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가르치고 여자가 배우면 생기는 무궁무진한 화력
TBWA 카피라이터 강소희, BATON 디자이너 이아리의 인생 운동 찾기 대모험
“우리가 허락한 고통은 오직 근육통이다!”
주짓수, 농구, 스케이트보드, 축구, 배구, 스윙댄스…
일단 해보면 무조건 기분 좋아지니까, 들었다 놨다 환장하게 짜릿하다!
“여자들이 이렇게 운동하는 이야기라면 나는 아무리 보고 듣고 읽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게임은 이제 시작이니까. ” - 황선우(『멋있으면 다 언니』 작가, 생활 체육인)
휘슬이 울리고 우렁찬 함성이 들린다. 오직 바라는 건 인생 대역전이 아닌 짜릿한 역전골이라는 여자들이 있다. 경기장을 질주하다 넘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다시 일어난다. ‘운동’이라는 출구 없는 재미에 푹 빠진 두 사람, 바로 TBWA 카피라이터 강소희와 BATON 디자이너 이아리다. 너무 웃겨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이들의 좌충우돌 운동 에세이 『내일은 체력왕』이 미디어창비에서 출간되었다.
2018년에 강소희와 이아리는 여자들의 도전과 성장에 주목한 프로젝트 ‘여가여배’를 기획했다. 여가여배는 ‘여자가 가르치고 여자가 배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주짓수부터 농구, 스케이트보드, 축구, 배구, 스윙댄스까지 다양한 스포츠 클래스를 열고 참가자들을 모집했다. 운동이라는 교집합 안에 다 함께 모여 응원하며 적극적으로 몸을 쓰는 경험이 입소문을 타면서 SNS에 클래스 참가자 모집 공고만 뜨면 2분 만에 매진되는 등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구석으로 밀려났던 여자들의 운동장 되찾기
“내일 이기면 너 혼자 이기는 게 아냐. 수백만 여자애들이 너와 함께 이기는 거다.” - 영화 「당갈」 중에서
운동으로 체력과 근육을 키우고 싶었던 두 사람. 하지만 복싱을 배우기 위해 찾아간 도장에서 모든 대화를 다이어트로 귀결시키고, 주짓수 도장을 알아보다가 여자와 대련하는데 가슴이 닿았다는 후기를 발견하는 등 불쾌한 경험을 되풀이하면서 강소희와 이아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 지식과 능력이 뛰어난 여성 코치를 직접 섭외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여성이 주체가 되어 다양한 종목을 가르치고 배우며 경험을 공유하는 기획이라니. ‘여자가 가르치고 여자가 배우는’ 원데이 클래스를 빨리 듣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종목을 ‘도장 깨기’를 하듯 다른 여성들과 함께 섭렵하고 싶었다.” (28면)
고등학교 때 체육대회마다 여자들에게 유일하게 주어졌던 피구가 지겨워 강소희는 전교 학생회 회의에서 “여자도 농구 하게 해주세요”라고 의견을 내고, 거부당하자 2학년 선배들을 설득해 학교 측 허락까지 당당히 받아냈다. 이후 여자 선수들로 이루어진 학년 대항 농구 시합은 화제가 되어 관람석을 꽉 채웠다.
지난여름을 뜨겁게 달군 2020 도쿄 올림픽의 여자 배구팀, 전·현직 여성 운동 선수들이 함께 노는 예능 프로그램 「노는 언니」, 여성 방송인의 축구 경기를 다룬 「골 때리는 그녀들」, 국내 최고의 여성 댄스 크루의 경연 프로그램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의 몸 쓰는 이야기가 연이어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벤치로 물러나 있던 여자들이 운동장 한가운데로, 무대 중앙으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내일은 체력왕』을 읽다 보면 강소희와 이아리가 우울증과 지독한 위염, 심각한 아토피 등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질 때 좋은 사람들을 만나 운동으로 일상을 되찾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곁에서 뛰고 손을 내밀어주는 동료가 있었기에, 같이 가자고 매트와 코트 위로 불러낸 여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성취였다.
이들이 판을 깐 승부의 세계에는 “어디서 여자가”라는 핀잔도 “여자가 어떻게”라는 훈수도 없다. 그저 무섭게 날아오는 공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몸싸움을 피하지 않고 상대와 같이 바닥에 나뒹굴고, 득점에 성공하면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거 환장하게 재미있다!”라고 외치는 기쁨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김연경 선수의 구호처럼 일단 움직여보자.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
“체력은 태도가 된다”
근심 대신 근력을 더하는 인생 완급 조절 노하우
첫 퇴사 후 이아리가 처음 배운 운동은 수영이다. 뻣뻣한 몸으로 좀처럼 물과 친해지기 어려워 그만두려던 그를 붙잡은 건 계속 다그치기만 하던 강사가 아닌 두부찌개였다. 수영장에서 쪼그라든 몸과 마음을 안고 들어간 두부찌개 집에서의 만족스러운 한 끼가 운동을 지속하는 동력이 되어준다. 의욕 없는 강소희의 그저 그런 시기를 버티게 해준 것도 운동 후에 먹는 맛있는 음식들 덕분이었다. 감각에 의지해 몸을 쓰고 감각에 집중해 먹는 즐거움은 운동이 차려준 맛깔나는 밥상이자 살맛 나는 일상이다.
그뿐일까. 스포츠클라이밍과 헬스는 이아리의 왜소한 몸이 ‘작지만 건장한 몸’으로, 농구와 축구와 배구는 강소희의 여자 치고 크고 굵은 몸이 ‘기능하는 강한 몸’으로, 나의 몸을 긍정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단, 내일은 농구하고 모레는 배구를 하다가 부상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대체 뭐 하시는 분이세요?”라는 질문을 받는 건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몸을 쓴다, 근육이 생긴다, 힘을 키운다. 이 단순한 법칙은 체력이 곧 태도가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틀림없이 나를 변화시킬 것이다.
땀 흘리는 여자들의 근력 연대기를 담은 『내일은 체력왕』은 승리와 패배, 부상과 회복을 반복하면서 경직된 몸과 마음에 기름칠을 해주고 지금 당장 운동화 끈을 조여 맨 다음 현관문을 박차고 나갈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모든 운동이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귓가에 다시 한번 울린다. 진짜 게임은 지금부터다. 우리, 운동장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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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서 남 주냐’는 말은 공부보다 운동에 어울린다. 땀 흘려 몸을 쓰고 성실하게 움직여본 사람이 얻는 성취야말로 온전히 자기 몸과 마음의 것이 된다. 그럼에도 다른 여자들의 운동 이야기를 자꾸 보고 듣고 싶어지는 이유에는 자신의 테두리를 넘어버리는 이들을 지켜보는 쾌감이, 어떤 ‘맛’을 알아버린 자들끼리 은밀하게 손바닥을 부딪치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강소희와 이아리의 활기찬 동맹에 초대받아 함께 뛰고 구르고 넘어지고 웃은 기분이다. 주짓수부터 스윙댄스까지 여자가 가르치고 여자가 배우는 ‘여가여배’의 세계관 안에서 펼쳐지는 연결과 확장의 모습을 보면서는 눈물도 조금 났다. 여자들이 이렇게 운동하는 이야기라면 나는 아무리 보고 듣고 읽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게임은 이제 시작이니까.
- 황선우(『멋있으면 다 언니』 작가, 생활 체육인)
Media Changbi Publishers
강소희
시골에서 절반, 도시에서 절반 살았다. TBWA KOREA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여자가 가르치고 여자가 배운다」 프로젝트를 기획·운영 중이다. 고등학교에서는 탁구부, 대학교에서는 연극부로 활동했다. 2011년 광고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인디 레이블, 인테리어 회사, 방송국, 잡지사, 사회적 기업, 대안학교 등 많은 곳에서 일했다. 값진 경험이 많았으나 겪지 않아도 될 경험도 많았다. 농구단에서 포워드를 맡고 있고 최근에 축구를 시작했다.
이아리
스튜디오 바톤을 공동 운영하며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여자가 가르치고 여자가 배운다」 프로젝트를 디자인·운영 중이다. 운동하고 나서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지만 매번 운동 갈까 말까 고민한다. 수영과 헬스, 클라이밍에 큰 흥미를 느끼다가 최근에는 테니스를 배우고 있다. 체력이 곧 태도라고 믿으며 오래 디자인하고 글 쓰며 운동하고 싶다.
여가여배 트위터 @wtwl_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