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비밀

· 더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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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기 있는 게 불편하신가 봐요. 어서 내쫓으려고 하는 거 보니까.” “편하진 않죠.” “저랑은 반대네요.” “그쪽은, 이 상황이 편하세요?” “네.” “…….” “좋기까지 한데요.” 복잡한 가정사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다연은 그 상처로 인해 모든 이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외롭지만 평범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 그녀 앞에 불쑥 나타난 남자 서준. 동생이 저지른 사고로 어쩔 수 없이 같이 살게 된 서준이 자꾸만 다가오자 다연은 경계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자꾸 빠져들게 된다. 한편 불행했던 어린 시절 자신에게 힘이 되어 준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지금까지 버텨온 서준. 그에게 있어 그 사람은 삶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로 마음을 닫고 살아가는 그녀 앞에 나타난 그의 숨겨진 비밀! 비밀은 두 사람의 접점이 되어 서로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게 된다. [본문 내용 중에서] “분명 묻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확실히 취했는지 다연이 꼬인 목소리로 물었다. “물어봐요.” 서준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잠시 눈을 반쯤 뜬 채 서준을 바라보던 다연이 따라 웃었다. 분명 문이 닫혀 있는데 바람이 부는 듯했다. 가슴으로, 머릿속으로, 손끝으로. 잠시 눈을 감았다 뜬 다연은 집 안이 과거의 놀이터로 변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서준은 어릴 적의 모습, 제 다친 마음을 닮았던 아이로 변해 있었다. “잘 지냈어?” 다연의 다정한 목소리에 서준의 표정이 일순 느슨해졌다. 생각지 못한 곳을 급습당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미 과거로 돌아간 듯 다연은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준은 아주 한참만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잘 지냈어요. 아주 잘 지내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잘 지냈어요.” 서준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다연이 좀 더 환하게 웃었다. “다행이다. 간절히 바랐거든. 부디 네가 덜 아프고, 덜 괴로운 삶을 살기를. 그래서 다음에 만났을 때는 그렇게 아픈 모습이지 않기를.” “…….” “너의 행복을 내 행복만큼이나 빌었던 때가 있었다면 믿어 줄래?” 다연은 여전히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따스한 눈동자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은 그 순간 그 말을 간절하게 믿고 싶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오래도록 빌어 주었다는 그 사실을. 서준의 가슴 위로 수많은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가 사아아 소리를 내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때 해 주지 못한 말이 있었어.” 다연이 고개를 비스듬히 꺾은 채 말을 꺼냈다. “네 탓이 아니야. 네가 겪는, 그리고 또 겪을 그 수많은 아픔들, 그건 네 탓이 아니야. 그 말을 못 해 준 게 늘 마음에 걸렸어. 정말로 네 탓이 아니야.”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정도로 다연은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만 반복했다. 아마도 스스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하는 말일 거라고 서준은 짐작할 뿐이었다. 연거푸 중얼거리던 다연의 고개가 스르륵 옆으로 기울었다. 서준은 재빠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고개를 받아 들었다. 자신의 손에 다 들어오는 자그마한 얼굴을 서준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연은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서준은 다연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들었다. 서준은 최대한 자신의 몸이 흔들리지 않게 조심해서 다연의 방으로 향했다. 반쯤 열려 있는 다연의 방으로 들어간 서준은 그녀를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다연이 다형에게 그러했듯, 서준 또한 다연의 몸 위로 이불을 꼼꼼하게 덮어 주었다. 그러고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서준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잠든 다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손을 당차게 잡아당기던 소녀는 이제 자신의 품에 폭 안기도록 작다. 다시 가슴에서 파도가 친다. 과거가 밀려오고, 감정이 거품처럼 부풀었다가 흔적도 없이 쓸려 나간다. 다연을 바라보는 서준의 표정이 애틋하게 변했다. “이렇게까지 만들어 놓는 건, 위험하잖아요.”

About the author

필명: 어둠속양초 (이채영) 아직도 쓸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사람 이북 출간작: 〈지금 이 순간〉, 〈그들의 전쟁〉, 〈스타일리스트〉, 〈바람둥이와 바람둥이〉, 〈사소한 로맨스〉 종이책 출간작: 〈스타일리스트〉, 〈사소한 로맨스〉, 〈바람둥이와 바람둥이>, 〈물들다〉, 〈그저 사랑〉 출간 예정작: 〈살랑살랑, 네가 분다〉, 〈완벽한 계약(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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