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괴테가 ‘가슴의 피를 먹여 탄생시킨 작품’
삶에 고뇌하는 모든 청춘에게 바치는 자유와 젊음, 사랑의 기록
괴테가 스물다섯살에 발표한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간 비운의 사랑과 자신의 쓰라린 실연이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청년 괴테는 법관 시보로 근무하던 중 샤를로테 부프라는 여성을 만나 첫눈에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임을 느끼지만, 그녀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몸이었고 절망감을 이기지 못한 괴테는 수습 근무를 중단하고 낙향한다. 고향으로 돌아와 실연의 아픔을 달래던 차에 결혼한 여성을 사랑한 친구의 자살 소식을 접한 괴테는 죽음의 충동과 싸워가며 4주 만에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완성한다. “나는 몽유병자처럼 거의 무의식중에 써내려갔다. 작품을 통해 폭풍우처럼 격렬한 격정에서 구제되었고, 일생일대의 고해를 하고 난 후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처럼 괴테에게 이 작품은 실연의 고통과 치명적인 격정으로부터 벗어나는 치유를 의미하기도 했다. 절대적 사랑을 희구하는 순수한 영혼과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이자,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는 예리한 지성을 지닌 청년의 영원한 상징, 베르터. 베르터의 자아실현 욕구는 감성과 이성의 전면적 발현을 통해 전인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갈구하던 당대 청년들의 집단적 열망을 대변했고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왔다. 베르터 씬드롬을 일으키며 당시 유럽인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이 작품은 전인적 이상을 추구한 ‘질풍노도(슈투름 운트 드랑)’ 문학운동의 구심 역할을 했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작가들에게 찬탄과 매력의 대상이 되어왔다. 서구문학사 최초로 ‘세계문학’의 반열에 오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시대를 뛰어넘어 삶에 고뇌하는 모든 청춘에게 여전한 울림을 주는 명실상부한 고전이다.
엄정한 번역으로 새롭게 만나는 불멸의 고전
그간 꾸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독일어 본래 발음과 동떨어진 ‘베르테르’라는 잘못된 표기가 여전히 통용되어왔다. 그러나 오늘날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널리 읽힐 고전인 까닭에 새 번역을 내놓으며 원어의 발음에 가까운 ‘베르터’로 바로잡았다. 제목 역시 그간 널리 알려진 ‘슬픔’ 대신 ‘젊은 베르터의 고뇌’로 옮겼는데, ‘슬픔’이라는 단어는 주인공을 죽음으로 몰아간 처절한 감정을 담아내기에 다소 부족하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사랑에서 비롯된 괴로움 말고도 신분차별에서 오는 모멸감, 갑갑한 사회환경에서 오는 권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을 고려하여 ‘고뇌’를 번역어로 선택했다. 원제에 쓰인 독일어 단어 ‘Leiden’이 복수형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며, 사전적인 의미 역시 ‘슬픔’보다는 ‘고뇌, 고통, 괴로움, 수난’ 등을 가리킨다.
가장 적확한 번역을 찾기 위한 노력은 본문에서도 두드러지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편지글의 번역 문체이다. 이 작품은 편지글의 형식을 빌리고 있으나 실제로 내용의 대부분은 베르터의 독백으로 이어지며 일기처럼 쓰인 부분도 상당하다. 이 작품에서 서간체 형식은 소통이나 대화의 의미라기보다는 주인공의 내밀한 생각과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독자들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독백 효과를 주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일인칭 독백체를 살려 번역했으며, 이러한 시도를 통해 베르터의 내면 풍경을 한결 여실하게, 사뭇 새로운 느낌으로 대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그간의 낯익음보다는 낯선 엄밀함을 추구함으로써 그저 또 하나의 번역본이 아닌 진정 새로운 번역으로 세대를 거듭하며 빛을 발하고 있는 청춘의 고전을 다시 만나게 하고 있다.
‘창비세계문학’을 펴내며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이래 한국문학을 풍성하게 하고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담론을 주도해온 창비가 오직 좋은 책으로 독자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창비세계문학’을 출간했다. ‘창비세계문학’이 다른 시공간에서 우리와 닮은 삶을 만나게 해주고, 가보지 못한 길을 걷게 하며, 그 길 끝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를 소망한다. 또한 무한경쟁에 내몰린 젊은이와 청소년들에게 삶의 소중함과 기쁨을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목록을 쌓아갈수록 ‘창비세계문학’이 독자들의 사랑으로 무르익고 그 감동이 세대를 넘나들며 이어진다면 더없는 보람이겠다.
Changbi Publishers
저자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년 프랑크푸르트의 부호 집안에서 태어나 생전에 이미 독일 문학사상 최초로 세계문학의 거목으로 평가받은 대문호이다. 스물다섯살에 발표, 그의 출세작이 된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감성의 해방과 전인적 자아실현의 이상을 추구한 질풍노도 문학운동을 대표하는 서간체 소설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베르터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이 잇따르는 등 당시 유럽 전역에서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밖에 유럽 교양소설(Bildungsroman)의 효시로 평가받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그 후속편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친화력』 등의 소설을 남겼다. 죽기 직전까지 육십여년에 걸쳐 집필한 희곡 『파우스트』는 근대적 자아의 갈등과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내적 모순을 파헤친 불후의 대작이다. 시, 소설, 희곡을 통틀어 모든 장르에서 빼어난 작품을 남겼을 뿐 아니라, 이십대 후반 이후 평생 동안 바이마르 공국(公國)의 고위 관리로 재직하며 국정에 참여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또한 해부학, 식물학, 광물학, 광학 등 자연 탐구에도 몰두했는데, 뉴턴의 광학을 논파하려 연구를 거듭하고 그 결실인 『색채론』을 저술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인문학, 사회학, 자연과학의 모든 분야를 지칠 줄 모르고 탐구한 괴테는 세계문학에서 전무후무한 ‘종합적 지성’을 갖춘 작가라 할 수 있다.
역자 - 임홍배
서울대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및 훔볼트 대학에서 수학했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 『황석영 문학의 세계』(공저) 『살아 있는 김수영』(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어느 사랑의 실험』 『파우스트 박사』(공역) 『루카치 미학』(공역) 『진리와 방법』(공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