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봤어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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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의 작가 김려령, 그 놀라운 변신

청소년은 물론 모든 세대에게 커다란 사랑을 받은 화제작 『완득이』의 김려령 작가가 놀랍도록 강렬한 소설로 돌아왔다. 『완득이』에 이어 영화화가 진행 중인 『우아한 거짓말』과 호평받은 근작 『가시고백』에 이르기까지 김려령 작가는 특유의 위트와 밀도 있는 문장, 녹록지 않은 사유로 단숨에 우리 출판계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는 데 성공했다.


『너를 봤어』는 사랑과 폭력을 주제로 벼린 매혹적인 서사를 담고 있다. 한번 손에 들면 쉽게 멈출 수 없는 탁월한 흡인력으로 다가온다. “비범한 이야기꾼”으로서 “생동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의 이 작품은 한국문학 전체에 “새로운 활력”(한기욱 문학평론가)을 불어넣을 것이다. “문장이 당신의 심장을 두드리는 최고의 소설”(변영주 영화감독)이라는 찬사가 무색하지 않을, 올해 문학계 최대의 화두가 될 역작이다.



지독한 사랑, 뜨거운 반전!

“우리가 제발 사랑이 아니었으면…”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정수현’은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공히 인정받는 중견 소설가이자 유수한 출판사의 편집자이다. 모자랄 것 없어 보이는 삶이지만 그에겐 지옥과도 같은 과거들이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내는 주위의 모든 이들을 숨 막히게 만드는 섬뜩한 차가움을 가졌다. 그녀는 오로지 수현의 애정만을 갈구하지만 그것을 몰랐던 수현은 아내를 은연중에 자살로 내몬다.


또한 수현은 어릴 적 극심한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의 의문사에 일조한다.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자기 안의 괴물을 품은 수현에겐 아버지의 폭력을 대물림해서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아가는 형과, 수현과 아내에게 끊임없이 돈을 뜯어내려 하는 치욕스러운 어머니만이 남아 있다.



너 그렇게 자랐구나. 영재가 할머니 벽장에 숨은 것처럼 나는 개천 상류 숲에 숨었다. 하늘도 맑고 바람도 좋은데 나는 늘 왜 아픈지, 너럭바위에 누워 눈물을 훔쳤다. 그래도 그곳만큼 나를 잘 숨겨주고 편하게 해주는 데가 없었다. 너럭바위를 돌절구 삼아 벌레와 나비를 찧으며, 오늘은 얼마큼 맞았나, 사람은 몇번을 찧어야 이렇게 가루가 될까, 사람도 송충이처럼 툭 터뜨릴 수 있을까 하는 상상으로 나를 다독였다. (118면)



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가족과의 끈질긴 악연과 자신의 이중성으로 나락에 빠져들게 되는 수현에게 어느날 마주한 후배 작가 ‘서영재’의 존재는 유일한 희망과 설렘으로 다가온다. 뜨겁고도 발랄하고 애틋한 수현과 영재의 사랑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 중의 하나다. 작가가 “지리멸렬한 삶일지라도 끝내 버릴 수 없는, 그러면 안되는 사랑, 그것으로 이제 독자를 만난다”(작가의 말)고 말한 것처럼 이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사랑 이야기는 읽는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영재가 내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나를 꼭 안는다. 왜? 예뻐서요. 나도 영재를 안는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냥 이렇게 안고 싶었다. 영재가 내가 아닌 남자와 함께 있어도 괜찮았다. 거기서 음식을 먹어도 좋았고 누군가와 떠들어도 좋았다. 등 뒤에라도 내가 느낄 수 있는 거기에 있으면 되는 거였다.



“앞으로 내가 예쁠 때마다 안겨.”



“아.”



“뭘?”



“혀.” (61면)



그러나 태어나 처음 진정으로 느낀 사랑은 커다란 행복임과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을 안기는 굴레가 된다. 영재 또한 수현을 사랑하지만 수현이 보기에 자신이 형제처럼 아끼는 후배 소설가 ‘윤도하’야말로 영재의 진정한 파트너이다. 그리하여 수현은 자신의 예감을 확인하기 위해 영재와 도하에게 협업의 기획소설을 제안한다. 수현은 이제 목숨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무거운 고뇌에 빠진다. 자신의 괴물 같은 모습을 숨길 것인가, 이 모든 것들로부터 홀로 사라질 것인가.




이런저런 대회에서 상도 받았고 무리 없이 대학에 입학해 학기 중에 등단했다. 뒤로도 큰 고비 없이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한 여인과 결혼했다. 이것이 세간에 알려진 나의 이야기다. 지나치게 정석의 코스를 밟아 누구는 내게 그래서 고생살이 없다고 한다. 그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던 도피와 떨쳐낼 수 없는 두려움과 서러움을 그들은 몰랐다.


“수형이냐?” 부르던 아버지가 부지불식간 나타나, “이쪽이에요” 했던 나를 따라왔다. 아버지와 형, 그리고 아내. 그렇게 살다 그렇게 떠난 사람들. 늦은 미련으로 만약에,라는 가정도 하지 않으려 한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제 그만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우리가 지금 하는 것이 제발 사랑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영재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102~103면)




우리 시대의 핵심을 돌파하는 진정한 소설



『너를 봤어』는 큰 줄기로서의 이야기 바깥에서도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출판계의 소소한 에피소드나 소설가의 일상을 맛깔나게 그려낸다. 전작들에서 볼 수 있었던 작가만의 위트도 반갑게 만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독자들은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소설로 단숨에 읽어내리게 되는 것이다.



도하의 소설 『졸지에 빠른 형』이 출간됐다. 고등학교 남학생 둘이 자위행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무래도 삼분 안에 끝내기 힘들다는 한 녀석의 말에, 옆의 녀석은 육십초 만에 끊을 수 있다고 호기를 부린다. 마침 동네 형이 나타나자 한 녀석이 묻는다. 형은 몇초 만에 끊을 수 있어? 동네 형은 백 미터 달리기를 말하나 싶어 십육초라고 답한다. 그 바람에 졸지에 빠른 형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 졸형의 이야기다. 고정팬이 제법 많은 작가답게 초반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오늘 각 서점을 통해 신청 받은 독자들과 작가와의 만남을 가졌다. 장소는 홍대 근처 문학까페로, 우리 A출판사가 직접 운영하는 곳이다. (121면)



이 작품의 또하나 중요한 특장은 ‘수위가 세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도 소설에 깊게 몰입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와 더불어 이야기에 당위성을 불어넣는 한편 작가의 깊은 사유를 내재하고 있기도 하다. 한번도 진심어린 애정을 경험해보지 못한 수현이 영재와 뜨겁게 사랑하면서 나누는 성애의 묘사는 인간 내면의 잔인한 폭력성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한편, 아름다운 사랑에 행복해하면서도 생의 끝으로 달려가야 하는 수현의 절절한 심정을 공감하게 해준다.


몇 차례 등장하는 돌연한 폭력의 장면들은 숨 막힐 듯 팽팽한 긴장감과 잔혹한 충격을 전하는데, 이는 예술을 향유하면서 안락한 일상을 누리는 우리네 세속적인 삶 바로 한 꺼풀 아래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극단적인 폭력의 세계가 도사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 폭력의 시퀀스는 가정 내에서조차 회복할 수 없는 갈등을 야기하는 하층 계급의 비참한 현실이나 철저한 자본의 논리 속에 망가져가는 현대인의 삶의 또다른 모습인 것이다.



후미진 인적 없는 곳에 상가가 있다는 게 거짓말 같은 곳이다. 건물은 어려서 살던 개천가 낡은 집보다 더욱 낡았다. (…) 이 건물 지하, 폐업한 지 오래된 식당에 어머니가 살고 있다.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점포로 난 계단이라기에는 폭이 지나치게 좁다. (…) 곰팡내와 지린내가 심한 것을 보니 꽤 오랫동안 세입자가 없었지 싶다. 쇠파이프를 지지대 삼아 열려 있는 문 안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놈이 있는 게 분명하다.



“개새끼가 한번을 재깍재깍 안 부쳐. 낮에 받아놓으라고 했어 안했어!”



“준다잖어, 기다리면 준다잖어!”



욕설과 함께 구타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벽에 바짝 붙었다. (…)



어머니가 맞는다. 달리 피할 방법이 없어 무기력하게 맞아야 했던 어린 나처럼 늙은 어머니가 맞고 있다.


(65~66면)



저잣거리 속에서 태동하고 자라난 장르가 소설이라면, 누구라도 흥미롭게 귀 기울일 수 있는 목청 높은 이야기와, 그 속에 담은 대중들의 애환과 희로애락을 통해 완성되어 우리 곁에 가깝게 자리했을 터이다. 『너를 봤어』는 그래서 참으로 소설다운 소설이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서사와, 일견 무척 극적이지만 실은 우리의 시대상을 반영한 리얼리즘적 시각이 다시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신명난 감흥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서사 부재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작금의 한국소설에 단비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너를 봤어』는 오직 김려령만이 할 수 있는 개성 넘치는 문장과 어법으로 사랑의 유전, 폭력의 사슬이라는 주제를 탁월하게 형상화했다. 깊은 통찰력과 더불어 극적인 반전, 숨 막히는 전개는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한국문학에서 김려령의 변별점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한다. 단언컨대 이 작품을 통해 새롭게 내디딘 김려령의 발걸음은 작가 개인에게도, 한국문학 전체에도 커다란 의미를 지니기에 충분하다. 『너를 봤어』를 읽으며 보낼 독자의 시간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영재는 내게서 숲 냄새가 났다고 한다. 그래서 나와 함께 있으면 잎 많은 숲에 기분 좋게 누워 있는 것 같았다고. 부드럽고 선선해서 잠이 솔솔 왔다고. 후후후. 어릴 적 숲이 내게 남았나보다. 그 숲을 영재에게만 보여줬나보다. 영재에게는 하얀 토끼풀꽃 냄새가 난다. 아무 냄새 없는 것 같으면서 달콤하고, 단가 싶으면 쌉쌀한. 너른 토끼풀밭에서 뒹굴다 방금 나온 아이 같은. 그것이 영재다. 곁에서 같이 놀아도 좋고, 토끼풀꽃 하나 들고 달려오면 그대로 안아줘도 좋은. (19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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ავტორის შესახებ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7년 『완득이』로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마해송문학상,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등을 받았다.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기억을 가져온 아이』 『완득이』 『요란요란 푸른아파트』 『우아한 거짓말』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가시고백』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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