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만나는 사이입니다. 우리는 계획대로 결혼만 하면 되는 겁니다.” “쇼윈도 부부를 말하는 건가요?” “잘 이해하셨네요.” 다른 여자와의 밀애 현장을 들키고도 당당하게 서로의 이익을 위한 정략결혼임을 내세워 쇼윈도 부부를 제의하는 태현. 상처받은 주은은 파혼하고 싶지만 가족들의 기대와 강요에 점점 무너져간다. “결혼할 거라는 그 남자 말고, 애인 있어요?” “없어요.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요?” “그 애인 자리에 지원하고 싶어서요.” 어느 날 주은에게 나타난 동생의 선배 시우. 지친 그녀를 위해서 기꺼이 언제든 손 내밀어 주는 그로 인해 한 번도 갖지 못했던 따스함이 충족되었다. 외롭고 텅 빈 마음을 채워주는 그의 온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 생전 처음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주은. 우리의 끝은 어디일까? [본문 내용 중에서] “난, 너한테 야한 꽃일까?” 주은이 멍한 눈으로 시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야한 꽃이죠. 매순간마다 사람 미치게 만드는.” 시우의 목소리가 한결 낮아졌다. 순간 공기가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온몸을 누르는 무게를 느끼며 주은은 시우를 바라보았다. 아주 멀리 서서 마주 보는 기분이기도 했고, 바짝 가까이 붙어서 있는 기분이기도 했다. 마치 오래전에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었던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분위기 탓일까, 입술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럼 꺾어봐, 지금 당장.”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가 말뜻을 헤아리려는 듯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주은이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시우가 몸을 일으킨 것은, 그보다도 몇 초가 흐른 후였다. 그는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일어나 한 손으로 테이블을 짚었다. 다른 한 손으로 주은의 턱을 거머쥐었다. 고개가 살짝 들리자 그의 얼굴이 점점 다가오는 게 보였다. 주은은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나른하게 감기는 것도, 입술이 야하게 반쯤 벌어지는 것도, 그 속의 붉은 혀까지도 슬로 모션을 건 것처럼 또렷하게 보였다. 마침내 느릿하게 다가오던 입술이 닿았다. 아. 주은이 속으로 낮게 탄성했다. 방금 전 함께 마시던 와인 향이 훅 밀려들어왔다.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는 혀가 부드러웠다. 술에 취한 탓인지, 현실 감각이 떨어져서 그런 건지 꿈속처럼 느껴졌다. 그의 혀가 그녀의 입안을 부드럽게 훑어 내렸다. 부드러운 점막을 쓸고 갈 때마다 온몸에서 오소소 소름이 돋아 올랐다. 그의 손이 그녀의 뺨을 훑어 내려와 턱선을 쓸었다. 간지러우면서 야하게 느껴졌다. 순간 멍해지는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잘하는 짓일까. 왠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은 기분이었다. 그러다 누굴 위해서 참아야 하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시우의 손길은 거짓말처럼 기분이 좋았고, 그는 키스도 능숙했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주은이 손을 들어 그의 뒷목을 끌어당겼다. 어설프고 미미한 손짓이라 그는 조금도 당겨지지 않았다. 그녀의 입안을 모조리 훑은 그가 고개를 떼어냈다. 코끝을 스칠 거리에서 그가 주은을 바라보았다. 왜 끝내는 거지. 주은이 불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고요한 눈동자에서 못 견디겠다는 눈빛이 배어 나왔다. 순간 섬뜩하면서도, 등골이 아찔해지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그녀를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키스만으로 끝낼 자신이 있었어요.” 그가 그녀의 뒷목을 지분거렸다. 어디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손끝이 음푹 팬 뒷골을 지분거리는데, 묘하게 온몸이 움찔거렸다. “읏.” 주은이 저도 모르게 나지막한 숨소리를 뱉었다. “이젠 그럴 자신이 없네요.” 그의 열띤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