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마, 마리안. 넌 날 두고 죽을 자격이 없어.” 황제의 더러운 사생아이자 위대한 마법사로 태어난 덕분에 마리안의 삶은 오래도록 지독한 고통뿐이었다. 몰락의 길을 걷는 조국에게 떠밀려 전쟁터에서 생을 마감하지만, 수많은 생명을 죽인 업보로 10년 전으로 회귀하게 된다. [네가 죽인 것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해야 할 것이다.] 이전에는 구하지 못했던 이들을 이번에야말로 구원할 수 있는 기회. 마리안은 제일 먼저, 자신의 다정했던 친구를 떠올렸다. ‘언젠가 나도 공작이 될 거야, 마리안. 그때가 되면 내가 널 구해 줄게.’ ‘어떻게?’ ‘네게 청혼할 거야, 마리안. 드레이크 공작 부인이 돼.’ 처음으로 마리안을 지켜 주겠다고 말하던 사람. 그리고 마리안과 피를 나눈 이들이 진창으로 처박아버린, 아벨. 아벨이 노예로 전락한 지 7년째 되는 시점이었다. “기다려, 아벨. 내가 갈 테니.” 전에는 구하지 못했지만, 이번엔 아벨을 구해 낼 것이다. *** 마리안은 부서져 버릴 것처럼 위태로워 감히 함부로 할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줘?” 순수하고 착한 마리안, 이 상냥한 마음씨에 이끌려 얼마나 많은 날파리가 꼬이는지. 아벨은 그걸 생각만 해도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마리안 곁에 있는 기생충 새끼는 나 하나면 충분해.’ 하지만 괜찮다. 아벨이 지켜 주면 되니까. 아벨이 마리안의 턱을 부드럽게 쥐며 고개를 숙였다. ‘나를 찾아온 건 너야.’ 한 번 잃었던 것을 되찾은 괴물은 그걸 놓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