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올가미 1

· 은밀한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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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에 사랑을, 한 발에 증오를 담아서 길을 밟았다. [살려줘] 그 한마디가 적힌 사촌 형의 편지를 보고 낯선 섬 ‘피종도’에 도착한 노환우. 동거인이었다는 낯선 형제는 형의 죽음을 알리면서도 덤덤하다. “제가 좋아한다면…… 믿으실 겁니까.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한테 키스 따위 하지 않았겠죠.” 고고하고 기품 있는 그답지 않게, 오싹한 눈빛으로 고백하는 최장연. “노환우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데.” 제멋대로인 야수처럼 다가들면서, 지독하게 집착하는 최수열. 수상한 두 형제가, 이 섬이 환우에게 드러내는 비밀은 무엇일까. ------------------- 발췌문: 장연에게는 훤히 보였다. 칫솔을 피해서 도망간 분홍색의 혀나. 고르게 난 치아나. 혀 밑의 여린 살이나. 모두가 훤히 보였다. 장연의 손에 들린 칫솔의 모가 깊숙하게 들어갔다. 안쪽을 쓱쓱 닦았다. 서로의 숨결 사이로 칫솔과 치아가 닿는 소리가 작게 끼어들었다. 쓱쓱. 환우의 눈이 아래를 향했다. 얼굴로 쏟아지는 시선이 과할 정도로 뜨거웠다. 하필 양치질 중이었다. 뒤로 도망칠 수도 없어서 그저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하아. 하아. 장연의 숨결이 귓바퀴를 타고 느릿하게 들어왔다. 귀가 간지러웠다. 마구 긁고 싶어졌다. 심장이 요란스럽게 술렁거렸다. 긴장감인가. 술렁대는 심장 박동은 쿵쿵, 쿵쿵, 뛰어대고 있었다. 가까운 거리 탓에 장연이 알아차릴 것 같았다. 환우는 불안해졌다. 자신의 떨림을 알아차릴까 봐. 그가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꾹 눌렀다. 여전히 심장은 착실하게 뛰고 있었다. 하아. 하아. 장연의 손가락이 느려졌다. 달팽이가 기어가듯. 덩달아 칫솔도 느려졌다. 양치질을 하는지. 입 안을 맛보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느려진 칫솔의 속도에 환우는 질끈 눈을 감았다. “붉네요, 참.” “…….” 짙은 탁성이 울리고 그의 눈꺼풀은 파르르 떨었다. 장연은 그 장면을 잠자코 지켜봤다. 그늘이 진 눈 밑이나 그 그늘을 만든 속눈썹이 잘게 웨이브를 추는 모습까지. 모조리 봤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연의 눈길이 얼굴에서 내려갔다. 입술을 지나서 눈길이 안착한 곳은 왼쪽 가슴이었다. 밖으로 꺼내도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릴까. 그 상태에서 날 보고도 뛸까. 가슴을 갈라서 벌벌 떠는 심장을 움켜쥐는 장면이 스쳐 갔다. 선명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손바닥에 올린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생동감. 퍼렇게 질린 얼굴과 쩍 굳은 사지. 충격으로 굳어져서 눈물을 쏟아낼 눈망울을 상상하자마자, 장연은 깊은숨을 토해냈다. 상상만으로도 가해지는 흥분에 오싹해졌다. 한없이 오싹해지고, 전기가 통하는 짜릿함으로 장연의 눈동자가 짙게 가라앉았다. 심해보다 더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찬찬히 올라왔다. 음산함과는 다른 감정이 선득하게 일렁거렸다. 입술 너머는 여전히 칫솔이 들어가 있었다. “어제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군요.” 어제? 어제라면 수열과 정사를 나눈 날이었다. 환우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장연은 남몰래 웃음을 터뜨렸다. 고래고래 소리까지 질렀으면서 설마 모르리라 생각한 건가. 멍청한 건지, 순진한 건지 모르겠다. 장연은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었다. 딱히 확인하지 않아도 교성이 쩌렁쩌렁 했으니까. 알아차리고 나서도 장연은 그저 듣고만 있었다. 정확히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길이어서 전후 사정은 몰랐다. 목소리를 들으니 적어도 강제로 맺는 관계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할 뿐이었다. 남의 정사를 지켜보고 싶은 생각이 없던 장연은 한참 뒤에 들어온 필배와 간단한 대화만을 나눴다. 하얀 박스를 들고 온 필배도 단박에 소리를 알아차렸다. 내심 필배는 놀랐었다. 생각보다 격렬한 소리에. “무슨 소리였는지 안 묻습니까?” “…….” 질문해서 부메랑처럼 돌아올 대답을 감당할 수 있을까. 선뜻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환우의 입 안으로 손가락이 들어갔다. 장연이 칫솔을 빼서 세면대에 던졌다. 날카로운 소음에 놀란 환우의 고개가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손가락이 끝까지 쫓아서 하얀 거품이 뒤섞인 입 안을 헤집었다. 구석으로 숨은 혀를 끄집어냈다. 분홍빛의 속살이 튀어나왔다. 손톱이 속살을 긁었다. 움찔. 파들파들 떠는 속살에 장연은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확장된 동공 아래에 환우가 갇혔다. 사지가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장연이 손가락으로 잡아챈 혀에 자신의 혀를 댔다. 물컹한 감촉이 확연히 느껴졌다. 장연의 수작질로 환우가 뒤로 물러났다. 물러난 만큼 장연은 따라왔다. 닿기 무섭게 장연의 두터운 혀가 환우의 혀와 뒤엉켰다. 칫솔이 치아에 문대는 소리 대신 원색적인 소리가 타일에 쩍 달라붙었다. 젖은 손가락이 환우의 뒤통수를 만졌다. 쓰다듬는 손길이 아니라, 낚아채서 자신에게 밀착했다. 덕분에 환우의 고개가 한껏 들렸다. 입술 밖에서 너울거리던 혀는 그의 입술 안으로 들어갔다. 덩어리진 두 혀가 천천히 떨어졌다. 서슴없이 안을 활개 치는 혀의 주인은 장연이었다. 침으로 점철된 내부를 헤집는 속도가 그야말로 귀신이었다. 그 뒤를 따르기 버거울 지경인 환우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호흡을 멈췄다. 부르르 떠는 몸을 느꼈음에도 장연은 탐닉하기 바빴다. 버젓이 주인이 있음에도 장연은 개의치 않았다. 입술이 잠시 떨어졌다. 입술과 입술이 짧게 부딪치는 소리가 안을 울렸다. 호흡을 멈췄던 환우의 숨결이 퍼졌다. 장연이 눈을 감았다. 장연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야말로 삼키듯 환우의 입술을 머금었다. 날카로운 치아에 그의 말캉한 입술이 스쳤다. 환우는 손가락으로 장연을 밀어냈다.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이상해졌다. 자꾸만 낭떠러지에 몸을 내던지는 기분이 들었다. 환우의 손가락이 힘없이 밀어냈으나 소용없었다. 장연은 벌어진 입술 틈으로 혀를 다시 집어넣었다. 영역표시라도 하듯 자신의 숨결을 구석구석 불어 넣어줬다. “생각보다 소리가……음탕하더군요.” 지친 기색이 역력한 환우와 달리, 장연은 삭이는 목소리가 전부였다. 균열을 숨기지 못하는 환우의 얼굴을 장연이 쓰다듬었다. 뭉개지는 볼을 보면서 장연은 핏덩어리처럼 붉은 입술을 휘었다. 유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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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글 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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