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기존의 곡조에 맞추어 써넣은 일종의 대중가요 가사로, 시문을 중시하는 정통 문인들에게 천시당하는 경향이 많았다. 소동파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의 문집이나 시집에 사는 수록되어 있지 않았으나 소동파의 사는 시문 못지않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이 인정되어 별도의 사집이 간행되었다.
사는 대개 보편적인 감정을 노래해 제목을 따로 붙이지 않아도 작품 이해에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곡조의 이름, 즉 사패(詞牌)를 작품의 명칭으로 삼았는데 소동파는 그의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 사를 지었으므로 사의 제목을 따로 붙일 필요가 있었다. 그로부터 사에 제목을 붙이는 기풍이 생겼으니 이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소동파의 공로라 하겠다.
중국문학사에서 시를 짓듯이 사를 짓는 이러한 소동파의 작사 태도를 ‘이시위사(以詩爲詞)’라고 불렀다.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동파는 불가피하게 사를 지으며 사의 음악적 측면을 경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소동파가 나와서 호방파(豪放派)를 엶으로써 사가 쇠퇴하고 말았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 지식인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감정을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를 서정시의 대열에 올려놓았다는 것이 소동파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다. 곡조가 없어진 지 오래인 오늘날까지도 많은 중국 지식인들이 사의 창작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다 소동파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책은 현존하는 소동파의 사 작품 약 350수 가운데 대표적인 것 64수를 선정해 역주한 것이다. 엄선된 작품을 여섯 개의 범주로 나누고 다시 창작 시기순으로 배열했다. 서울대 명예교수로 있는 역자 류종목이 원작을 충실하면서도 역문으로도 한 편의 작품이 될 수 있도록 글자 수. 압운 등과 같은 역문의 시적 운율도 최대한으로 고려해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