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Turning)

송민선

May 2015 · 에피루스

About this ebook

에피루스 베스트 로맨스 소설! "“너 이러면 나 아무것도 손에 안 잡혀.” 낮고 차분한 음성이 귓전을 울렸다. 저도 모르게 준영은 불퉁한 목소리를 냈다. “무시하면 되잖아.” “이준영. 넌 날 무시할 수 있어?” 딱딱하게 묻는 태겸의 음성에 준영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묘한 공기가 둘 사이로 물처럼 스몄다. 숨 쉬는 것조차 부자연스러워졌다. 태겸이 머리를 박박 긁으며 말했다. “나 때문인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뭔지 알 수가 없어.” 얼굴을 잔뜩 구긴 준영은 태겸을 하염없이 내려다봤다. 이 녀석, 어디 가서 여자 심장 무리 주기 특강이라도 들은 걸까. 나오는 말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그러다 준영도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으며 태겸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너 때문 아니야. 나 때문이지.” “혹시 요즘 유행하는 분노조절장애?” “이게 환자로 만드네. 아니거든.” 준영은 피식 웃었다. 또 이렇게 태겸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이번엔 진짜로 태겸을 향한 마음을 접었다가도 녀석이 이렇게 나올 때면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먼저 일어선 태겸이 준영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혹시 옷에 먼지가 묻었는지 꼼꼼히 살피기까지 한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던 준영이 얼굴을 위로 쳐들었다. 햇살이 아리게 눈을 찔렀다. 그때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태겸이 준영의 얼굴 위에 손차양을 만들어 햇살을 가려 주었다. “다신 그러지 마.” “알았어.” “전화 꼬박꼬박 받고.” “명령 받들겠습니다.” 준영이 장난스럽게 거수를 하자 그제야 태겸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남자는 잘 만나 봐. 괜찮아 보이던데, 또 헤어지지 말고.” 잘 나가다가 꼭 삼천포로 빠지지. 순간 울컥한 준영은 이실직고했다. “만나는 남자 아니야. 고객이야.” “아. 그래?” “넌 내가 남자 없으면 안 되는 여자인 줄 알아?” “또 화낸다.” “네가 자꾸 사람 속을 긁으니까 그렇지.” 너를 잊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남자를 만난다고, 이 바보야! “대부분 네 옆에 남자가 있었으니까.” “누가 들으면 내가 꽤나 남자를 후리는 여자로 알겠다.” 둘은 준영의 회사를 향해 걸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태겸은 어떤 골똘한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침묵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떠들어대던 준영은 혀가 꼬인 것도 아닌데 얼떨결에 본심을 드러냈다. “네가 옆자리 채워 주던가.” “내가?” 묘하게 여운이 담긴 준영의 말에 태겸은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그녀를 담은 까만 눈동자가 흔들렸다. 천지가 개벽해도 솜털 하나 흔들리지 않을 태겸이 웬일로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넋 나간 얼굴로 태겸이 바라보자 준영은 시큰둥하게 나갔다.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다는 듯이. “응. 네가 해주면 좋겠어. 이제 남자 사귀는 것도 귀찮아서. 그러다가 또 차일 게 분명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같이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가 줘.” “지금도 하고 있잖아.” “어우, 답답해. 남자로 말이야!” 드디어 고백했다. 눈치 없는 한태겸은 과연 알아들었을까? 그게 문제였다.

About the author

송민선 여름이 싫어 겨울을 좋아해, 또 다른 이름 [알래스카]로 활동 중. 편애(偏愛) http://cafe.naver.com/oneromance 저서 레몬 달빛 속을 걷다 704호의 그 남자 내 사랑 울보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