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자의 바람을 목격한 날
약혼도 파기되고 제집도 홀랑 빼앗긴 스피카.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던 중,
투구를 쓴 이상한 남자……
아니, 여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상관 알카이드를 만난다.
한데 제 사연을 들은 그가
다정해도 너무 다정하다.
“울고 싶은데 투구 좀 빌려주세요.”
“예, 여기.”
농담에도 선뜻 여분 투구를 빌려주는가 하면
“얼른 집 구해서 나갈게요.”
“1년쯤 지내도 괜찮습니다.”
제 호텔 방도 내어 주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도와드릴게요.”
“나한테만 하십시오. 그런 약속.”
제 가벼운 입까지 걱정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 은총 덕인지 예쁜 신축 집도 우연히 구해
이사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읏, 후우…….”
옆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
“저는…… 단장님 좋아하는 것 같아요.”
스피카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알카이드와 멀어지고 싶지도, 그의 다정함을 잃고 싶지도 않았다. 자의식 과잉이 아니라 진짜로 알카이드의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좋아해요. 그냥 부관으로 있고 싶지 않…….”
스피카의 말이 뚝 끊겼다. 알카이드가 인내심을 끊으려 작정한 듯한 입술을 지그시 누른 탓이었다. 말랑한 살점이 아프지 않게 이지러지며 붉은기가 더해졌다.
두 사람의 거리는 가까웠다. 서로에게 점점 다가선 결과였다.
알카이드가 허리를 조금만 굽히면, 손가락이 아니라 그녀의 입술을 빨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거리.
“스피카. 수인에게 밤은 자제력이 사라지는 시간입니다.”
알카이드는 들끓는 탐심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