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하룻밤을 말하세요. 그 하룻밤이라도 전 당신을 평생 기억할 것 같으니까.” “진심인가?” “인정했잖아요, 당신에게 끌린다고. 난 선택했어요. 결정은 당신이 하세요.” 아름답고도 강한 꽃. 밀화원에서 키워낸 비밀의 꽃, 첩화(諜花) 서근정. 일생에 단 한 번 주어지는 임무가 그녀에게도 주어졌다. 그것은 바로 히로하타 쥰의 정부가 되어야 하는 것. 분명 그는 임수 완수를 위한 타깃이건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괴물들의 집합소, 히로하타가.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자신도 괴물이 되어야 했던 남자, 히로하타 쥰. 별도 달도 없는 암흑천지이던 그의 하늘에 그녀로 인해 별빛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서근정, 너 대체 뭐야. 내가 바라보며 마음에 담았던 넌, 전부 다 거짓인가? 난 그저 네가 보여 주는 모습에 속았던 거야? 임무를 위해, 복수를 위해 타깃인 히로하타 쥰을 유혹해야 하는 첩화 서근정. 과연 그녀는 일생에 단 한 번 주어지는 임수를 무사히 완수할 수 있을까? [본문 내용 중에서] “난 확신해. 넌 내 여자가 돼야 해.” 그녀의 한쪽 뺨을 감싼 그가 엄지손가락 끝으로 아랫입술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의 두 눈에는 열망이 가득했다. “나를 따라와, 일본으로. 네가 원하는 모든 걸 해줄게.” “당신의 여자요?” “그래.” “안고 싶을 때 안을 수 있는 그런 여자 말인가요?” 근정이 그의 품을 밀어내며 오롯이 혼자서 섰다. 그녀를 순순히 품에서 놓아준 그가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그녀를 쳐다봤다. “원하는 모든 걸 해줄 거야.” 조금은 차갑게 내뱉는 그의 말에 근정이 허탈하게 웃었다. “인정해요. 당신에게 끌렸어요.” “알아. 느끼고 있었어. 그럼 됐잖아.” “아니요.” 그녀가 부정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거 말고 문제될 게 무엇이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그를 보며 근정이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 끌림 하나에 여태껏 살아온 내 인생을 버리고 당신을 따라오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세요. 당신의 삶에 비해 내 삶이 무가치한가요? 난 인형 뽑기 기계 안에 든 인형이 아니에요.” “나도 그런 인형 따위 관심 없어. 매력 없으니까. 네 인생이 하찮아서 내가 구제해 주는 것처럼 보여? 아니. 그만큼 널 원하니까 한 말이야. 물론 그게 얼마나 갈지는 나도 몰라.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거야. 그저 하룻밤 즐기고 기억에서 지워져 버릴 그런 여자 아니다, 너.”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짓도 포장도 없이 오롯이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싶었다. 그냥 따라간다고 해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분명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은 그러했는데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전혀 딴판이었다. “차라리 하룻밤을 말하세요. 그 하룻밤이라도 전 당신을 평생 기억할 것 같으니까.” “진심인가?” “인정했잖아요, 당신에게 끌린다고. 난 여기에 있는 내 삶을 버릴 수 없고, 당신은 이곳에 머물 수 없어요. 그런 우리에게 오늘이 마지막 밤이고. 선택은 둘 중 하나잖아요.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서든지 함께 밤을 보내든지.” 다부지게 자신의 생각을 전한 근정은 쥰에게 한 발 다가섰다. 두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짚었다. 그는 그저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발돋움을 하여 굳게 다물어진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난 선택했어요. 결정은 당신이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