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끝으로 이어진

· 창비시선 Book 448 · 창비 Changbi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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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한 죽음은 영원히 살고 삶은 오래 죽는다”

 

박영근작품상 수상 시인 박승민 세번째 시집

슬픔을 안고 죽음을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극진하고 따뜻한 배웅

 

*본 보도자료에는 시인과의 간단한 서면 인터뷰 내용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삶의 근원적 슬픔과 ‘목소리 없는 타자들’의 삶을 진솔한 언어로 기록해온 박승민 시인의 세번째 시집 『끝은 끝으로 이어진』이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문단에 나온 시인은 묵묵하고 결연한 걸음으로 슬픔의 정서를 주조음으로 한 독특한 시적 문법을 구사하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다져왔다. 2011년 등단 4년 만에 첫 시집 『지붕의 등뼈』(푸른사상)를 내었고, 2016년 ‘제2회 박영근작품상’에 이어 두번째 시집 『슬픔을 말리다』(실천문학사)로 ‘제19회 가톨릭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늦깎이 시인으로서의 녹록지 않은 내공을 보여주었다.

 

소외와 고독을 감싸는 박승민의 타자의 시학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은 “실패와 소외로 점철된 삶”(장이지, 해설)을 살아온 존재들과 “사라져가는 농본적 세계와 자연에 바치는 만가(輓歌)이자 송가(頌歌)”(나희덕, 추천사)이다. 시인은 탁월한 묘사력과 섬세한 언어로 삶의 곡진한 풍경을 담아내며 “인간적인 매력”(해설)이 넘치는 감동적인 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삶에 대한 성찰과 시적 사유가 돌올한 시편들이 묵직한 울림을 자아내며 가슴을 적신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늘 측은지심이 담겨 있는 박승민의 시에는 슬픔과 허무가 가득하다. “사는 게 꼭 거세당한 비육우 같다”(「번지점프」)는 삶의 비애가 잔잔하게 흐른다. “마누라가 버린 자식새끼를 바라보는 눈으로 세상을 보겠다”던 초기의 애잔한 마음이 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사무치는 듯하다. 시인은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채 “몸은 있어도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유령들”(「오리털 하나가 떨어져 들썩,」)과 같은 존재들에게 주목한다. 특히 삶의 종막에 이르거나 황폐해진 삶의 터전에서 뿌리 뽑힌 채 고독하게 죽어가는 소외된 ‘늙은 존재들’의 일생을 사뭇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삶의 진실한 의미를 되새긴다. 그런가 하면 상처뿐인 그들의 삶에 흉터 같은 무거운 그늘을 드리운 채 “우울과 항우울제 사이에서 여전히 수감 중”(「검은 방」)인 한국근대사의 이면을 냉철한 시선으로 꿰뚫어보기도 한다.

 

시인은 늘 ‘벼랑’을 바라본다. 퇴색한 빛의 가장자리에 눈길을 던지며, “인간이 인간을 직접 뜯어먹는”(「오리털 하나가 떨어져 들썩,」) 자본주의 세계의 비정한 현실과 “일주일 만에 산 하나를 먹어치”(「기계의 시간」)우는 자본의 폭력과 자연의 생명을 무너뜨리는 “인간의 무례”(「태풍」)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탈진한 죽음은 영원히 살고 삶은 오래 죽는” 이 중음신(中陰身)의 세계에서 시인은 감정을 최대한 추스려 “죽음 바깥”(「삶은 오래 죽는다」)을 온전히 살아내면서 덧없는 존재들의 상처를 극진한 손길로 어루만지고 고통을 함께한다. 비루한 삶의 “잿더미 속에서도 재가 되지 않고 자꾸 불씨가 되는 마음”(「지난여름」)이 오롯이 살아 숨 쉬기에 시인은 “살아 있는 작은 잎이 관(棺)을 뚫고 시퍼런 꼭대기까지 삶을 끌고 간다”(「버드나무로 올라가는 강물」)는 직관에 이르러 가장 낯선 타자로서의 죽음조차 삶 속으로 끌어들여 보듬어 안는다.

 

한때 혁명을 꿈꾸기도 했던 시인은 이 세계가 “살아 있는 고통의 형식”(「애이불상」)이라고 여긴다. 시인이 살아가는 ‘지금-여기’는 ‘바닥’이고 ‘허공’이다. “밟을 때마다 자꾸 삐걱거리던 지구의 사다리”(「April Come She Will」)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시인에게 삶은 “아무리 사력을 다해도 오르지 못하고” “늘 문 앞에서 실패”(「두보의 눈물」)하고 마는 고통과 슬픔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저 위태로운 허공에서 한줄기 빛을 찾는다. “목에 차는 슬픔의 수맥을 틀어쥐고”(「삶은 오래 죽는다」) “뼈다귀 몰골로”나마 “끝내 자기 생(生)의 흰 별을 찾아”(「미루나무의 겨울 순례」) 나선다. 삶의 벼랑 끝에 간신히 매달린 채 “눈물을 퍼 나르는 지게의 몸”(「두보의 눈물」)과 같은 생애의 모든 슬픔을 말리며 감내해온 시인은 마침내 “끝은 끝으로 이어진 세계의 연속”이며 “존재는 늘 새로운 형식으로 우주의 일부로 다시 드러난다”는 깨달음에 닿는다. 시인은 이제 ‘애이불상(哀而不傷)’의 시적 경지에 다다른 듯하다. “보이진 않지만 가끔 이상한 기분의 형태로” “거기의 나는 여기의 무엇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끝은 끝으로 이어진」)며 기꺼이 ‘끝’을 살아내는 시인에게 도래할 또다른 끝을 기다리게 된다.

 

박승민 시인과의 짧은 인터뷰 (질의: 편집자)

 

―4년 만에 세번째 시집을 출간하게 되셨는데요,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이번 시집이 평자나 독자 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합니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생각이지만 좋은 시 혹은 좋은 문장을 남기고 싶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예측불허의 재앙 속에서 ‘좋은 시’를 넘어서서 ‘필요한 시’가 있는 ‘시집’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시인께서는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도심에서 시골로 이사를 온 지 십년쯤 되었는데, 느지막이 일어나서 멍을 좀 때리다가, 오후에는 시내에 나가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대중음악을 듣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시가 올 수 있는 길을 닦는 셈이죠. 시를 쓰지 않아도 늘 시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남은 생은 제 마음이 시키는 대로 좀 방치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게 시를 쓰는 일이든, 책을 읽는 행위든.

 

―이번 시집은 앞선 두권의 시집과는 또다른 결을 지닌 것 같습니다. 세번째 시집을 엮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이나 특징은 무엇인가요?

저는 죽음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당연히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고요. 그런데 죽음은 인간의 문제인데, 이게 또 외부, 즉 자연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코로나19나 사스는 물론이고 최근 중국이나 인도의 대홍수, 한국의 폭우 피해, 호주나 미국 캘리포니아의 대형 산불 등은 인간이 자연사할 수 없게 만드는 ‘불길한 징조’입니다. 인류의 종말이라는 말이 이젠 뜬구름 잡는 허언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거리두기’ 혹은 ‘개발과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점인데, 그런 문제들을 생각하면서 쓴 시들이 많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특별히 애착을 느끼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그 이유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사람은 사람일 뿐 신이 아니죠. 그 때문에 도저히 극복이 안 되는 수많은 문제를 안고 사는 불완전하고도 불안정적인 존재입니다. 아무리 메꾸려고 해도 메꿀 수 없는, 인간의 어떤 치명적인 부분, 운명이라고밖에는 달리 부를 수 없는 비극을 「난설헌의 남매 묘(墓)」를 통해 복기해보려 했습니다. 이 시를 쓰는 동안 ‘그녀의 고립 속에 오래 머물러 있어서’ 슬프면서도 좋았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방향이나 삶의 계획 등이 궁금합니다.

코로나19 같은 사태는 더 자주, 더 강력히 올 것입니다. 이제 인간의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모독’이 끝나지 않는 한, 인간이 아무리 백신을 만들어내도 자연은 또다른 백신을 요구할 것입니다. ‘전진하는 후퇴’ 같은 이 세계의 발열 앞에서 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니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능력이 된다면 거기에 합당한 시를 좀더 써보고 싶습니다.

 

 

책 속으로

 

뼈다귀 몰골로

 

풍(風), 맞으며

 

대들면서

 

끝내 자기 생(生)의 흰 별을 찾아가는,

 

저 허공에 눈이 먼

―「미루나무의 겨울 순례」 전문

 

임종 의식에서 사제는 자기 엄마 앞에서도 감정이입되면 안 된다. 목에 차는 슬픔의 수맥을 틀어쥐고 죽음 바깥에 있어야 한다. 잘 보낸다는 건, 죄가 있어도 그게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무의식 덩어리를 흔들어서 동의를 구하고 답을 받아내는 묵묵부답의 연속. (…) 한 생애를 잘 배웅한다는 건 죽음을 잘 받아내는 것, 그런 다음에 탈진한 죽음은 영원히 살고 삶은 오래 죽는다.

―「삶은 오래 죽는다」 부분

 

바닥은 자꾸 밀리면서 바닥이 된다.

아직은 바닥이 아니야,

최선을 다하면서 밑바닥이 된다.

 

언제부턴가 바닥은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어찔하다.

자기 심장보다 땅의 심장이 더 쿵쾅거릴 때

어깨를 들고 자꾸 일어서는 유혹에 흔들린다.

―「허공의 성(城)」 부분

 

멸치의 생비늘처럼 말라 있는 가을비, 다리와 손가락을 응급 처방으로 한쪽씩 잘라낸 절지류가 젓갈처럼 한번 더 푹 삭기 위해 대기 중인 쪽창, 누워 푸석거리는 약봉지와 입금된 적 없는 희망 증서와 벼룩시장의 구인란이 식판처럼 엎어져 있는 검은 대낮

―「빛의 가장자리」 부분

 

바닥 밑엔 또다른 바닥이 있었어요.

그러니깐 우린 아직 바닥 위에 있는 거죠?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죠?

밑에서 올라오는 바닥의 생애에 가만히 심장을 얹어보세요.

까마득한 시간의 지층에서 올라오는

느린 숨소리들을 한번 더 느껴보세요.

그러니깐 우린 지금 너무 높은 곳에 있는 거죠?

―「바닥」 부분

 

체념할 줄 아는 나이가 되면 속은 편하다.

그런데 사는 게 꼭 거세당한 비육우 같다

 

(…)

 

그래도 가끔은 생을 도약대에 세우고 뛰어내리고 싶은 날이 있다.

 

내용물을 거꾸로 처박고 허공을 박차 오르는,

발에 묶은 끈마저도 끊어버리고 싶은.

―「번지점프」 부분

 

나는 이미 거기에 가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이라 부르는 그 흔한 곳에

몸의 일부, 나빴던 내 과거의 행실까지도

거기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

 

끝은 끝으로 이어진 세계의 연속,

존재는 늘 새로운 형식으로 우주의 일부로 다시 드러난다

―「끝은 끝으로 이어진」 부분

 

 

추천사

 

신경림의 『농무』로부터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박승민의 『끝은 끝으로 이어진』은 그 ‘농촌공동체’가 오늘날 어떤 ‘생명/죽음공동체’에 이르게 되었는지 내력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자본에 의해 ‘해고’된 밭과 과수원은 주변부로 밀려나고, 시의 밭자락엔 노인들과 귀신들과 혼백들만 남아 두런거린다. 그곳에는 “땅의 환부가 심부에서부터 끓어오”(「바다는 오지 않는다」)르고, “꼬리뼈까지 끊어놓고 주저앉은 산의 늑골”과 “파헤쳐진 내장 속으로 참나무살과 가문비살, 참꽃살과 소나무살이 차곡차곡 쌓여”(「기계의 시간」)간다. 개발의 광풍에 살과 뼈가 으깨지는 고통을 겪기는 인간이나 자연이나 마찬가지이다. “탈진한 죽음은 영원히 살고 삶은 오래 죽는” 이 중음신(中陰身)의 세계에서 시인은 침착한 사제처럼 감정이입을 줄이고 “죽음 바깥”(「삶은 오래 죽는다」)을 살아내며 그 존재들을 극진히 배웅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소리 없이 지는 흑매의 “매화창(唱)”처럼, 사라져가는 농본적 세계와 자연에 바치는 “만가(輓歌)”이자 “송가(頌歌)”(「흑매 지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시인의 시선은 간절하게 한줄기 빛을 찾아 헤맨다. 길의 끝은 끝으로 이어지고, 시집 곳곳에 박혀 있는 ‘허공’들은 사금파리처럼 빛난다. 그 위태로운 허공이 시인의 경작지이다. “밟을 때마다 자꾸 삐걱거리던 지구의 사다리” 위에서 그는 탄식한다. “우주의 미아가 되기 위해 우린 너무 빨리 달려왔”(「April Come She Will」)다고. 지구라는 ‘생명/죽음공동체’의 제어할 수 없는 속도 앞에서 느끼는 현기증과 공포, 그 묵시록적인 전언 앞에서 우리는 지금도 “간신히 매달려”(「벼랑에 고드름」) 있다.

 

나희덕 시인

 

시인의 말(부분)

 

이 봉쇄된 구(球) 안에서

전진하는 후퇴 같은 이 세계의 발열 앞에서

시의 스트라이크 존은 어디쯤일까.

어디를 향해 언어는 던져져야 하는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구나……

 

김종철 선생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밤.

 

 

2020년 8월, 코로나19 속에서

박승민



Changbi Publishers

About the author

박승민(朴勝民) 시인은 1964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다.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지붕의 등뼈』 『슬픔을 말리다』가 있다. 박영근작품상, 가톨릭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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