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녀를 전혀 다른 의미로 불편하게 만드는 남자, 현서혁.
자꾸만 거슬린다. 못마땅한 듯 죽어라 노려보는 그의 까만 눈동자가.
생각하니 열받는다. 뭐 저리 까칠할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대체 왜 나한테만?
“본부장님.”
“말해요.”
“죄송한데 저 회사 못 그만둡니다.”
치밀어 오르는 많은 말들을 대신해 그녀는 최대한 정중하게 내뱉으며 재킷을 벗었다. 그러고는 도로 가져가라는 듯 그에게 내밀었다. 한쪽 눈썹을 꿈틀거린 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만두라고 한 적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다행이면 어서 입어요.”
“괜찮습니다.”
“고집부릴 겁니까? 그러다 진짜 앓아누우면 어쩌려고.”
무슨 상관이냐고 되받아치려는데 그가 재킷을 확 낚아챘다. 아까보다 더 신속한 동작으로 거침없이 둘러 입혀 주는 그를 그녀는 차마 막지 못했다. 그가 자그맣게 툴툴거렸다.
“다시 말하지만 난 서 대리한테 그만두라는 말 한 적 없습니다.”
“본부장님.”
“만약 옮기겠다고 해도 말려야죠, 서 대리가 맡은 주요 프로젝트만 해도 몇 갠데. 게다가 일 잘하는 직원을 단순히 노파심에 함부로 자를 만큼 무모하지 않습니다.”
“그럼 저한테 뭐 바라는 거 있으세요?”
뿌리치지 못하게 앞깃을 꼭꼭 여며 주기까지 하는 그가 의아해 그녀는 대놓고 물어보았다.
그만두길 바라는 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는 있느냐고, 그래서 이렇게 괜한 시비를 걸고 툭툭거리는 거냐고. 그녀는 제 말투가 꽤나 삐딱해졌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상황에 맞진 않지만 까만 눈동자가 소리 없이 일렁이는 모습이 꽤 근사하다는 생각을 그녀는 잠깐 했다.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가 느릿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어느샌가 약해진 빗줄기 덕분인지 차분한 그의 목소리는 아주 분명하게 들려왔다. 그 정도로 확고한 말투였다. 꼭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인 것처럼.
저자 - 리밀
소심한 글쟁이
여전히 꾸준하게 방황 중
myrimile@hanmail.net
<출간작>
Taboo(금기). 금기(Taboo). 센티멘털리즘. 슬링 미. 슬러시(Slush). 꼬리. 멜로우 틱. 포르말린 핑크. 블러핑. 뉘앙스. 불투명한, 투명. 히든 초콜릿. 더없이 달콤한. 엷다. 더없이 야릇한. 플라쥬. 할로우 틱(Hollow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