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클라우드 024 - 드가: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파리의 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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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수도 파리가 낳은 ‘플라뇌르’ 드가,

그가 보여주는 예술과 혁명과 낭만의 도시 파리로 떠나다!

“사람들은 나를 ‘발레리나들의 화가’라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한 것은 그들의 움직임, 그 자체이다.’

- 에드가르 드가

 드가의 경이로움을 확인할 수 있는 오르세와 루브르에서부터

 그가 창작의 영감을 받은 오페라가르니에, 콩코르드광장까지

 파리가 낳은 화가 드가를 찾아가는 예술 기행

◎ 도서 소개

루브르에서 태어나 오르세에 뿌리내린 드가,

전통과 혁신을 오가다

 드가는 〈에투알〉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목욕통〉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정작 그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예술가 하면 으레 떠올리는 드라마틱한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렇기에 평탄한 삶 속에서 드가가 어떻게 혁명에 가까운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켰는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동서양을 넘나들며 여러 예술가와 작품을 소개해온 이연식 작가가 이번에는 클래식 클라우드의 스물네 번째 책 『드가』를 통해 드가의 삶과 작품을 이야기한다. 단순히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배경도 함께 살핌으로써 드가의 삶과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는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드가의 흔적을 오롯이 발견할 수 있는 몽마르트르 공동묘지에서부터 그가 작품의 영감을 얻은 장소를 따라가는 것은 물론, 19세기 파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들을 안내한다. 이 책은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이 어려운 지금 잠시나마 여행을 하고 온 듯한 기분 좋은 설렘을 선사한다.

1834년 파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드가는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 없이 유년기를 보냈으며, 아버지의 바람대로 소르본대학교 법학부에 진학했다. 미래가 보장된 길을 걸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과감히 법률가의 길을 포기하고 예술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에콜데보자르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예술을 배우기 시작해 어릴 때부터 드나들던 루브르박물관을 찾아 고전 작품들을 모사하며 예술의 기초를 닦았다. 당시 프랑스 고전주의미술의 대가인 앵그르로부터 “데생을 중시하라”라는 가르침을 받은 뒤로는 평생 그 말을 따랐다. 그러면서도 앵그르와 대척점에 있던 들라크루아의 그림에 매료된 드가는 그의 스타일도 거침없이 받아들이며 점차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확장해나갔다. 드가는 이탈리아 체류 중에 그곳에서 본 고전 작품들을 모사하는 등 전통을 따르면서도 파리에 돌아와서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당시 미술계 관행에 따라 살롱에 걸맞은 작품을 선보여야 함에도 틀에 박힌 인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타일의 역사화 〈소년들에게 도전하는 스파르타 소녀들〉 〈바빌론을 건설하는 세미라미스〉 〈오를레앙의 비극〉을 발표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많은 예술가가 제도권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스타일을 포기했지만, 드가는 끝끝내 그렇지 않았다. 더 나아가 루브르에서 모사하던 중에 만난 마네를 통해 과거가 아닌 현재를 그려야 한다는 깨닫고 자신을 둘러싼 현실 세계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며 현대미술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이를 두고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는 혁신의 편에 있으면서도 전통적이었고,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전통과 갈등을 빚었다.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체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본능적이고 직관적이었다.”

“드가는 파리라는 현대적인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을 보여준다‘’

인상주의적이지 않은 인상주의 예술가 드가,

그의 손끝에서 새롭게 탄생한 19세기 파리의 빛과 그림자

1789년에 일어난 시민혁명으로 프랑스에 짙게 드리웠던 중세의 그림자는 사라졌지만, 혁명의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고, 프랑스는 다시 한번 정치적인 변화를 겪었다. 드가는 프랑스·프로이센전쟁과 파리코뮌 이후 프랑스에 찾아온 이른바 ‘벨 에포크(19세기 말부터 제1차세계대전 전까지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시기)’라 불리던 시대의 한복판을 관통하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정치적으로 찾아온 평화를 구가하며 경제적으로 안정을 꾀하고 예술과 문화가 번영을 누리고 있었고, 드가는 그러한 ‘세계적 수도’ 파리의 ‘플라뇌르’, 즉 산책자였다. 그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지금껏 본 적 없는 대도시의 휘황찬란한 구경거리에 사로잡힘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발생한 파리 시민들의 고단한 삶과 소외감으로 시선을 돌렸다.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 동시대 동료 예술가들이 태양 빛이 순간순간 만들어낸 색채의 조화에 매료되어 야외로 나갔던 것과 달리, 드가는 대도시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일상에 주목했다. 특히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눈여겨보았다. 그는 발레리나들, 세탁소에서 일하는 여성들, 카페 콩세르의 가수들 등을 통해 대도시의 빛과 그림자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자 했다. 이렇듯 드가는 새로운 시대의 공기와 호흡하며 새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을 자양분 삼아 작품을 그려나갔으며, 그 결과 〈콩코르드광장: 르피크 자작과 딸들〉 〈잘못된 출발〉 〈기다림〉 〈발레 수업〉 〈페르난도 서커스의 라라 양〉 등이 탄생했다.

그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모노타이프, 사진술 등 동시대 예술가들이 외면하던 기법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인상주의라고 하면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을 향유하던 유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상주의는 어디까지나 새로이 모습을 갖춘 대도시가 낳은 유파이고, 도시 사람들의 감성에 부합하는 회화이다. 그런 점에서 드가는 역설적으로 가장 ‘인상주의적인’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전통’과 ‘혁신’을 오간 예술가 드가

 고정관념을 깨부수며 ‘진실’만을 추구하다

 드가는 사람들이 ‘회화’ 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인식들을 철저하게 깨부수었다. 가장자리도 거침없이 잘라냈으며, 화면의 중앙을 과감히 비워두기도 했다. 또 〈국화와 여인〉에서 알 수 있듯이 인물화인지 정물화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부차적인 요소로 여겨지던 사물을 인물 못지않은 중요한 제재로 삼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1886년에 발표한 〈목욕통〉으로 당시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는데, 여성의 몸을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게 그렸을 뿐만 아니라 은밀하게 훔쳐보는 듯 연출한 이 작품은 결국 서양미술에서 누드화를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로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었던 건 〈열네 살의 어린 발레리나〉라는 조각 작품에 마치 그녀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도 되는 듯 발레복을 입히고 토슈즈를 신긴 것이었다. 당시에는 마네킹이나 인형에만 옷을 입힌다고 생각했을 뿐 작품에 옷을 입힌다는 건 상상도 못 할 때였지만, 드가는 현실과 창작의 경계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더군다나 그때까지 조각에 흔히 기대했던 웅장함이나 관능 것 또한 이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가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평단과 대중의 반응이 엇갈렸음에도 그는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30대 때부터 찾아온 시력 상실은 드가에게 고통인 동시에 창작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는 흐트러짐 없이 집요하게 예술에 천착했고, 쉼 없이 새로운 매체를 연구했다. 회화가 아닌 조각으로 세상을 그리고자 했던 것도 예술을 향한 그의 집념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드가는 오로지 ‘진실’만을 추구하며 사람들이 놓여 있는 상황을 미화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 덕분에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작품 속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 같은 것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뉴올리언스의 면화 거래소〉에서는 자본주의사회의 생리를, 〈벨레리 가족〉과 같은 초상화에서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그의 작품에는 보편적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과 철학이 녹아들어 있기에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책 속에서

하지만 드가는 그런 예술가들과 달랐다. 그는 자연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온갖 모순과 악덕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도시를 향했다. 사람과 현실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노동하는 여성을 그렸고, 공연하는 사람들을 그렸다. 클로드 모네와 알프레드 시슬레가 햇빛을 받은 수목과 강물을 그릴 때, 드가는 인공조명을 받으며 움직이는 발레리나와 가수를 그렸다. 드가는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루었지만, 그의 작품들에는 어떤 방향성이 있었다. 그는 인상주의에 속했지만, 풍경이 아니라 인물을 그렸다. 경마와 발레를 그린 그림에서는 인물의 순간적인 동작, 역동적인 모습을 묘사했다. 그의 목표는 단순해 보였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바뀌는 세계의 모습을 붙잡는 것.

- 〈프롤로그〉 중

 드가는 앵그르와 같은 차분하고 체계적인 예술을 추구하면서도 들라크루아의 자유분방함에 끌렸다. 그러다 보니 드가의 예술은 초기에는 앵그르적인 경향을, 후기에는 들라크루아적인 경향을 띤다. 엄격함과 자유로움, 치밀함과 즉흥성 사이를 드가는 평생 시계추처럼 오갔다.

- 〈1장 데생을 사랑한 예술가〉 중

 모로는, 드가가 스쳐 갔고, 어쩌면 발을 담갔을, 하지만 남겨두고 떠나버린 세계가 지닌 이름이다. 드가와 모로, 잠깐이나마 같은 세계를 공유했을 두 사람의 궤도는 어긋나버렸다. 드가는 모로를 떠나 다른 선배를 찾았다. 새로운 선배의 이름은 ‘마네’였다.

- 〈1장 데생을 사랑한 예술가〉 중

 드가는, 인상주의를 단순하게 정의하고 분류하려는 시도를 방해하는 존재이다. 인상주의에 대한 후대의 서술은 은연중에 ‘순수한 인상주의’를 구별하려 한다. 하지만 ‘순수한 인상주의’ 전시회를 굳이 따지자면 1874년의 첫 번째 전시회뿐이었는데, 그마저도 드가가 이 전시를 주도했다는 사실이 역설적이다.

- 〈2장 인상주의적이지 않은 인상주의 예술가〉 중

 드가의 누드화는 관음증을 연상시키는 묘사 때문에 지금도 비판받는다. 하지만 정작 그의 누드화는 관음증을 충족시키지 않는다. 관음증의 대상이 되려면 이상적인 육체여야 한다. 드가의 그림 속 누드는 결코 이상적이지 않다. 여성주의 미술사가인 노마 브루드는 드가의 그림 속 여성들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옷을 벗었으며, 전통적으로 회화의 ‘목욕하는 여자’가 관람객에게 우호적인 것과 달리 남성을 당황하게 하기에 오히려 여성주의적이라고 했다.

남성의 시선이라는 점에서는 드가의 그림도 유럽 회화의 면면한 관습 속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단 그의 그림 속 여성들은 연기하지 않는다. 이전 회화에서 단장하는 여인들은 자신들이 관찰되는 걸 짐짓 모르는 척했다. 그러니까 거꾸로, 이전까지 목욕하는 여성의 모습이 얼마나 작위적이었는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드가의 그림 속 여성들은 스스럼없으며 보는 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 〈2장 인상주의적이지 않은 인상주의 예술가〉 중

 오르세에서는 드가가 얼마나 뛰어난 예술가인지 실감할 수 있다. 드가의 기발하고 파격적인 구성은 여러 밋밋한 작품들 속에서 단연 돋보인다. 그의 작품은 좋은 자리에 걸려 있으며 사람들은 경마와 발레리나를 그린 그의 그림을 경이롭게 바라본다. 어쩌면 예술의 목적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스스로는 냉담하면서 사람들을 꿈꾸게 하는 것. 오르세미술관에서는 드가의 조각 작품들도 볼 수 있다. 대부분 발레리나와 말, 목욕하는 여인을 소재로 한 것이다. 파리를 가득 메운 웅대하고 화려한 조각들에 비하면 드가의 작품은 일견 소박하다. 하지만 그가 평생 추구했던 속도와 움직임, 인간의 몸이 빚어내는 균형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 〈2장 인상주의적이지 않은 인상주의 예술가〉 중

 오스만의 파리 대개조 이후, 파리에는 플라뇌르flaneur가 출몰했다. 프랑스어로 플라뇌르란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유유자적하게 대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한다. 보들레르에 따르면 플라뇌르는 망원경으로 사방을 관찰하면서도 이따금 바싹 다가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초연하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존재이다. 스스로가 비범한 안목을 소유했으며 대중보다 수준이 높다고 여긴다. 플라뇌르는 도시의 군중을 광활한 사막처럼 여기며, 그 사막을 배회하는 자신의 고독을 만끽한다. (…) 보들레르식으로 말하자면 ‘현대의 화가’는 플라뇌르로서의 예술가이다. 그렇다면 누가 가장 플라뇌르다운 플라뇌르였을까? 마네는 나름대로 도시의 관찰자였지만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모네나 피사로도 파리를 그리기는 했지만, 이들의 그림에서 대도시의 시민들은 거친 붓질 속에 파묻힌 얼룩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의미에서 드가야말로 진정한 플라뇌르였다.

- 〈3장 새로운 도시의 관찰자―‘플라뇌르’ 드가〉 중

 드가의 그림에는 아래쪽에서 올라온 빛, 풋라이트를 받은 인물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그는 햇빛에 관심이 없었다. 인상주의 예술가들에게 빛은 곧 태양광을 의미했기에 그들은 해가 지면 붓을 내려놓고 쉬거나 놀러나갔다. 마치 옛 농민들처럼 낮과 밤이 교차하는 시간에 맞추어 살아갔다. 하지만 드가는 도시 문명이 만들어낸 인공조명을 유일한 광원인 양 떠받들었다.

- 〈3장 새로운 도시의 관찰자―‘플라뇌르’ 드가〉 중

 드가의 그림이 만들어내는, 묘하게도 앞뒤로 오랜 시간을 지시하는 것 같은 느낌, 찰나를 영속으로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 여기서 연유한다. 그래서 그가 그린 경주마들은 때로는 얼어붙은 것처럼 보인다. 반면 마네의 그림에서는 찰나가 찰나로 느껴진다. 심지어 어느 정도 이어지는 시간조차도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느껴진다. 마네는 시간에 실려 스쳐 지나갔고, 드가는 시간을 화면에 담으려 했다. 마네는 그림을 마무리하면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저 다시 그리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드가는 같은 주제, 같은 장면을 여러 차례 그렸고, 작품 하나하나를 거듭 수정했다. 이 때문에 그의 그림이 지닌 정적인 성격은 더욱 강해졌다.

- 〈4장 움직임을 향한 열정―경마와 발레〉 중

 그는 박스석에서 무대를 내려다보는 그림도 여럿 그렸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1876년경에 그린 〈에투알〉이다(15쪽). 수석 발레리나가 풋라이트를 받으며 앞으로 나오는 모습은 환상의 결집체이지만, 그녀의 바로 뒤쪽으로는 무대 배경막 사이사이에 서서 대기하는 다른 발레리나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검은색 정장 차림의 후원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무대 위 수석 발레리나를 바라보며 서 있다. 이처럼 드가는 몽환적인 아름다움과 비참한 현실이라는, 이질적인 두 요소를 한데 섞어놓았다. 수석 발레리나의 머리 장식이 마치 배경막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게끔 그린 것도 얄궂다. 배경막의 바깥쪽 선을 발레리나의 머리칼과 겹치게 하거나 아예 두 요소의 간격을 벌릴 수도 있었겠지만, 무자비한 드가는 그림을 보는 이들이 마음 놓고 환상에 빠져들 수 없도록 만들었다.

- 〈4장 움직임을 향한 열정―경마와 발레〉 중

 이 시기에 그가 그린 〈뉴올리언스의 면화 거래소〉는 그의 성숙한 역량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현대 도시의 사무실에서 너무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드가보다 앞서 이렇게 그린 화가는 없었다. 한쪽에 면화 샘플이 놓인 사무실에서 어떤 이는 일에 몰두하고 있고 또 어떤 이는 한가로워 보인다. 그림 속 남성들은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사무실 중앙, 그러니까 그림의 중심에는 드가의 동생인 르네 드가가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여기서도 드가는 화면 중심에 일종의 공백을 만들어 일견 산만하고 태만하지만, 종종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굴러가서는 그것에 매달려 있던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뭉개버리는 산업의 생리를, 통일된 질서도, 가치의 위계도 없는 현대성의 단면을 드러냈다.

- 〈4장 움직임을 향한 열정―경마와 발레〉 중

 노년의 드가는 파리를 배회했다. 소변을 자주 봐야 했기에 오늘날의 버스처럼 운행되었던 승합마차를 타고 다니지 못했다. 홀로 파리 여기저기를 비척거리며 돌아다녔다.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 때로는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젊었을 적에는 감각을 탐하며 도시를 집어삼킬 듯했던 그가 이제는 방향도 목적도 없이 다녔다. 오로지 돌아다니는 존재인 플라뇌르가 드가의 마지막 정체성이었다.

- 〈5장 드가의 유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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Σχετικά με τον συγγραφέα

※ 저자소개

이름: 이연식

약력: 화가가 되고 싶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해 서양화를 공부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과정에서 미술 이론을 배웠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은 책을 쓰고 외국 도서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다. ‘전통’과 ‘혁신’이라는 이질적인 두 요소를 동시에 보여주는 예술가 드가에게 매료되어 이 책을 썼다. 지은 책으로는 《뒷모습》 《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 《불안의 미술관》 《이연식의 서양 미술사 산책》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그림을 보는 기술》 《한국 미술: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신 무서운 그림》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 《컬러 오브 아트》 《몸짓으로 그림을 읽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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