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훗날 대륙을 공포로 떨게 만드는 패왕 항우의 누나, 연희로 빙의해 있었다. 그렇게 10년이 넘도록 항우를 업어 키웠다. 그랬더니 이 자식이, 동생이 아니라 남자란다. 그럼 네가 동생이지, 어떻게 남이니? *** “이거 아십니까, 누님?” 항우가 처연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많은 게 함축된 웃음이었다. 강렬한 시선과 손 뻗으면 금방이라도 닿을 간격을 두고서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뭐, 뭘?” “내가 많이 참아왔다는 것.” 항우가 고개를 숙였다.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 “어제 말했었지요. 이제부터는 저도 제 마음 가는 대로 하겠노라고.” “나는…….” “애초에 피 섞인 남매 사이도 아니었으니.” 은밀한 속삭임이 이어졌다. “그럼 우리, 더 이상 거리낄 게 없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