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왕은 해요, 왕비는 달이라 하였다. 밤은 달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달은 온데간데없었다. 잔뜩 흐린 하늘에 보이는 것은 구름뿐이었다. 지표면을 적시는 빗줄기가 제법 거셌다. '이 궐 안에 새로운 달은 필요 없다. 그 말이렷다?‘ 소혜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정인에게 배신을 당하고 동생을 대신해 당파의 손에 이끌려 억지 중전이 된 소혜. 그녀는 자신을 외면하는 왕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신하들의 손에 이끌려 왕이 된 사내, 경. 그는 왕비를 들이는 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힘없는 왕이었다. 그에게 왕을 쥐락펴락하고자 하는 권신들이 올린 왕비, 소혜는 당연히 싫은 여자요 경계할 여자였다. 그런데 자꾸만 그녀가 신경이 쓰였다. 그는 한 손으로 턱을 짚으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마치 내게 관심이 없는 것 같지 않은가. 어찌 이럴 수 있는 게지? 자신이 들어오겠노라 떼를 써서 온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