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아재비

· 창비시선 506 巻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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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가보니 집 앞 개울가

미나리아재비 잎에 앉은 별이 반짝거렸다”

 

무한히 연결되고 조응하는 생명의 흐름 속에서

아픔과 슬픔을 그러안는 애틋하고 진실한 목소리

 

고향을 배경으로 한 농촌 서사를 구체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과 애잔한 서정으로 펼쳐온 박경희 시인의 시집 『미나리아재비』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능청과 해학”으로 “슬픔을 걷어내는 방식이 가히 독보적”이라는 평을 받았던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창비 2019)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세번째 시집에서 시인은 찰지고 구성진 충청도 사투리와 걸쭉한 입담으로 고향 마을의 “자연과 사람살이의 애틋한 정경들”(문동만, 발문)을 그려내면서 토속적인 서정과 서사가 어우러진 ‘이야기 시’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질박한 삶의 애환이 담긴 다정다감한 시편들이 잔잔한 울림으로 여울지면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는 따뜻한 시집이다.

 

“돌담 사이에 핀 민들레 바라보다가

엄니의 뒷짐에 얹힌 서글픔에

 

앵두꽃이 피었는지

살구꽃이 피었는지“

 

박경희의 시는 쉽게 읽힌다. 따로 해석할 필요 없이, 세밀하고 감성적인 필치로 그려내는 삶의 풍경을 바라보고, 익살과 해학을 곁들여 살갑고 능청스럽게 펼쳐놓는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하면 된다. “살아생전 목돈 한번 쥔 적 없는 손에는 늘 쭉정이만 가득했던”(「상강에 이르다」) ‘아부지’, 그렇게 돌아가신 ‘아부지’가 꿈에 나타나자 “살았을 적에 그리 모질게 마음고생시키더니/무슨 할 말이 있어서 이승 문턱을 넘느냐고 사발째 욕을 퍼붓는”(「꿈자리」) ‘엄니’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들과 마치 한집에서 오래 살아온 듯 친근한 느낌을 받게 된다.

시인은 그런 ‘아부지’와 ‘엄니’로부터 이어받은 대지적 감수성과 공생·공유의 세계관을 바탕에 두고 마을 사람들의 삶에 귀를 기울인다. 시인은 ‘나’가 아닌 대상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기거나, 인간의 고독과 슬픔에 조응하는 자연의 모습을 그리는 방식으로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참말로 지랄맞은 시상”(「워쩌겄어」)을 살다 쓸쓸히 사라져간 이웃들의 곡진한 사연이 “마을회관에서 이야기를 한 소쿠리 내놓”(「이야기 한 소쿠리」)는 이웃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한편 “그늘 깊은 집”(「그늘 깊은 집」)을 그림자로 끌어안으며 슬픔에 조응하는 감나무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정성을 들였던 것들은

아픔도 죽음도 함께한다”

 

시인은 ‘나’를 넘어서는 곳에 자리 잡은 시적인 순간들을 포착하여 겸손하게 노래한다. 삶 도처에서 인간과 자연이 공명하고, 사람과 사람이 관계 맺으며 감정의 너울을 일으키는 순간들이다. 시인은 ‘온양댁 할머니’가 “저승 가시자 어찌 알았는지/탱자나무가 한달 만에 죽”어버리는 것을 보고 “정성을 들였던 것들은/아픔도 죽음도 함께한다”(「집이 돌아가셨다」)는 자연의 섭리를 깨닫기도 하고,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고사리 끊으러 다녔던/산이 사라”진 자리를 “당신도 곧 사라질 것처럼 여러날째/빈 하늘만 보고 있”는 ‘석남이네 할머니’(「산이 사라졌다」)의 모습을 보며 쓸쓸해하기도 한다. “스무살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에 밤길 밟아 달려”온 ‘누이’(「구석에서」)와 “허방 가득한 세상”(「가르랑 소리에 묻히다」)에서 “살고 싶어 용을 쓰긴 쓰는디” “허는 일마다 엎어지”곤 하던 ‘사거리집 아들’(「외로운 허수아비」)의 이야기는 서글프고 애잔하기만 하다.

 

“나는 절실하지 않았기에

아직도 여기에 있다”

 

문동만 시인은 발문에서 “박경희 시인은 ‘짠한 사연’을 널리 퍼뜨려 같이 울게 하려는 사람이고,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내력과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는 장삼이사들의 축약된 행장기를 흐르는 물살에 손가락으로 그어서라도 적어두려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오래전 비구니가 되겠다며 법당에 앉아 합장”하다가 결국은 “머리 긴 비구니가 되어/그늘 많은 도시로 돌아”(「폐사지를 걷다가」)온 내밀한 사연을 은근살짝 고백하기도 하지만, 짐승과 인간과 식물의 곁에서 전할 이야기가 많은 지금의 자리에서 시인은 굳건해 보인다. “절실하지 않았기에” 떠나지 못하고 “아직도 여기에 있다”(「나의 바다」)고 말하지만 실은 절실한 마음이 있기에 그는 고향에 남아 여전히 “대지의 공동체와 함께 사는 농민의 삶에 천착”(김해자,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발문)하는 것이다.

시인은 공동체의 사람들과, 그들과 연결되어 조응하는 생명의 흐름을 포착함으로써 현실의 모습과 의미를 한층 선명하고 두텁게 만든다. 근래 보기 드문 서정적인 이야기꾼으로서 그는 그만이 쓸 수 있는 “순량하고도 고유한 마음의 ‘볍씨’들”(발문)을 잘 갈무리하여 자연과 인간에 대한 공경의 마음으로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나갈 것이다.

 

차례

제1부

깨진 바다

물잠뱅이

겨울 저녁

봄을 드시다

산이 사라졌다

아카시아꽃 피는 밤

꿈자리

그렇게라도 짖어보는 것이다

읎는 소리

첫발

오소

파마

리어카에 실려 가는 노을

폐사지를 걷다가

 

제2부

전화

버스 타러 간다

배롱꽃만 붉었다

호들갑

동네 막내

장대추위

워쩌겄어

시린 겨울밤에 들다

너테

가르랑 소리에 묻히다

상강에 이르다

진만이네 개

바다, 잠시 숨을 멈추다

성질난 다짐

 

제3부

더없이 깊고 짙은 여름

음력 유월 초하루

매미

나의 바다

저물녘

아침이 일어난다

그런 날이 있었다

구석에서

먼 거리

읍내 가는 길은 멀다

딱새

소문

산목련 같은 봄에 오르다

 

제4부

그늘 깊은 집

백중(百中)

밤을 줍다가

목련꽃 발자국

달은 밝은데

야간작업

미싱사

집이 돌아가셨다

이야기 한 소쿠리

개 대가리 소금 허치듯

헌 소리 또 허고

외로운 허수아비

염생이

손자국

 

발문|문동만

시인의 말

 

책 속으로

무릎 수술로 한 계절 병원 신세 지고 온

석남이네 할머니

산이 있던 자리 멍하니 보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던

산이 사라졌다

여주댁 이사 가고 산 팔았다더니

그새 사라지고 없다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얘기를 귓등으로 들었다

고사리 끊으러 다녔던

산이 사라졌다

산벚나무가 유난히 많던 산이

호랑지빠귀가 울던 산이

기둥에 걸어놓은 거울 속

산이 사라졌다

당신도 곧 사라질 것처럼 여러날째

빈 하늘만 보고 있다

―「산이 사라졌다」 전문

 

나가 구십 하고도 거시기 두살인가 세살인가 헌디도 까막눈 아녀, 젓가락을 요로코롬 놔도 뭔 자인지 모른당께, 그냥 작대기여 헌디, 할멈이 서울에 있는 병원에 수술받는다고 병달이 놈 손 잡고 올라갔잖여, 병달이가 무신 일 있으믄 편지 쓰라고 봉투에다가 주소는 적어두고 갔는디, 나가 글씨가 뭔지 오치게 알어, 기냥 알았어,라고만 혔지, 그때는 산 넘어가야 전화가 있을랑 말랑 혔어 암만,

어찌어찌 보름이 지났는디 이 할멈이 오지를 않는겨, 저짝에서 소쩍새가 소쩌럭 소쩌 소쩌 여러날 우는디 환장허겄데, 혼자 사는 노인네들은 어찌 사나 몰러, 그나저나 수술받다 죽었으믄 연락이라도 올 텐디 꿩 궈 먹은 소식이더라고,

병달이가 써준 봉투 생각이 나서 종이 꺼내놓고 뭐라 쓰야겄는디, 뭐라 쓰야 헐지 몰라서 고민허다가 에라 모르겄다, 허고는 소 다섯마리 그려 보냈당께, 근디 할멈이 용케 알아보고 열흘 만에 왔더만, 나가 글씨보단 그림에 소질이 있는 걸 그때 알았당께

―「오소」 전문

 

빈 절간을 지키는 개 반달이의 느린 걸음이고 싶어졌고 슬쩍 날아와 털신의 털을 뽑아 가는 박새 부리이고 싶어졌고 무너진 축대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목련나무를 스쳐 가는 바람이고 싶어졌고 극락전 앞 뒹구는 매미 허물이고 싶어졌다 바랜 단청 흐린 색으로 머물다 지워지고 싶었고 문살 나간 창호지 구멍이고 싶었고 그늘도 없는 폐사지에 머물다 간 구름이고 싶었다 요사채에서 병든 사내가 밟은 절 마당이고 싶었고 승복 말리는 빨랫줄이고 싶었다 그렇게 여러달 서성이는 발자국으로

 

머리 긴 비구니가 되어 그늘 많은

도시로 돌아왔다

―「폐사지를 걷다가」 부분

 

아부지는 농부다 말하자면 남의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짓고

밤하늘의 별을 빌려 씨를 뿌리는 사람

 

(…)

 

평생 당신 논은 한뼘도 갖지 못했다 늘어가는 건 조합 빚

같은 주름살에 낡은 경운기 바퀴 사이에 낀 흙덩이 같은 빚,

막장꾼에서 농부로 넝쿨로 기어오른 생

 

빌려 쓰는 생이니 이리 살지,

내 것만 있으면 게을러서 못 산다는

목소리가 커서 허물도 컸다

―「매미」 부분

 

장을 담그려고 살아 있는 꽃게를 사 왔다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섭게 파닥거렸다

바다가 그리 먼 곳이다

 

아무리 파닥거려도 갈 수 없는 곳

필사적으로도 갈 수 없는 곳

 

나는 절실하지 않았기에

아직도 여기에 있다

 

꽃게의 바다도 멀고

나의 바다도 멀다

 

바다는 그리 먼 곳이다

―「나의 바다」 전문

 

할머니 저승 가시고 집이 돌아가셨다

어디로 가는지 모를 그곳으로

집도 따라갔다

 

온양댁 할머니가 우물우물하다가 툭, 뱉어놓은 탱자꽃

피기도 전에 저승 가시자 어찌 알았는지

탱자나무가 한달 만에 죽었다

 

전봇대 공사 도맡아 하던 진숙이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자

그 집 마루 밑에 살던 개 동식이도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보름 만에 죽었다

 

정성을 들였던 것들은

아픔도 죽음도 함께한다

 

아버지 돌아가시자 살던 개도 죽고

밭 귀퉁이 낡은 경운기도 사라졌다

―「집이 돌아가셨다」 전문

 

어린 시절 뒤꽁무니를 쫓아다녔던 수탉의 울음소리가 감나무에 서려 있는 옛집에 들었다 귀퉁이 떨어진 항아리가 있었던가 개망초가 기웃거리는 구름을 쓸어냈다 눈 끝으로 어린 시절을 만지작거리다가 광에서 만났다 큰 몸집이 무너지는 걸 안간힘으로 받쳐 든 벽에 선명하게 찍힌 손자국

―「손자국」 전문

 

추천사

시인은 걷다가 자주 멈칫거리며 뒤를 돌아본다. 흠칫 놀라 풀밭 사이로 풍덩 들어가는 무수한 마음들이 있다. 주머니 속을 헤집어 무엇이라도 주려는 사람을 나는 안다. 시인이 붙잡고 싶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나는 안다. 문득 등을 보이며 삐걱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다정히 인사를 건네는 사람을 나는 안다. “모르는 말들”이 사라지기 전에 발자국을 남기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시인을 나는 안다. 이제 와 고백하지만, 박경희 시인이 부르는 내 이름을 듣고 “쪼그려 앉아 한참”을 울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시집을 읽는 당신도 당신의 이야기를 붙잡을 수 있기를. 그러하기를.

유현아 시인

 

시인의 말

써레질 끝난 논을 보면 환하고, 모심은 논을 보면 푸르고, 무릎까지 오른 벼를 보면 시원하고, 누런 들판을 보면 배부르고, 눈 쌓인 논을 보면 눈부시다. 그 눈부심 속에 함께 있는 분들과 눈부심으로 스러진 모든 분에게 두 손 모은다.

 

2024년 명천에서

박경희

 


著者について

박경희(朴卿喜) 시인은 2001년 『시안』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벚꽃 문신』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동시집 『도둑괭이 앞발 권법』, 산문집 『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 『쌀 씻어서 밥 짓거라 했더니』 『차라리 돈을 달랑께』 『충청도 마음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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