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을 내어주고 마는 존재, 가족
부족한 손을 맞잡고 서로의 지팡이가 되어줄 때
아픔은 용기가 되고, 미움은 연민이 된다
고독한 삶의 세목을 특유의 정교하고 단정한 문장으로 기록해온 소설가 조경란의 연작소설 『가정 사정』이 출간되었다.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관계’의 문제를 치밀하고 섬세한 문체로 다”룬다(현대문학상 심사평)는 감탄어린 평을 받아온 작가는 26년이라는 시간 동안 소설과 글쓰기를 향한 끊임없는 사랑으로 성실하게 작품을 창작해왔다.
4년 만에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이번 연작소설에는 치유되지 못한 오래된 상처를 지닌 가족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생업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마치 상처를 잊은 듯 살아가지만 문득문득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아픔을 자각하곤 한다. 조경란은 자주 어긋나고 맥연히 교차하는 그들의 감정을 섬세히 포착하면서,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품고서도 곁을 내어주고 마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이에 더하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들을 상상하고, 보호종료 아동의 현실과 자살생존자의 트라우마 등 우리 사회 고통의 면면을 신중하고 웅숭깊은 시선으로 묘사함으로써 시대의 일면을 담아내려는 소설적 시도를 이어나간다.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불란서 안경원」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풍선을 샀어』 『일요일의 철학』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혀』 『복어』, 중편소설 『움직임』, 짧은소설집 『후후후의 숲』,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이야기』 『백화점─그리고 사물·세계·사람』 『소설가의 사물』 등을 펴냈다. 제1회 문학동네작가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