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초기 연작소설에서 『바람의 그림자』와 같은 성인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로 옮겨가는 단계에서 일종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한 작품이 1999년 발표한 소설 『마리나』이다. 이 소설을 집필할 당시 루이스 사폰의 나이는 서른이었고, ‘청춘’이라는 축복받은 시기가 끝나가고 있음을 깨닫고는 청소년을 위한 마지막 작품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마무리했을 때, 나날이 그리워지는 무언가가 『마리나』 속에 영원히 깃들게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청춘의 마지막 시기, 그 아름다운 시절과의 이별을 절감하며 쓴 작품,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그런 이유에서 『마리나』를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고백한다.
이 작품에서 루이스 사폰은 처음으로 자신이 나고 자란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삼았다. 작가는 자신이 그려내고자 하는 음울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미스터리의 공간으로 바르셀로나를 선택해, ‘시간과 기억, 역사와 허구가 온통 경계를 허문 채 뒤섞여 있는’ 이 마법과도 같은 도시의 분위기를 작품 안에 오롯이 살려냈다. 이후 작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바람의 그림자』 『천사의 게임』 『천국의 수인』 역시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한 것에 힘입어 책의 등장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 바르셀로나를 누비는 여행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초기 청소년소설과 달리 구체적인 공간 배경을 설정한 것과 더불어, 『마리나』는 복잡한 서사와 가슴 아픈 사랑이 결합된 루이스 사폰 특유의 미스터리를 처음 선보인 작품이기도 하다. 열다섯 소년 소녀가 바르셀로나에 묻힌 엄청난 비밀을 파헤쳐나가는 이 소설은 미하일 콜베니크라는 인물에 대한 많은 이들의 증언을 퍼즐처럼 꿰맞추며 거대한 비밀의 실체에 서서히 접근해간다. 그 과정에서 루이스 사폰은 사체 썩는 듯한 악취, 공포를 일깨우는 기분 나쁜 소리, 소름끼치는 냉기 등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장치들을 동원해 장면장면을 생생히 묘사하며 긴박감을 극대화한다. 숨막히는 미스터리에 미하일 콜베니크의 가슴 아픈 과거와 이룰 수 없었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오스카르와 마리나의 아련한 우정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이제 비로소 자신만의 ‘바르셀로나 미스터리’의 태동을 예고한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Carlos Ruiz Zafón
모방이 불가한 완전무결한 이야기 『바람의 그림자』로 세계적인 메가셀러 작가로 우뚝 선 스페인 최고의 작가. 1964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자랐다.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광고계에 몸담다가, 1993년 『안개의 왕자』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 작품으로 청소년소설에 주어지는 스페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에데베상을 수상했으며, 연이어 발표한 『한밤의 궁전』 『9월의 빛』과 함께 ‘안개 3부작’을 완성했다.
이후 4년의 침묵을 깨고 1999년 『마리나』를 발표했다.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복잡한 서사와 애절한 사랑이 결합된 특유의 미스터리를 처음으로 선보이며, 『바람의 그림자』를 비롯한 ‘바르셀로나 미스터리’의 태동을 예고했다. 2001년 발표한 『바람의 그림자』는 출간 즉시 스페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불러일으키며 하나의 문학적 ‘현상’으로 평가받았다. 2008년 『바람의 그림자』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천사의 게임』을 발표한 데 이어, 2011년 『천국의 수인』으로 전 세계 독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며 또 한번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1994년 이후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며 소설과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틈틈이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와 〈라 방과르디아〉에 칼럼을 썼다. 2020년 5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마리나』는 우연히 만난 두 소년 소녀가 바르셀로나에 묻힌 거대한 비밀을 파헤치는 가운데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가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마리나』를 자신의 작품 가운데 ‘가장 아끼는 소설’로 꼽았다.
옮긴이 김수진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 통역번역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검의 대가』 『남부의 여왕』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살인의 창세기』 『빌더버그 클럽』 『영혼의 연금술사』 『그림자 화가』 『공성전』 『안개의 왕자』 『한밤의 궁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