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애초에 5살짜리가 결혼하잔다고 냅다 받아들이면 어떻게 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렌은 갑자기 황제와 자주 마주치게 된다. 아무리 봐도 황제가 저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피하려 들지만 가족들, 하인들, 주위 사람들을 막론하고 이렌의 앞길을 막아 황제와 엮으려 한다. 황제의 수작질과 주위의 계략 속에서 혼자 트루먼 쇼를 찍는 백작가 차남 이렌과 그 수작질과 음모의 한가운데에서 이렌만을 보며 화사하게 웃는, 짝사랑에 미친 황제 에리히의 이야기. *** “내 편지는 잘 받았어? 연락이 없어서 걱정했어. 원탁의 궁에는 웬일이야? 나 보러 왔어?” ……물 없이 딱딱한 비스킷을 열 개는 먹은 기분인데. 눈앞에서 황제의 긴 금색 속눈썹과 금실 같은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보석처럼 찬란한 눈이 사랑을 듬뿍 담아 반짝거렸다. 이렌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지만, 황제는 냉큼 이렌의 양손을 꼭 잡았다. “자, 잠깐 볼일을 보는 사이에 아버지께서 일이 있다 하셔서 따라왔습니다. 폐하께서는…….” “잠깐 화초 좀 심다 왔어.” 주물럭주물럭. 폐하의 취미가 원예셨나? 그리고 폐하, 손 좀 놔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안경을 끼시고요?” “요즘 눈이 안 좋아졌나 봐. 밤늦게까지 서류를 봤더니……. 내 눈, 빨갛지 않아?” 그러면서 제 눈을 보라며 얼굴을 들이댄다. 그 와중에도 이렌의 손은 에리히에게 잡혀 밀가루처럼 조물조물 반죽되었다. 폐하, 폐하의 눈은 원래 빨간색입니다. 그러나 이렌에게는 솔직하게 말할 용기도, 그 뒷감당을 할 힘도 없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닌 척, 모르는 척 해맑게 웃으며 호의를 가진 척하는 것뿐이다. “오늘도 여전히 아름다우신 걸요. 괜한 걱정이십니다.” “정말?” “예, 정말요. 하지만 밤에 일을 하시는 건 건강에 좋지 않으니 조금 자제하시는 편이 좋으실 것 같습니다.” 이렌은 할 수 있는 한 밝게 웃었다. 힘겹게 올린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먹힐까 싶을 정도로 작위적인 웃음이었지만, 이미 눈에 콩깍지와 이렌이 끼다 못해 합성된 에리히에게는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이렌은 의학을 공부했어도 어울렸을 거야. 그럼 내 주치의로 임명했을 텐데.” 주치의가 들었다면 당장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귀향할 말이었다. 이렌은 빙그레 웃으며 속으로는 열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의학 공부 안 해서 정말 다행이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안에 들어가서 차라도 마시자. 괜찮지?” “……네.” 집에 가면 안 될까요? 빙그레 웃는 이렌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지만, 에리히는 모르는 척 이렌의 손을 잡아끌어 원탁의 궁 안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