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기완을 만났다(개정판)

· 창비 Changbi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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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화제의 영화 「로기완」 원작소설

신동엽문학상 수상작, KBS 선정 ‘우리 시대의 소설 50’

조해진이라는 굳건한 토대를 완성한 우리 문학의 찬란한 한걸음

 

타인의 아픔에 대한 가장 진정성 있는 고민

섬세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그려낸 공감과 연대, 치유의 이야기

 

* 창비에서는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작품들을 엄선해 새로이 단장한 ‘리마스터판’을 출간하고 있습니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고전으로 자리 잡은 작품들이 오늘의 젊은 독자들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산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백신애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거머쥐며 탄탄한 작품성을 입증해온 작가 조해진의 신동엽문학상 수상작 『로기완을 만났다』가 작품의 영화화라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출간 이후 13년 만에 ‘리마스터판’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독자들 앞에 돌아왔다.

『로기완을 만났다』는 “이방을 떠도는 탈북인의 운명에 대해 놀랄 만큼 차분한 공감을 자아내는 넉넉한 품과 세심한 결”이 돋보이는 한편 “올올이 살아 있는 반성의 문체와 서럽도록 몽환적인 여로를 결합해, 소설에서 보편성이 어떻게 획득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입증해냈다”(권여선)는 평으로 2013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2021년에는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선정한 ‘우리 시대의 소설 50’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시간이 지나도 빛바래지 않는 한국문학의 중요한 성취로 꾸준히 거론되어왔다. 몰입감 넘치는 서사와, 거기서 파생되는 보편적인 감동에 집중해 2024년 3월 넷플릭스 영화로 제작되는 데 발맞춰 선보이는 이번 리마스터판에서는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원작의 의미를 충실히 되새기되 최근의 정서에 맞게 일부 표현을 다듬어 새단장을 마쳤다.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숭고한 발걸음

혈혈단신으로 벨기에에 밀입국한 탈북인 ‘로기완’의 행적을 추적하며 타인에 대한 공감과 애정을 탁월한 솜씨로 그려낸 『로기완을 만났다』는 조해진 문학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작품이다. 작품활동 초반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조해진은 현실적인 고난을 겪는 인물들과 황량한 내면의 밑바닥을 차분히 응시해왔으나, ‘로기완’을 만나기 이전 작품의 인물들은 위기에 당면해 현실을 회피하거나 자신 안으로 숨는 결정을 내리곤 했다. 하지만 작가적 고민이 한층 넓고 깊어진 『로기완을 만났다』에서 그들은 새로운 희망을 만난다. “인물들이 어느 순간 진실을 응시하면서 타인들과 연대하려고 하고, 희미하나마 희망을 찾으려” 하게 된 것이다. 작가에게 “살아 있다는 감각을 찾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과 연대하려고 하는 게 오히려 더 큰 용기이고 더 문학적일 수 있다”(『세계일보』)는 깨달음을 주며 사고의 전환점이 된 작품. “저에게 세상을 이전보다 넓게 볼 수 있게 해준 시야와 연대와 사랑에까지 닿는 공감과 증여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으며 끝내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한 이 소설이 누군가를 만나 그 삶에서 새롭게 태어나길 희망해봅니다”(새로 쓴 작가의 말)라는 소망을 담은 작품. 『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을 통해 이제 더 많은 독자들이 진심어린 공감과 연대에 동참하고, 삭막한 일상 속에서 자주 잃어버리고 마는 ‘삶의 이유’를 찾는 여정에 오를 차례다.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

가장 비밀스러운 존재를 만나기 위한 경이로운 여정

이니셜 L, ‘로기완’은 함경북도 온성군 세선리 제7작업반에서 태어나 자랐고 생존을 위해 홀로 이역만리 벨기에로 밀입국한 스무살 청년이다. 함께 북한 국경을 넘은 어머니가 중국에서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뒤 그는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었음을 알고, 어머니의 시신을 팔아 마련한 돈 650유로를 목숨처럼 품에 안고 브뤼셀에 온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당도한 낯선 타국에서 조국과 언어를 잃은 그는 견디기 힘든 가난과 멸시를 감내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소설은 로기완이 아닌 화자 ‘나’를 통해 서술된다. ‘나’는 불우한 이웃들의 사연을 다큐로 만들어 실시간 ARS를 통해 후원을 받는 방송 프로그램의 작가이다. ‘나’는 부모를 여의고 반지하방에서 뺨에 커다란 혹을 단 채 힘겹게 살아가는 출연자 ‘윤주’의 후원금을 늘리기 위해 윤주의 방송 날짜를 추석연휴로 미룬다. 그러나 이 선의의 결정으로 수술 날짜가 미뤄진 사이 윤주의 혹이 악성 종양으로 바뀌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 자신의 연민 때문에 윤주가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나 큰 죄책감에 휩싸이고 그길로 윤주에게서 등을 돌린다. 현실과 마주할 용기를 잃어버린 ‘나’는 우연히 읽게 된 시사잡지에서 탈북자 로기완의 이야기를 접하고 무작정 벨기에로 떠난다. 그곳에서 ‘나’는, 로기완이 자신의 행적을 기록한 일기를 구해 그의 자취를 되밟아나간다. 로기완에 대한 글을 씀으로써 잃어버린 삶에의 이유를 찾기 위해, 혹은 글을 쓰는 것이 진정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다시 모색하기 위해. 요컨대 이 소설은 로기완의 ‘고난의 행군’에 대한 절절한 기록인 동시에 작가로서의 삶을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나’의 구도의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연민과 유대가 빚어내는 가슴 벅찬 희망의 이야기

다른 사람에게 커다란 절망을 안기고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나’, 어떠한 보호와 책임으로부터 배제된 채 생존의 기로에 선 로기완, 어린 나이에 끝없이 상처를 입어야 했던 윤주, 그리고 숨겨진 과거로 평생 고통받아온 ‘박’까지, 『로기완을 만났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아픔과 절망으로 힘겹게 살아간다. 서로 다른 나이와 직업, 환경을 가진 이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애달픈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이 세계에서 하나의 어엿한 주체로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태로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은 고통에 매몰되지만은 않는다. ‘나’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로기완의 일기를 통해 타인을 연민하는 법을 체득해가고, 로기완은 나이와 인종의 벽을 넘은 ‘박’과 ‘라이카’와의 유대를 통해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나’와 ‘박’이 서로를 거울삼아 서서히 마음의 상처를 회복해가고, 윤주와 ‘나’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다시 균열을 메워나가는 과정 역시 끈기 있게 그려진다. 이렇듯 『로기완을 만났다』는 삶의 근원적인 슬픔을 말하는 동시에 연민과 유대를 통한 희망을 함께 역설한다. 저마다의 결핍과 갈등이 현실과 괴리되지 않은 진지한 사유 속에서 회복되어가는 과정은 삶의 남루한 기슭에 머무르는 이들 모두에게 묵묵한 위로를 선물한다.

풍부한 상상력과 사려 깊은 문장으로 쓰인 『로기완을 만났다』를 읽으며 우리는 누군가의 아픔에 예민하게 감응하고, 아픔의 사연을 샅샅이 들여다보며 그를 돌보는 것, 즉 문학의 이유를 마주하게 된다. 작품 속 누군가의 삶이 나 자신의 삶으로 전이되고, 끝내는 그를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된다.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일이 불가능하단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로기완을 만났다』는 오히려 그 불가능과 타협하고 손쉽게 연민하려는 나약한 마음을 끊임없이 다그치고 몰아세운다. 순도 높은 공감과 연민에 이르기까지, 타인이라는 완고한 벽에 계속해서 부딪치고 깨지면서 그 한계와 환멸까지 끌어안고 한발짝이라도 더 타인에게 가닿으려는 진심을 전한다. 그리하여 “결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김연수, 추천사)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초판이 나온 후 13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도 이 마법은 여전히 필요하다. 삶의 애환은 점점 다양하고 깊어지는 반면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감수성은 쉽게 무뎌지곤 하는 까닭이다. 내 주변을 살피는 예리한 시선과 상처를 돌보는 따스한 손길로 가득한 이 작품은 그래서 오랫동안 유효했으며 오래도록 유효할 것이다.

 

차례

로기완을 만났다

 

새로 쓴 작가의 말

작가의 말

 

 

책 속에서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 (7면)

 

방수포에 싸인 650유로. 그 장면을 상상하자 묵직한 통증이 가슴속에 내려앉으면서 숙박계에 이름을 적던 손길이 멈칫한다. 로의 일기를 정독하면서 딱 한번 독서가 중단된 것도 일기 후반부에 적혀 있던, 방수포에 싸인 그 돈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되었을 때였다. 나를 이곳으로 이끈 시사잡지의 문장 역시 바로 그 장면에서 비롯되었다. (41면)

 

이토록 풍요로운 세계 저편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난하고 기근에 허덕이는 거대한 공동체가 분명 하나의 국가로 존재한다는 것이 로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그 세계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머나먼 연회장을 초대장도 없이 찾아온 이상한 방문객이 된 것처럼, 고향을 떠올린 그 순간 로는 스스로가 이유없이 부끄러워졌다. (49면)

 

연민이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진보하다가 어떤 방식으로 소멸되는 것인가. 태생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그 감정이 거짓 없는 진심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포기되어야 하는 것일까. (58~59면)

 

내게 남은 건 스스로에 대한 가학적인 의심뿐이었다.

윤주로부터, 석달을 못 참고 악성으로 바뀐 그애의 성급한 종양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것이 내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하여 그애를 대했던 내 마음은 나 자신을 위한 자족적인, 그래서 다분히 가식적인 연민에 지나지 않았을 거라는 견디기 힘든 의심. (69면)

 

가방에서 로의 일기를 꺼내 이번만큼은 행간의 의미,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까지 꿰뚫는 독서를 해보겠다고 다짐한다. 섣불리 연민하지 않기 위하여, 텍스트 외부에서 서성이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내부로 스며들어가 스스로에 대한 가혹한 고통과 뒤섞인 진짜 연민이란 감정을 느껴보기 위해서. (70면)

 

이제 더이상 그리운 마음 하나만으로 고향을 추억하는 달콤한 시간은 자기 삶에 없을 것임을 로는 깨달았다.

로는 다시 걸었다.

스무살의 이방인 로가 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건 그것 외엔 없었다. 3년 전의 12월 11일. 그날도 오늘처럼 비와 눈이 번갈아 내리는 추운 날씨였을까. (93면)

 

—살아남으시오.

브로커는 이어 말한다.

—살아남으면 언젠가는 보지 않겠소.

그 말을 들은 순간 로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살아남는 것, 그것은 연길을 떠나올 때 이미 로에게 각인된 삶의 유일한 이유였고 어머니의 말없는 유언이었다. (104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눈물까지 애틋함의 시선으로 완성하는 것, 언젠가 나는 재이에게 대본이든 대본 이외의 글이든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되면 좋겠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141면)

 

“가만히 김작가를 보니 기완이를 만나는 것 자체보다 그 만남을 준비하는 것을 더 중시하는 것 같았소.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거요. 내가 틀린 겁니까?” (209면)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 (222면)

 

로, 이것이 바로 내가 들려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이다. (230면)

 

 

추천의 말

우연히 한 남자의 삶에 끌린다. 그는 이니셜로, 혹은 흔적으로 남은 사내다. 그의 삶을 상상하는 것, 이해하는 것, 그리하여 글을 쓰는 건 무모한 욕망이다. 이니셜, 혹은 흔적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니까. 실패의 글쓰기는 예정돼 있다. 타인은 영원히 타인으로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뭔가를 쓴다. 실패를 감당하겠다는 태도, 거기에 자기 삶의 모든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일은 문학에서 종종 목격된다. 『로기완을 만났다』가 바로 그런 소설이다. 김연수 소설가

 

 

새로 쓴 작가의 말

『로기완을 만났다』를 구상하고 집필할 당시의 저는 서른 중반의 젊은 작가였습니다. 물론 그때는 스스로 젊다는 것뿐 아니라, 제 안에서 무언가가 붕괴되고 부서지며 시야가 확장되고 마음의 키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로기완을 만났다』는 한 인간으로서나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저를 성장하게 해준 작품인 셈입니다.

 

『로기완을 만났다』를 쓰면서 공감을 믿게 됐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김작가는 이니셜로만 존재했던 로기완이 남긴 인터뷰와 기록을 보며 자신의 내면에 켜켜이 쌓인 상처에 눈뜨고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가는 방법을 깨달아가는 인물입니다. 그 과정에서 김작가는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이 직면한 ‘고난의 행군’을 알게 되고 난민의 정의와 국제적인 협약, 나아가 우리 모두가 이방인의 성분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배워가기도 하죠. 저는 김작가를 통해 저를 돌아봤고 제가 그동안 제대로 보지 못했고 보려 한 적도 없는 세상에 눈뜰 수 있었습니다. 알게 되었다는 것, 그것은 다시 우리가 최선을 다해 공감해야 하는 것의 전제가 될 것입니다.

 

증여의 가치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소설 안에서 로기완은 의사 박에게 일기를 증여하고 김작가는 그 일기를 읽은 뒤 남긴 기록을 다시 로기완에게 증여하는데, 그들이 서로에게 증여한 문장들은 결국 소설 밖에서는 읽는 이에게 증여되리라 믿습니다. 그 증여의 가치는 지금껏 제 문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저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소설은 독자에게 닿기 전에 작가를 꿈꾸게 하고 살게 합니다.

 

저에게 세상을 이전보다 넓게 볼 수 있게 해준 시야와 연대와 사랑에까지 닿는 공감과 증여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으며 끝내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한 이 소설이 누군가를 만나 그 삶에서 새롭게 태어나길 희망해봅니다.

 

2024년 이후에 로기완을 만나게 될 모든 독자분들께,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2024년 초입에

조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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نبذة عن المؤلف

소설가 조해진은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환한 숨』,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중편소설 『완벽한 생애』 『겨울을 지나가다』, 짧은 소설집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무영문학상, 김용익소설문학상, 백신애문학상, 형평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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