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에 헤어진 첫사랑놈이 쭉빵걸과 나타났다. 왜, 왜 하필 지금이냐고! 살면서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은 어떤 때일까. 방금 나간 재준처럼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서 겨우 사고를 면하고 시원해진 순간 화장지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아님, 수영장에서 폼 나게 다이빙했는데 물속에서 아랫도리가 허전할 때? 그것도 아니면 소개팅 자리에서 똥배의 저항을 견디지 못한 바지 단추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올라 상대의 음료수 컵으로 투신했을 때? 아니다. 그 어떤 상황보다 당황스럽고 비참하기까지 한 건 바로 지금이다. 비비크림을 발랐어도 다크써클이 안 가려지는, 서른 살 먹은 여자 앞에 근사하게 차려입은 첫사랑이 떡 나타났을 때. 그리고 그 남자 뒤에 세련미 넘치는 쭉빵걸이 도도한 얼굴로 서 있을 때. “여운이?” 게다가 그 남자가 이 몰골을 보고도 나를 알아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