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힘든 직업’인 고등학생답게 온갖 고민과 걱정을 안고 하소연하는 해인에게 소설가 시우는 따끔하게 야단을 치거나 어줍지 않은 충고를 해주는 대신 가만히 들어주고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소통을 계속한다. 해인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다른 어른들처럼 가야 할 길을 지정하지도 않으며, 그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고 말해주는 시우에게 특별한 우정을 느끼며 의지한다. 시우 역시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것을 기꺼워하며 우정을 계속 이어나간다. 해인 앞에 닥친 시련과 사건을 볼 때마다 잔소리를 한 바가지로 쏟아 붇는 엄마와 달리 시우는 조용히 들어준 다음, 자신이 어렸을 때는 어땠는지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조근조근히 이야기해 준다. 해인은 시험 성적이 떨어져도, 상상 임신을 해도, 낙태를 위한 불법 약을 먹거나 끝까지 믿었던 남자친구와 아픈 이별을 할 때도 엄마보다는 ‘친구’ 시우선생님을 먼저 찾게 된다.
둘의 우정이 유지되는 데에는 특별한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성숙하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우리나라의 청소년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그들을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서 대우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야말로 그들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작품이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한 소설가이지만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따듯한 어른 친구 시우. 평범하고 모범적으로 보일 뿐이지만 알고 보면 더 괜찮고 속이 꽉 찬 고등학생 친구 해인. 그들의 성별과 세대, 그리고 우주마저 뛰어넘은 특별한 우정이야기.
이상권
산과 강이 있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는 참 부자였다. 나만의 옹달샘이 있었고, 나만의 나무도 여러 그루 있었고, 나만의 비밀동굴도 있었고, 휘파람을 잘 부는 아이였다. 대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갑자기 들이닥친 난독증과 우울증으로 생을 놓아버리고 싶었을 때 문학이 찾아왔다. 그 시절이 내게 가장 슬펐고, 가장 사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가가 된 뒤로도 청소년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한양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했으며, 1994년 계간 <창작과 비평>에 단편소설 <눈물 한 번 씻고 세상을 보니>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지금은 일반문학과 아동청소년문학의 경계를 넘어 동화부터 소설까지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 작품으로는 『성인식』 『하늘을 달린다』 『사랑니』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발차기』 『마녀를 꿈꾸다』 『난 할 거다』 『애벌레를 위하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