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카프카·클라이스트·드로스테 휠스호프: 독일 단편소설 걸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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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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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사랑과 정의…

독일의 대문호들이 그리는 인간과 사회의 세밀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친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프란츠 카프카,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아네테 폰 드로스테 휠스호프. 이들의 단편소설 41편을 모은 『브레히트·카프카·클라이스트·드로스테 휠스호프』가 출간되었다. 신랄하게 자신의 정치적 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을 창작한 브레히트, 존재의 불안을 포착하여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카프카, 인간의 실존과 본질적 비극을 노래하며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이룬 클라이스트, 19세기 독일 최고의 여성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드로스테 휠스호프. 이들이 작품에 녹여낸 19~20세기 당시의 인간과 사회의 모습은 현대의 독자에게 삶과 죽음, 사랑과 정의에 대해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부산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배중환 명예교수가 네 거장이 남긴 유명 작품뿐 아니라 그들의 문학세계를 잘 나타내는 작품, 시대를 불문하고 깨달음과 울림을 줄 수 있는 주제를 지닌 작품을 엄선해 번역해서 엮었다.

About the author

독일의 극작가·소설가. 프랑크푸르트 안데어오데르 출생. 포츠담 근위연대에 들어가 소위로 진급하였으나, 1799년 인생의 행복과 진실을 자기 내면의 문제로서 추구하는 길을 선택해 군을 떠났다. 고향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 칸트철학에서 절대적 인식의 불가능을 간파하고 충격을 받아 파리 여행을 했다. 그러나 대도시 생활을 혐오하고 스위스에서 자연 속의 농부가 되려 했다.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약혼자와의 관계를 끊고, 고독한 창작활동에 들어갔다.(1802) 야심작인 비극 『로베르트 지스카르트』를 완성하지 못하였으나 프로이센 관공서에서 일하며 창작의욕을 되찾았다.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에게 굴복하자 프랑스군에 체포되었으나 창작을 계속해 1807년 희극 『암피트리온』을 간행하였다. 석방된 뒤 드레스덴으로 옮겨 아담 뮐러와 월간지 『푀부스』를 창간 비극 『펜테질리아』(1808)를 비롯한 희곡과 단편소설을 발표하였다. 희극 『깨어진 항아리』(1811)의 초연이 실패하여 연출을 맡았던 괴테와 다투었으며 나폴레옹에 대한 증오로 애국적 시, 희곡을 써 베를린을 무대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낭만파 문인과 사귀며 [베를린 석간신문]을 발행, 단편과 에세이 『인형극』 등을 게재하였다. 희곡 『프리드리히 폰 홈부르크 왕자』(1810)를 왕실에 바치고, 『미하엘 콜하스』(1810)를 비롯한 8편이 수록된 『단편소설집』(2권, 1810∼11)을 출판하였다. 그는 독일 작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비극과 희극 양면에서 재능을 발휘, 인간 인식능력의 부재와 그에 바탕을 둔 격렬한 갈등을 그려 이것을 자아의 깊은 곳에 있는 절대적 ‘감정’으로 극복하고 다른 사람이나 바깥세계와의 신뢰관계를 회복하려 하였다. 오늘날 그는 실존주의문학의 선구 또는 20세기 문학의 원류로서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독일 베스트팔렌지역의 전통 있는 가톨릭 귀족가문 출신으로 독일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문학과 음악에 재능이 두드러졌지만, 사회가 귀족여성에게 요구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40세가 넘은 1838년에 처음 익명으로 시집을 내었으나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1842년 소설 《유대인의 너도밤나무》를 발표하여 작가로서 이름을 얻었고, 1844년에는 코타 출판사가 그녀의 시집을 출간했다. 소설보다는 시 작품을 많이 남겼지만, 오늘날에는 《유대인의 너도밤나무》 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100년이 지난 후에도 읽히고 싶다.”고 했던 작가는 병약하고 고독한 여인이었지만, 강한 의지와 철저한 작가 정신을 가진 위대한 시인으로서 후세 여성 시인들의 모범이 되었다.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사회에서 성장했다. 1901년 프라하 대학에 입학해 독문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1906년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꿔 1904년 「어느 투쟁의 기록」, 1906년 「시골의 결혼 준비」를 집필했고, 1908년 노동자상해보험공사에 취직한 이후로도 14년 동안 직장생활과 글쓰기 작업을 병행했다. 「선고」 「변신」 「유형지에서」 등의 단편과 『실종자』 『소송』 『성』 등의 미완성 장편, 작품집 『관찰』 『시골 의사』 『단식 광대』 등 많은 작품을 썼고 일기와 편지 등도 방대한 양을 남겼다.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에 대한 통찰을 그려내,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았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아 여러 요양원을 전전한 끝에 병이 악화되어 1924년 빈 근교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1898년 2월 10일 독일 아우구스부르크(Augsburg)에서 종이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 베르톨트 프리드리히 브레히트(Berthold Friedrich Brecht)와 브레칭(Brezing)에서 태어난 어머니 조피(Sofie) 사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거쳐 1908년 아우크스부르크 김나지움에 입학한 그는 이미 15세 때부터 시 작업을 시작해 학생 잡지 [추수]를 발행하는 등 친구들과 문학 동아리를 만들었고 이 활동을 통해 그의 문체는 도발적이 된다. 이때 같이 활동하던 판첼트, 카스파르 네어, 뮌스테러 등과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류했다. 특히 카스파르 네어는 망명에서 귀국한 브레히트의 무대를 만들었다. 1928년에는 [서푼짜리 오페라]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둠으로써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나치 집권기인 1933년 2월 28일 망명길에 오른 뒤,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미국을 전전하면서 15년간 독일 외부에서 활동했다. 1948년 동베를린으로 귀환한 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1949)을 공연하여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다. 부인 헬레네 바이겔과 함께 베를린 앙상블을 창단하여 연극 작업에 몰두하다가 1956년 8월 14일 베를린에서 사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한밤의 북소리』, 『남자는 남자다』, 『서푼짜리 오페라』, 『마하고니 시의 흥망』, 『어머니』, 『제삼제국의 공포와 참상』,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사천의 착한 사람』, 『갈릴레이의 생애』, 『푼틸라 나리와 그의 하인 마티』, 『코카서스의 분필 원』 등이 있다.

서강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부산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교수로 정년 퇴임한 후, 현재는 동 대학교 명예교수로 독일 문학 작품의 번역작업을 하고 있다. 번역한 작품으로는 클라이스트가 지은 『깨어진 항아리』, 『미하엘 콜하스』, 『칠레의 지진』(단편전집), 『슈로펜슈타인 일가』, 『암피트리온』, 『헤르만의 전쟁』과 『유태인의 너도밤나무』(드로스테 휠스호프 지음), 『예기치 않은 재회』(요한 페터 헤벨 지음) 등이 있고, 옮겨 엮은 책으로는 『동화로 배우는 독일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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