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녀의 이복 자매. 그늘 속의 여자. 연우를 처음 본 순간부터, 해준은 그녀에게 속절없이 이끌렸다.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끝, 극적인 순간에 닥쳐온 연우의 고백에 기뻐하기도 잠시, 해준은 그렇게 원했던 그녀와의 약혼식 날 연우의 진심과 모든 비밀을 알게 된다. “지옥 속에서 살아 봐. 서연우.” 모든 진실 앞에 무너진 연우를 버려둔 채 떠났던 해준은 7년 뒤, 여전히 연우를 잊지 못한 채 한국에 돌아온다. 연우의 비밀을 손에 쥔 채 그녀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해준. 지옥 속에서 도망치기 위해 도리어 그에게 손을 뻗은 연우. “네 세상은 딱 거기까지야. 연우야. 내 손이 닿는 곳까지.” 그의 곁 역시 또 다른 지옥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은 뒤였다. * * * 그는 가늘게 뜬 연우의 시선을 집요하게 좇았다. 어깨와 가슴 언저리에 닿은 시선은 좀처럼 미끄러지지 않고 그 주변만을 배회했다. 그러다 결국 다시 눈을 감았다. 해준은 그런 그녀의 몸에 제 몸을 겹치다시피 하고선, 한 손으로 그녀의 뺨을 감쌌다. 다른 한 손은 머리 옆을 짚어 지탱한 채였다. “피하지 마.” 벌어진 허벅지 사이가 홧홧했다. 연우가 이 열기를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똑바로 봐, 서연우.” 7년간 수없이 갈망하던 순간에, 해준은 극에 다다른 흥분을 느꼈다. “네가 뭘 선택했는지.” 동시에, 연우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아악!” 얌전히 내려와 있던 두 손이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짧은 손톱이 살갗을 긁는 감각이 선연했다. 해준은 부릅 눈을 뜬 채 바들바들 떠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흔들리는 눈동자 아래로 흥건하게 고인 눈물이 그를 더 촉진케 했다. “네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봐.” “흐읏.......” 탁한 동공 사이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렸다. “네가, 누구에게 안겨 있는지.” 마치 그에 호응하듯, 연우가 두 팔을 더 길게 뻗어 해준의 목을 감싸 안았다. “아아......!” 손끝이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드는 그 순간, 해준은 극한의 사정감에 몸을 떨었다. “넌 여기에 있어.” 이미 의식을 잃은 연우의 뺨에, 그는 입술을 묻었다. “이제 못 나가. 이곳에서.” 가능한 한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