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아내에게 군림하는 존재였고, 아내 역시 나를 하늘처럼 받들고 사는 줄만 알았다. 그 아내가 근 20년이나 차이가 나는 젊은 놈에게 가랑이를 벌렸다는 것이 분노에 앞서 허망했다.
사업체의 부도에 따른 여파도 비슷했다.
왕년의 나는 잘 나가는 건설업자였다. 전성기 때는 도급순위 70 몇 위까지도 랭크 되고 내가 제2의 정주영이나 김우중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르막길을 순항 중인 줄 알았던 내 인생이 정상을 눈앞에 두고 비비적 거리더니 급전직하로 곤두박질쳐 버린 것이다.
충격으로 인한 방황과 타락의 과도기를 지나며 그 고통은 어느 정도 아물었다. 대신 나는 철저하게 무기력하고 완전히 의기소침한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