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목소리가 아니라 그 얼굴이 보고 싶었다.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무미건조한 일상생활에 내내 염증을 느꼈다. “죽을 수도 있었어요. 저 말고, 본부장님이요.” 갈비뼈를 부러뜨린 대신 직장 상사 목숨을 구한, 자칭 유능한 부하직원 지연서. 피치 못하게 볼 거 다 본 남자에게서 연애를 제안받다. “다른 남자 얘기하는 거 별로 재미없어. 그냥 나하고 만나.” 목숨 걸고 자길 구해준 대상이 이성인데 관심 가는 게 당연한, 까마득한 직장 상사 이경무. 만나보자는 말로 연애를 제의하다. “보, 본부장님!” 다급히 아래를 가리는 손짓이 유난히 무력했다. 경무는 양쪽 허벅지를 조이고 있던, 올이 나간 스타킹부터 단박에 벗겨 냈다. “읏! 꼼지락대는 발가락이 귀여워 저도 모르게 엄지발가락을 한 차례 잘근 짓씹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연서가 몸을 파들거렸다. “더, 더럽게, 거, 거긴 하읏!” “뭘 모르나 본데. 더러운 거 따지면 아무것도 못 해.” “처음이라고…….” “처음이야. 그래서 내가 어떻게 나올지, 뭘 할지는 나도 잘 몰라.”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에요?” “그럼 책임질 일, 이제부터 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