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마셔.”
목소리에 배어나는 특유의 강압성…. 이건 분명 리건의 목소리였다.
‘나는 분명히 재준과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리건이 다중 인격일지도 모른다는 걸, 충분히 예상하고 이 집에 왔다.
그런데도 막상 눈앞에 닥치니 믿을 수가 없었다.
“재…준씨…?”
감각 잃은 목구멍으로 간신히 끄집어 올린 이름은 ‘리건’이 아닌 ‘재준’이었다. 믿을 수가 없어 차마 그 이름이 쉽게 꺼내지지 않았다.
다물려 있던 그의 입매가 미세하게 비틀렸다. 집어삼킬 듯 저를 곧게 직시하고 있던 그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백설아….”
붉은 입술을 타고 제 이름이 불렸다. 위험한 목소리가 선득하게 가슴을 찍어 눌렀다.
‘아닌 거 알잖아.’
설아의 몸이 순간 휘청했다. 몸이 흔들리는 것인지 공간이 흔들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정말…리건이에요?”
타들어 가는 목청에서 그 이름이 소환된 순간, 무언가가 온몸에서 역류하듯 울컥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를 울컥하게 한 당사자는 냉소적이리만치 담담했다.
설아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벌어진 입술로 말아 문 숨이 오도 가도 못했다.
한때 모든 걸 바쳐 사랑했던 남자가 눈앞에 되돌아와 있었다.
그것도 내 남편감이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