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사나이≫에서는 ‘광기’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대학생 나타나엘이 어린 시절의 끔찍한 체험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들을 겪으면서 점차 광기에 사로잡혀 파멸해 가는 것이 전체 줄거리다. 꿈과 환상, 광기나 최면술과 같은 초자연적 현상, 무의식적이고 비합리적인 경험들은 독일에서 이성과 합리성을 내세웠던 계몽주의 시기에는 금기시되고 배척되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계몽주의적 합리성의 세계가 가져온 답답한 현실에서 심한 소외를 느끼게 되자 예술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내적인 자유를 추구했던 낭만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했던 문학적 소재가 되었다. 즉 낭만주의 문학에서는 환상적인 세계가 일상의 세계와 통합되며, 인간의 무의식적이고 비합리적인 경험들이 중요한 소재가 된다. 그리고 초자연적 요소가 풍부한 낭만주의 초기의 환상적 이야기들은 차츰 세계의 마성적인 힘, 인간 내면에서 파멸을 가져오는 어둡고 기이한 정신적인 과정, 사악한 충동, 광기, 불안, 경악을 소재로 하는 ‘공포 낭만주의’로 나아간다. 아울러 낭만주의 시대에는 의학과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광기와 같은 인간 정신의 ‘밤의 측면들’에 주목하는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광기는 인간의 오성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영역이었고 정상과 광기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긋는 것은 불가능한 현상으로 여겨졌으며, 특히 광기는 1800년대에 문학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제가 되었다. ≪모래 사나이≫는 바로 ‘광기’에 대한 당대의 이러한 담론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광기’나 주인공의 정신적 외상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광기에 사로잡힌 주인공의 시점에서 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