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원잡기≫는 일종의 한문 수필집이다. 조선조 큰 학자로 추앙받는 서거정(徐居正)이 역사에 누락된 사실과 시중에 떠돌던 한담(閑譚)들을 채록한 것이다. 우리나라 한문 수필집으로는 신라 때 혜초가 지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나 최치원의 ≪쌍녀분(雙女墳)≫ 등이 비교적 초기 작품들이며, 고려 말기에 오면 이규보의 ≪백운소설(白雲小說)≫,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 이제현의 ≪역옹패설(?翁稗說)≫과 같은 작품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여파로 조선에 들어와서도 한문 수필집이 다양하게 엮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서거정의 ≪필원잡기≫,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성현의 ≪용재총화(?齋叢話)≫ 등이다. 서거정은 당대의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우리나라 사적(事蹟)을 널리 채집하여, 역대 창업으로부터 공경대부들의 도덕과 언행, 문장과 정사들 중에서 모범이 될 만한 것을 가려 뽑고, 또 국가의 전고(典故)와 떠도는 여항풍속(閭巷風俗) 중에서 사회 교육과 관련된 사례는 물론이고, 나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실까지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간결한 필체로 기술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필원잡기≫이다. 그 제목에서 보듯, 붓 가는 대로 주위에 널려 있는 이런저런 사실들을 모아 기록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송나라 구양수가 남긴 ≪귀전록(歸田錄)≫에 버금가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Beletristika i književn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