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집은 1964년부터 1975년까지 10여 년의 세월에 걸쳐 7권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하지만 한정본으로 만든 이 1975년판은 구하기 쉽지 않고 국한문 혼용의 세로쓰기여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또 원문(原文)의 한자어 상당수를 한글로 바꾸는 과정에서 원래 모습에 적지 않은 변형이 이루어졌고, 『성서조선』 영인본이 미간(未刊)된 상태에서 진행되어 소소한 오류가 있었다.
2001년판 『김교신 전집』은 그런 오류를 바로잡는 동시에 한자어를 원문 그대로 되살려 놓아 김교신 선생의 그 힘차고 명쾌한 문장을 온전히 맛볼 수 있게 하였다. 다만 세월이 변해 요즘은 잘 쓰지 않거나 알기 어려운 한자어는 말미에 뜻풀이를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190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 한학을 공부하다 함흥보통학교, 함흥농업학교를 거쳐 동경고사(東京高師)를 졸업했다. 일본 유학 중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지도 아래 기독교에 입문한 이래 양정고보, 경기중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성서조선(聖書朝鮮)』의 간행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1942년 3월호에 실린 권두언 「조와(弔蛙)」가 조선의 민족혼을 찬양했다는 혐의로 일제에 구속·수감되었다가 출옥한 뒤에는 흥남질소비료공장에서 5,000여 조선인 노동자의 복지를 위해 진력하다가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광복을 불과 넉 달 앞둔 1945년 4월 25일 타계했다.
1912년 함경북도 경성(鏡城) 어랑(漁郞)에서 출생. 배재중 3학년 때 광주학생운동으로 일제에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렀고, 출감 후에는 빈민촌에서 빈민 아동 교육에 종사했다. 1936년 김교신 선생의 권유로 도일한 이래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제자인 쓰카모토 도라지(塚本虎二) 선생의 성서연구회에서 10년간 성서를 배웠고, 1945년 귀국한 후에는 월간 『성서연구(聖書硏究)』를 500호(1999년 12월)까지 발간했다. 성서조선 사건 때 거의 멸실되다시피 한 『성서조선』 158권을 10여 년에 걸쳐 수집·정리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1975년 『김교신전집』을 완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