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외곽 산골 언저리 별장의 도련님 서희재. 그곳엔 그의 여름의 모든 순간을 훔쳐 가는 도둑이 있었다. 별장 관리인의 딸, 이차영. 그 아름다운 도둑은 기어코 희재를 그대로 집어삼켜 버린다. 그러나 희재를 무너뜨린 여자의 배신, 그리고 그렇게 맞이한 두 사람의 끝. 다시는 그녀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이차영은 뻔뻔하게도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났다. 이 거슬림을 무시할 수 없다면 네게도 똑같은 비참함을 선사하고 싶다. *** “넌 여전히 쉽네.” 그가 팔을 들어 목을 감싸고 있는 타이를 쥐었다. 미끈하게 빠진 턱이 비스듬히 기울었다. “뭐 해?” 와서 풀어야지. 그가 자신의 셔츠를 턱짓했다. 나직한 저음이 차영의 귓가에 그대로 꽂혔다. “차영아.”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 그렇게 그리웠는데. 붉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차영이 그리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고저 없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벗고 와야지.” 일그러진 그들의 여름 뒤로 선선한 바람이 찾아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