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은 하지 못한다고 해도 남자랑 잠은 자 보고 싶어! 그러니까 올리비아가 원하는 것은 ‘결혼’이 아니라 ‘결혼을 통해서만 획득 가능한 경험’이었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비비안 베넷’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애정 소설 작가, 올리비아 제닝스는 결혼은 이미 물 건너간 듯한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그럭저럭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결혼을 포기했다고 남자랑 잠도 자 보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지금보다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자신도 그 ‘특별한 경험’이란 걸 해보고 싶다. 여자라고 안 될 게 뭐람? 그 경험으로 자신의 글도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올리비아는 평소 자신이 아끼던 대여 서점을 이용해 적당한 남자를 찾기로 한다. 비비안 베넷의 애정 소설을 빌려 가는 남자 손님 중에서 상대를 고르는 것이 바로 그 방법. 적어도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에 공감할 수 있고,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는 남자라면 ‘아무나’는 아니겠지. — 미쳤습니까? 당장 그 말도 안 되는 계획은 접어요. 신뢰할 만한 이성을 가진 사람의 충고는 새겨듣는 편이 좋습니다. 그런데 웬걸? 참견쟁이 신사한테 잘못 걸리는 바람에 시작부터 차질이 생겼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알아야겠으니까요. 그게 도대체 어떤 느낌이고, 어떤 경험인지.” “좀 더 정상적인 방법으론 안 되겠습니까?” “여자도 자신에게 맞는 남잘 직접 고를 수 있어야 한다고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걸로 대체 뭘 알 수 있습니까?” 여자는 다른 한쪽 손을 마저 리처드의 목에 감아 둘렀다. 리처드의 울대가 눈에 띄게 일렁였다. “내 계획을 방해하는 참견쟁이가 쓸데없이 잘생기고 근사한 남자라는 것도, 그 남자가 넓은 어깨와 멋진 가슴을 가졌다는 것도 벌써 알았잖아요. 더 버티다 보면 다른 것도 알게 될지 모르죠. 이래도 아니라고만 할 건가요?” *** “…만져 봐도 되나요?” 여자의 눈은 리처드의 가슴팍을 향해 있었다. 만져 봐도 되냐니. 이미 반쯤 그러고 있는 것 같지만 리처드는 따져 묻지 않았다. 그즈음 리처드는 이 여자가 이 해괴망측한 일을 벌인 까닭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요한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얼굴, 탐구심과 욕망이 반쯤 섞여 일렁이는 눈동자 따위가 질릴 만큼 익숙한 탓이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결국― “…왜요? 그것도 책에 쓸 겁니까?” 여자의 푸른 시선이 옅게 흔들리는 것을, 리처드는 놓치지 않았다. 그대로 한숨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뭐, 쓸 만하면요.” 허. 기어코 터져 나온 한숨과 함께 리처드는 들고 있던 쪽지를 빼앗기고 말았다. 잠시 넋을 놓은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싫음 여기서 관두고요.” “이봐요.” “난 그쪽 여동생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쓸데없는 잔소리나 하려거든 돌아가요. 보호자 같은 건 바란 적도 없으니.” 그렇게 그 남자와도 끝인 줄 알았는데… 대체 이 잘생긴 참견쟁이는 왜 자꾸 내 앞에 나타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