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우리 한 달만 좀 만납시다.” “무, 무슨 말씀인신지……. 갑자기, 아, 아니 도대체 왜 절?” “남자가 여자한테 관심 갖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 조건이 아닌, 주변이 아닌 온전히 나 하나만을 봐준 그였기에 그런 나를 처음으로 사랑해 준 그였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보잘것없는 나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진 게 없어도 당당했고 그렇기에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가 인생의 전부가 되었다. 평생을 함께 하며 지켜주고 싶었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다. 그런 그녀가 7년 만에 나타났다! 온통 상처투성이의 진, 그런 그녀를 온전히 사랑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 준혁. 길고긴 기다림 끝에 그들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본문 내용 중에서]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지? 프랑스에서도 매번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일했나?” 다른 건 다 감내하고 참아 줄 수 있었지만 그녀가 하는 일과 그녀의 능력을 비하하는 건 참을 수 없던 진이 발끈했다.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알아요? 나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 몰랐어요. 어제도 말했지만, 프랑스에서 잠깐 자문이나 해 주는 걸로 알고 왔다가 생각지도 못한.” 진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속상한 마음을 이 남자 앞에 시시콜콜 내놓아 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괜히 자신만 더 비참하고 초라해질 뿐인 것을. 뭐가 그렇게나 재미있는지 그의 입가로 스르르 미소가 배었다. 그게 약이 올라 진은 얼른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제 그 계약 건은 장 교수님 오시면 다시 얘기하죠.” “장 교수?” “다음 주에 팀원들과 같이 오실 예정이거든요.” 그의 미소가 더욱 짙어지더니 혼잣말처럼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다. “정말, 그럴까?” 그 중얼거림을 못 들은 체할 수 없던 진이 되물었다. “무슨 뜻이죠?” 준혁의 얼굴에 배었던 미소가 단박에 사라졌다. 그리곤 진이 곤란해 하던 그 문제를 순식간에 뚝딱 해결해 버렸다. “우리 그룹 게스트 하우스가 백화점 가까이 있어. 프랑스에서 온 친구들은 거기 묵게 할 거니까 괜히 쓸데없는 데 기운 빼지 마. 그리고 어제 했던 계약 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렇게 되면 그 계약 다시 해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너무 많이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건 방금 말했잖아요, 장 교수님이 오시면.” 그가 말을 잘랐다. “만일 안 오면, 그 계약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뜻인가?” 순식간에 염치없는 여자로 몰아가는 그가 괘씸해 그녀는 만용을 부렸다. “아, 아뇨. 와요. 꼭 오시기로 아까 나하고 약속했으니까.” 그가 기분 나쁘게 후후 웃으며 빈정거렸다. “약속? 나와 철석같이 했던 약속도 헌신짝처럼 내버린 여자가 타인과의 약속을 아직도 믿고 있다니, 이거 놀라운데?” 급작스럽게 다 지난 과거까지 들먹이는 준혁의 치졸함에 진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그녀를 불러들인 것이 아니라고 어제 그의 입으로 말해 놓고, 이렇듯 무방비 상태에서 그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그가 몹시 못마땅했다. 곧 프랑스에서 그녀의 동료들이 올 것이다. 그때도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진은 이참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따지듯 물었다. “일을 하자는 건가요, 아님 예전의 그 일로 날 괴롭히겠다는 건가요? 확실하게 하시죠.” 준혁은 등받이 쪽으로 등을 기대며 거드름을 피우며 작정하고 약을 올리듯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아, 이거 고민인데. 난 그 두 가지가 다 하고 싶어서 말이야. 이걸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