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은 바로 이 연애소설 장르에 속한다. 이 소설은 사교계에서 페초린이라는 주인공이 네구로바라는 여인을 이용해 사교계의 풍운아로 이름을 떨치고자 하는 음모와 그의 이루지 못한 사랑 베라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에 대한 애증, 크라신스키라는 잘생긴 공무원과의 삼각관계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은 레르몬토프가 끊임없이 사교계의 인물들과 세계를 하나의 전형으로서 보편화시켜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주인공 페초린이 네구로바를 유혹하는 것도 최초로 사교계에 등장한 신참이 세상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용하는 보편적 방식 중 하나로 해석되고, 네구로바의 삶 또한 사교계 아가씨가 노처녀가 되어 가는 보편적 과정으로 해석된다. 무도회의 인물들, 극장 앞의 인물들에 대한 캐리커처 또한 페테르부르크 사회 전체의 축소판으로써 다루어지고 있다. 즉 작가가 끊임없이 천착하는 부분은 객관성과 일반화였다.
한편 작품의 서술자는 이 지극히 낭만주의적인 인물들을 독자에게 제시하는 방법에 있어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서술자는 때로는 아주 제한적인 시점을 사용하다가도 완벽하게 전지적인 시점으로 돌아가서 서정적 일탈과 독자에게 말 걸기 등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예를 들면, 서술자인 ‘나’는 페초린이 안락의자에 앉아 얼굴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무도회 후의 심경을 자신에게 고백한 노처녀가 없어서 네구로바의 마음을 잘 알 수는 없다고 말하는 등 제한적인 관점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듯 작품은 일관성 없는 시점 변화를 필두로 연애소설적 면모와 자연파적인 수법, 낭만주의적 수법과 리얼리즘적 수법 등이 혼용되다가 중단된다. 아직 미숙했던 레르몬토프는 그가 습득하고 실험한 다양한 수법들을 어떻게 일관되게 끌고 나가야 할지 그 방법을 찾지 못한 듯하다. 어쨌든 이 작품은 주인공들의 형상을 객관적 관찰의 결과로써 구축하고자 하는 리얼리즘적 서술 기법을 러시아 문학사상 최초로 시도한 작품이라는 데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