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집 『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는 집필의 동기와 작품의 성격이 독특하다. 2012년부터 자작 하이쿠를 제출하여 서로 돌려보거나 배우는 일명 ‘치매 예방 하이쿠 모임’을 시작한 후로 하이쿠의 세계에 매료된 미야베 미유키는 이듬해 17음으로 이루어진 하이쿠의 풍부한 스토리성을 형상화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 하이쿠 고시엔을 소재로 한 소설은 어떨까, 하이쿠 모임에 대해 써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물망에 오르기도 했지만, 과감하게 ‘하이쿠 자체를 제목으로 한 소설’을 쓰기로 결정한 까닭은 지금껏 전례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四季)가 들어간 구절을 제목으로 한 12편의 소설이 탄생한다.
의료기술이 발달한 미래를 그린 에스에프, 결코 시들지 않는 열매가 등장하는 판타지, 사다코를 연상시키는 존재와 맞닥뜨리는 호러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매력이지만 시댁에서 고립된 며느리, 남자친구에게 스토킹당하는 여자, 바람피우는 남편에게 속는 딸의 삶을 엄마의 입장에서 쓴 이야기 등 여성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내용이 많다.
‘하이쿠X소설의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 이번 소설집에 대해 미야베 미유키는 ‘작가의 말’을 통해 다음과 같은 당부를 남겼다. “처음에 각 장 타이틀이기도 한 하이쿠를 감상하고, 그 후에 소설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하이쿠를 읽으면 소설의 독후감과는 또 다른 새로운 발견이 있을 겁니다.”
1960년 일본 도쿄, 후카가와에서 태어났다. 스물세 살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이 년 동안 고단샤 페이머스 스쿨 엔터테인먼트 소설 교실에서 수학했다. 1987년에 올 요미모노 추리소설 신인상을 받은 단편《우리 이웃의 범죄》로 데뷔했다. 그 후《마술은 속삭인다》(1989)로 일본추리서스펜스대상, 《용은 잠들다》(1991)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화차》(1993)로 제6회 야마모토슈고로상, 《가모우 저택 사건》(1997)으로 일본 SF대상을, 《이유》(1999)로 나오키상, 《모방범》(2001)으로 마이니치 출판대상 특별상, 《이름 없는 독》(2006)으로 요시카와에이지문학상을 수상하며, 명실 공히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로 군림한다.
어렸을 때부터 시대 소설과 대하드라마를 좋아했던 아버지 덕에 많은 작품을 접하고, 시대물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에도에 사는 사람들의 인정을 그려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을 수상한《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1991)를 시작으로, 초능력자가 등장하거나 괴담과 미스터리를 접목한 작품들, 또는 하급 관리 주인공이 괴이한 사건을 수사하는 시대 미스터리를 썼다. 저자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후카가와를 배경으로 한 작품과 더불어 봉건 사회를 사는 서민의 고통에 주목한 사회파 시대 미스터리《외딴집》(2005)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미스터리와 접목한 작품을 속속 발표해 기존 시대 소설 독자뿐 아니라 시대 소설을 읽기 어려워하는 독자들까지 동시에 사로잡았다.
그 밖의 작품으로 《벚꽃 다시 벚꽃》《세상의 봄》 《안주》 《낙원》 《희망장》 등이 있고, 2012년 국내에서 영화화된 《화차》 외에도 《대답은 필요 없어》 《스나크 사냥》 《모방범》 《이유》《고구레 사진관》 《솔로몬의 위증》 등 다수 작품이 영화화되거나 드라마화되었다.
현재 하드보일드 작가 오사와 아리마사(大澤在昌), 미스터리 작가 교고쿠 나쓰히코(京極夏彦),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 이렇게 세 사람의 성을 딴 사무실 '다이쿄쿠구大極宮'를 만들어 함께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문학, 인문, 역사, 과학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기획하고 번역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 『얼간이』, 『하루살이』, 『미인』, 『진상』, 『피리술사』, 『괴수전』, 『신이 없는 달』, 『기타기타 사건부』, 『인내상자』, 덴도 아라타의 『가족 사냥』, 마쓰모토 세이초의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10만 분의 1의 우연』, 『범죄자의 탄생』, 『현란한 유리』, 우부카타 도우의 『천지명찰』, 구마가이 다쓰야의 『어느 포수 이야기』, 모리 히로시의 『작가의 수지』, 하세 사토시의 『당신을 위한 소설』, 가지야마 도시유키의 『고서 수집가의 기이한 책 이야기』, 도바시 아키히로의 『굴하지 말고 달려라』, 사이조 나카의 『오늘은 뭘 만들까 과자점』, 『마음을 조종하는 고양이』, 하타케나카 메구미의 『요괴를 빌려드립니다』, 아사이 마카테의 『야채에 미쳐서』, 『연가』, 미나미 교코의 『사일런트 브레스』, 기리노 나쓰오의 『일몰의 저편』, 하라다 마하의 『총리의 남편』, 안도 유스케의 『책의 엔딩 크레딧』, 고이케 마리코의 『이형의 것들』, 오타니 아키라의 『바바야가의 밤』, 미치오 슈스케의 『N』, 아라키 아카네의 『세상 끝의 살인』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