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이 퇴근하자. 일단은 열심히 일부터 하고.” “......네.” 얼굴을 가까이 하고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말. 목덜미의 가는 솜털이 그의 음성에 반응하며 곤두섰다. “그 전에 맛만 좀.” 뺨도 아니고, 입술도 아닌 귀와 목덜미의 경계에 그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독이 강한 버섯일수록 화려하고 예쁘다고 들었다. 권강현은 그녀에게 독이 될 것 같다는 무서운 예감이 스쳤다. 관상용이야, 관상용. 그러니까 가만히 보기만 하고 손대지는 마. 욕심을 내는 순간 뾰족한 가시를 숨긴 장미보다 더 널 아프게 찌를 사람이니까. * * * 아프다.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분했다. 뇌수가 말라 버릴 것처럼. 그래도 참아 내야 한다. 이 분노와 수모를 온전히 내보일 수가 없는 것은 그의 마지막 자존심 탓이다. “한 사람에게만은......, 제가 살아 있음을 알리게 해 주십시오.” 말뿐인 가족은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여자는 도저히 놓을 수 없었다. 그를 따뜻하게 안아 주던 그 여자에게 자신의 죽음이 알려진다면....... 욕심껏 가져요. 다 줄게. 그러니까 내 눈 앞에서 제발 사라지지만 마. 뾰족한 가시에 찔려도 절대 떨어지지 않을 테니......, 내 옆에 있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