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의 없음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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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감수성과 언어로 독자적인 소설세계를 일구며 한국문학의 지평을 넓혀온 작가 배수아가 4년 만에 새 소설집을 내놓았다. 지금까지보다 더 밀도 높은 문장, 더 생생한 감각, 더 탄탄한 구성이 읽는이를 낯선 꿈속으로 이끌어 불현듯 그 아름다움에 취하게 한다.





꿈처럼 다가오는 낯선 호흡





벌써 등단 17년, 그동안 6권의 소설집과 12권의 장편소설을 쉬지 않고 펴내는 내내 배수아라는 이름은 늘 한국문학의 이방(異邦)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형식과 전통적인 작법을 따르는 대신 그는 늘 스스로의 영혼이 체득한 것만을 쓰고 스스로의 영혼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나아갔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행보는 늘 일반의 범속한 이해를 넘어서는 독자적인 성취를 보여주었고, 그에게 열광하는 일군의 독자층을 만들어왔다. 지난 소설집으로부터 4년, 그간의 그의 행보와 함께 그 성취가 집결된 단단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풍성한 작품들이 이번 소설집 『올빼미의 없음』에 담겼다.



2000년대 이후 그는 선명하고 일관된 서사를 해체하면서 언어와 정신에 대한 탐색을 한층 진전시키고 꿈과 환상의 요소를 크게 도입하는 중요한 형식상의 혁신을 보여주었다. 그럼으로써 그의 작품들은 감각적이고 독특한 소수자적인 취향에 그치지 않는, 심미적이고 정신주의적인 단독자라 할 만한 자아를 발견하는 데 바쳐져왔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양의 첫눈」이나 「북역」 같은 작품에 그러한 지향이 담겨 있다. 「양의 첫눈」은 오래전의 여자친구로부터 그를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받은 주인공 ‘양’이 그녀가 방문하기까지의 시간 동안 한 남녀의 모습을 엿보며 과거에 그가 만났던 이들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 기억을 통해 절대적이고 배타적이고 고립적인 대상에 이끌리는 그의 무의식적인 감수성의 세계가 마치 백일몽과도 같은 아련한 풍경으로 펼쳐진다.



그런가 하면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에서는 꿈과 환상의 시공간이 현실에 중첩되고 기억이 주체를 옮겨다니는 기이한 전이가 일어나기도 하며, 지난 장편 『북쪽 거실』과 같은 선상에 놓일 「밤이 염세적이다」 같은 작품에서는 나아가 꿈과 환상, 또는 진술 자체가 서사를 완전히 압도하며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그의 소설이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 뿐 아니라 난해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지만, 그런 그만의 언어의 숲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체험을 잠시 견디는 이들에게 어느 순간 눈부신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또한 그의 소설이다.





“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





꿈, 기억, 환상 등 몽환의 세계를 소설화하는 데 관심을 두었던 소설들을 지나, 「올빼미」를 포함해 근작 「올빼미의 없음」 「무종」 같은 작품에서는 이러한 꿈과 환상의 요소가 글쓰기 또는 문학에 대한 사변과 결합하고 서사의 조각들과 맞물려 절묘하게 배치됨으로써 독특하고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올빼미」는 주인공 ‘나’가 비평가인 ‘너’와 꿈과 글쓰기에 관해 나누는 대화와 서신, ‘나’가 연애감정을 느꼈던 ‘첫번째 작가’와 ‘두번째 작가’의 기억, 첫번째 작가와의 교유 등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소설로, 이 가운데 꿈을 통해 펼쳐지는 여러 상징과 암시가 서사와 사변의 단편들을 관통한다. 이어 이 단편의 속편격으로 발표 당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던 「올빼미의 없음」은 ‘너’(외르그)의 죽음을 맞닥뜨린 ‘나’의 죽음에 대한 사색과 애도가 주된 줄기를 이룬다.




듣고 있는가 베르너, 늘 그렇듯이 나는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맞은편에서 홀연히 솟아나는 지옥의 정원을 보았고, 사람들은 나에게 외르그가 죽었다고 말하며, 외르그는 이제 앞으로 영원히 없게 되는데, 이 없음이란 무엇인가, 없음이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리고 없음이란 도대체 왜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비탄에 잠긴 ‘나’의 어조는 격렬하고 절절하며,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러나 더 나아가 소설 곳곳에 정교하게 배치된 죽음의 암시와 꿈과 문학에 관한 사색은 이 작품에서 죽음마저 아우르는 문학에 대한 열망을 읽게 한다. “대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것뿐이었으므로. 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



그리고 그는 쓴다.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이 작품들에서 ‘문학적 아버지’와의 결별을 겪은 그는 한발 더 걸어나가 「무종」에서 더욱 새로운 글쓰기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는 꿈과 죽음과 글쓰기에 대한 사변적인 논의가 없는 대신 그런 주제들을 각각의 특성에 맞게 구현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무의식과 접경지대를 파고드는 배수아의 끈질긴 실험이 여기서 어떤 경지에 이르렀음을 실감할 수 있다”(한기욱 ‘해설’)는 평이 그 점을 명쾌하게 말해준다. 낯선 밤 모형비행기 수집가와 함께 무종의 탑을 찾아가는 이야기에 이어 ‘나’가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셋방을 구하러 다닌 기억이 이어지고, 그러는 동안 어느새 현실과 꿈이 분간할 수 없이 한몸이 된다. 여기에 죽음의 암시들과 더불어 기억과 문학에 대한 빛나는 에피쏘드들이 연결되고, 마침내 소설의 마지막에 진술되는 꿈이 처음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대목에서 모든 것이 꿈속의 한마디로 수렴되는 시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중단없는 그의 행보가 가장 최근에 이른 경지가 이곳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이 그의 문장이다. 존재의 심층에서 비롯한 사색과 낯설고도 생생한 감각이 결합되어 때로 한 페이지씩 이어지면서도 유려함과 밀도를 잃지 않는 그 긴 호흡의 복문은 서사나 인물이 아니라 문장 자체가 소설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희소한 사례들 가운데 하나이자, 분명 우리 문학의 중요한 자산이다. “어떻게 이렇게 무뚝뚝하게 아름다우며, 아무렇게나 내뱉는다는 태도로 유려한 문장을 쓰는 걸까요”(은희경 「문장배달」)라는 찬사 그대로다. 또는 “이처럼 꿈의 호흡과 어법을 닮은 긴 복문의 문장을 한순간도 미적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한 페이지 이상씩 끌고나갈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한기욱) 이렇게, 그가 한참을 탐구하고 실험해온 꿈의 세계는 어느덧 그의 육체가 되었다. 앞으로도 역시 그가 몰두하는 모든 것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는 계속 쓸 것이고, 우리는 다만 그가 다다를 미지의 장소를 궁금해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Changbi Publishers

About the author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소설과사상』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바람인형』 『심야통신』 『그 사람의 첫사랑』 『훌』, 장편소설 『랩소디 인 블루』 『부주의한 사랑』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붉은 손 클럽』 『동물원 킨트』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에세이스트의 책상』 『독학자』 『당나귀들』 『북쪽 거실』, 산문집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나의 첫 번째 티셔츠』 『불안의 꽃』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동서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월요일 독서클럽’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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