중얼 보냈구나/취침나팔/잠들어라/가갸거겨도 잠들어라 (「어느 시론(詩論)」 부분)


인류 맨 처음의 언어가/아아/였던 것(…)인류 맨 마지막의 언어가/아아/이리라는 것(…)지금 내 머리 위에서/어미 아비 없는 푸른 하늘/어미 아비 없는/아아/아아/이 막무가내의 아아들이 나에게 펄펄 내려앉고 있소 (「눈 내리는 날」 부분)


모든 언어를 버리고 태초의 언어인 감탄사로부터 출발하자는 것은 시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과 고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언어 역시 허공을 관통하는 언어이다. 이처럼 허공은 언어를 비롯한 모든 것을 근원으로 돌리면서 안과 밖,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없으며, 삶과 죽음도, 늙음과 죽음의 경계도 없는 원형적 공간으로 설정되는 것이다. “모든 개념분석들/모든 논리실증주의들/모든 경험론들/모든 좌우 도그마들”(「유혹」)은 사라지고, 필멸과 불멸 역시 이곳에서는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남도/남도/슬그머니 내가 되더군//그러므로 본디 나라는 것 도무지 없더군 (「무제」)


천년 전 나는 너였고/ 천년 후 너는 나이리라 (「밤비 소리」)



젊은이는 늙은젊은이이지/가까운은 먼가까운이지/안은 밖안이지 안팎이지(…)//그래서 고왕조 소년 파라오가 미라 사천세나 처먹었지/어휴 이 늙은젊은이 (「테베에서」)


여기서도 삶은 삶죽음 아니냐 죽음은 죽음삶 아니더냐 (「그 연인에게」)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이러한 영역을 “인간적 해석 영역에서 벗어난 자유의 공간이며 ‘순수한 바깥’인 것”으로 해석하고, 시인의 허공에 대한 천착을 “막막한 허공을 향하여, 말하자면 기성의 종교적 관념이나 이념적 체계에 얽매임 없이, 그야말로 불기(不羈)의 자세로 글쓰기를 지속하는 것은 천길 벼랑 위를 빈손 맨몸으로 혼자 걷는 위험한 모험”이지만, 고은이 “시적 창조 본연의 위험이 그렇게 치명적인 것임을 지난 오십년 동안 쉬지 않고 실증해온 시인”(해설)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문학평론가 백낙청 역시 이번 시집이 ‘허공이 우주보다 넓고 풍요로움’을 일깨워준다고 평가한다(추천사).


모든 것들의 허공은 근원과 연결되고 근원은 탄생과 연결된다. 때문에 이번 시집에서 시작, 출발과 더불어 탄생의 이미지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시인 자신의 삶과 작품이 ‘늙은젊은이’ ‘죽음삶’을 몸소 실증하며 살아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일지도 모른다.


이밖에도 이번 시집은 시인이 그간 견지해온 세계의 모순과 비극에 대한 시들(「스무살」 「앙코르와트」 등)뿐만 아니라 시인의 이력을 엿볼 수 있는 시들(「어떤 신세타령」 등)도 있어 다채롭고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이 시집을 읽고 난 뒤에 드는 아주 특별한 느낌은 노시인의 등단 50주년 기념 시집이 아니라 열정으로 가득한 ‘젊은’ 시집 같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 시집에서 우리는 패기와 힘과 디오니소스 같은 에너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시인은 2009년에 『만인보』 완간을 앞두고 있고, 그 이후에는 심청을 소재로 육지와 용궁을 연관시키는 형이상학의 세계를 담은 『처녀』, 동서의 사상과 관념 등을 담은 『운명』 등의 시집 구상을 이미 마쳐놓은 상태이다. “우주의 고아로 떨어진 것이 시인이고 시”라면서 절대적인 폐허와 고독과 싸우는 동시에, “나는 과거보다 미래의 허영이 큰 사람”(‘대화’)이라 호언하듯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일, 써내야 할 작품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인이다. ‘무한 가능 하염없는 백지’가 앞에 놓여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시인의 열정과 고백은 후배 시인들과 문단에 변함없는 자극이 되어왔다. 염무웅의 말처럼 이번 시집은 ‘허다한 걸작들’로 채워져 있고 지난 오십년과 더불어 ‘그의 내일에 눈을 뗄 수 없’(해설)게 하는 매력을 지닌 작품집이라 할 수 있다. 신생의 에너지로 충만한 이 시집은 이 ‘늙은젊은’ 시인의 문학적 이력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허공』의 마지막 시는 시인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문단 전체에 아주 의미심장하고 강렬한 메씨지를 남기고 있다. 대가만이 할 수 있는 뜨거운 ‘충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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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bre l'autor

1933년 8월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18세의 나이에 출가하여 수도생활을 하던 중 1958년 『현대시』『현대문학』 등에 추천되어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첫시집 『피안감성』(1960)을 펴낸 이래 고도의 예술적 긴장과 열정으로 작품세계의 변모와 성숙을 거듭해왔다. 시선집 『어느 바람』, 서사시 『백두산』(전7권), 연작시편 『만인보』(전30권), 『고은 시전집』(전2권), 『고은 전집』(전38권)을 비롯해 15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고, 1989년 이래 영미ㆍ독일ㆍ프랑스ㆍ스웨덴을 포함한 약 20여개 국어로 시집ㆍ시선집이 번역되어 세계 언론과 독자의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한국문학작가상 단재상 유심작품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과 스웨덴 시카다상, 캐나다 그리핀공로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세계시단으로 영역을 넓혀 활동하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의장, 버클리대 한국학과 방문교수, 하버드 옌칭연구소 특별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이사장이며, 서울대 초빙교수 및 단국대 석좌교수로 재직중이다. 연작시편 『만인보』는 시인이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특별감방에서 수감되었을 때 구상한 것이다. 1986년 1권을 출간한 이래 25년 만에 전30권(총 4,001편)으로 완간되는 『만인보』는 한국문학사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념비적인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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