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이런 포박을 풀어 주고 싶어.” “나는 묶여 있지 않아요.” “갇혀 있지. 나 때문이야. 꼭 자유롭게 해 줄게.” 크리스는 의아한 얼굴로 옐디스를 올려다보았다. ‘자유롭게 해 주겠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확실히 여기에 가두어 둔 사람은 대공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나라의 풍습이 아닌 걸까? “왜 당신 때문인가요?” “루제로는 너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싶은 거겠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밝혀내겠어.” 비밀이라면 있다. 크리스가 사실은 클라리스 공주의 대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게다가 만조니 국에서 보낸 스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대공이 크리스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크리스의 뇌리에 먼저 레링크 국으로 향하던 뮐러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나라는 대공이 정사를 주도하고 있다. 뮐러에 관해서도 그럴 것이다. 만약 그 뮐러가 크리스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그래서 크리스가 대공을 탐색하지 못하도록 방에 가두고 있는 것이다. 탐색하면 곤란한 일...... 예를 들면 관세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일이나, 그 밖에도 많은 계획이 있을지도 모른다. 크리스는 오싹했다. 그 사실을 옐디스에게 말해야 할까? 만약 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 생각이 없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크리스의 역할이 끝나 버린다면 어쩔 수 없다. 크리스는 옐디스가 괴로워하는 것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뮐러가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시집온 날에 굉장히 서둘러 레링크 국으로 돌아갔으니까요.” “뮐러가?” “레링크는 대공이 다스리고 있잖아요. 뮐러의 보고도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대공이 아닐까요?” “그렇군...... 하지만 왜 뮐러를?” “제가 갇혀 있는 이유일지도 모르니까요.” 옐디스는 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겼다. “알았어. 뮐러의 신변을 캘게. 어쩌면 루제로의 약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 루제로가 왜 너를 가두고 있는지 이유를 알지도 몰라.” “그래요. 저는 이 방에서 앨리슨과 함께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마치 성 안을 보여 주기 싫어하는 것 같아요. 제가 당신이나 국왕님과 만나는 것도 꺼려하는 것 같고요.” 옐디스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 나도 국왕이나 네 방에는 결코 가까이 갈 수 없어. 가는 곳마다 병사가 복도를 가로막으니까. 아바마마를 보지 못한 지 5년이 지났어. 그런데 루제로와는 만나서 얘기를 해. 뭔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아바마마는 뭔가 사정이 있어서 나를 만나지 못하는 거야.” “꼭 대공의 비밀을 밝혀 줘요! 어서 뮐러를 추궁해요! 국왕님을 대공에게서 구해 줘요!” 그 대신 크리스의 비밀이 밝혀진다. 그래도 옐디스의 도움이 되고 싶었다. “알았어. 크리스, 부디 밤에 얘기한 것을 낮에 묻지 말아 줘. 루제로가 눈을 번뜩이고 있으니까. 물으면 곤란한 것투성이야. 그러면 오늘 밤은 이만 자도록 해, 귀여운 크리스.” “잘 자요.” 옐디스가 일어서서 크리스에게 키스했다. 크리스도 어설프게 응했다. “다음에는 더 기분 좋게 해 줄게.” 그 말은 조금 무서웠지만, 크리스는 쑥스럽게 웃었다. 옐디스는 창문에 늘어뜨린 로프를 타고 정원으로 내려갔다. 크리스는 그의 모습이 밤의 정적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