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나를 떠날 수 없어.”
가슴에 사랑을 새긴 남자와 머리로 세상을 보는 여자.
지독하게 돌아보지 않는 너를, 이제는 가져야겠다.
『본문 속으로』
“네 어깨는 버스 손잡이냐?”
“네?”
“왜 이놈 저놈 함부로 잡는 건데.”
“아니, 그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요.
“어제도 최 과장이 잡던데, 그제는 김 대리가 잡고 오늘은 또 서 대리네.”
그제 점심시간에 김 대리가 밥 먹으러 가자며 어깨에 손을 얹는 것을 봤다. 어제는 최 과장이 안색이 안 좋다며 어디 아프냐고 묻더니 그녀의 어깨를 다정하게 잡아 주었고, 오늘은 보다시피 서 대리 자식이 감히 자신의 앞에서 버젓이, 그것도 약 5초간이나 길게 서윤의 어깨를 만진 것이다.
“할 말 있어?”
“……없습니다. ……팀장님.”
“자꾸 잊나 본데 카운트다운 중이야, 우리.”
“……알고 있습니다.”
언제요? 그래서 우리가 뭘 했는데요?
카운트다운이란 말만 했지 뭘 어떻게 한다는 언급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인지. 그럼 자기 방에서 누가 언제 어깨를 잡는지까지 다 보고 있었단 말이야? 그런 건, 저도 기억하지 않고 지나친 아주 사소한 인사 같은 것이었다.
“그럼 조심을 했어야지. 1년 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뭘 조심해야 하는데요? 계약서엔 그냥 1년간 모든 권리를.”
“바로 그거지. 너에 관한 모든 권리. 거기엔 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두 내게 권리가 있다는 뜻이야.”
“말도 안 돼. 그건 그냥 의례적인 표현일 뿐이에요.”
“과연 그럴까?”
* * *
언젠가 이런 날이 온다면 그 상대는 강혁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가 없는 5년 동안 다가오던 많은 남자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던 그녀였다. 계약서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막연하게, 자신의 첫 상대는 반드시 그여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설령 그가 그런 그녀의 마음을 몰랐다 해도, 아기 새가 처음 본 상대를 각인하듯 그렇게 강혁은 서윤의 첫사랑, 첫 남자였다.
* * *
“무서워?”
침대에 똑바로 누워 눈을 꼭 감고 있는 서윤을 내려다보며 강혁이 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마치 벌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온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5년 전엔 그렇게 당돌하게 가지라더니.”
강혁에겐 더할 수 없이 아찔한 유혹이었고 서윤에겐 곱씹을수록 황당해마지 않았던 치기 어린 실수였다. 그녀의 진심이 어디에 있었건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그, 그땐.”
우물거리며 말을 삼키는 서윤을 보며 미소를 지은 강혁이 그녀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그의 손끝이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모습이 보기 좋아 자꾸만 어딘가를 건드리게 된다. 이마를 스쳐 내려온 손가락이 매끈한 콧등을 따라 내려와 매 순간 그를 애타게 만들었던 도톰한 입술에 이르렀다.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아랫입술을 엄지로 지그시 문지르며 물으니 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으로 그렇다는 표시를 했다. 대답은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부끄러워하면서도 그에게 집중하는 모습이 한 입에 꿀꺽 삼켜 버리고 싶을 만큼 예쁘고 귀여웠다.
촉촉해진 윗입술을 물었다가 놓고 다시 아랫입술을 물어 쭉 당겼다. 젤리처럼 말랑한 입술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에 혀끝을 대자 깜빡이던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싫으면 말해. 네가 싫은 건 나도 싫으니까.”
뜨거운 밤의 서막을 알리듯 정원 나무 위에 내려앉은 밤의 새들이 힘찬 날갯짓을 자랑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바야흐로 둘만의 세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필명 채은우
읽고 쓰기를 무한 반복 중
여운이 남는 글을 쓰고 싶다
저서 : [애인하자, 우리], [형님의 과외선생]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