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이빙은 맨몸으로 숨을 참아가며 하는 운동이다. 『아무튼, 잠수』는 그런 몸에 관한 이야기이자 참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물속에서만이 아니다. 좀 더 근원적인 이야기가 있다. 어린 시절 몸에 대한 수치심으로 체육 시간이 싫었던 기억에서부터 우울증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우울, 불안이 은은하게 일상을 채웠던 시절, 애써서 힘을 끌어올려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순간들. 『아무튼, 잠수』는 타인의 시선이건, 자신 안의 시선이건 평가와 기대를 견디고 참아냈던 시절들을 불러내 그 의미를 더듬고, 그런 시선들에서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 중심에 프리다이빙이 있다.
_해방
바다는 해방이다. 바다는 나의 몸을 신경 쓰지 않는다. 수치심도 열등감도 느낄 수 없다. 모두에게 평등하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이 있다. 잠수를 하는 순간 문이 열린다. “고개를 들고 다시 물 밖을 봤다. 배의 모터 소리와 선생님이 주의사항을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알던 세계였다. 다시 고개를 넣어 물속을 보았다. 순식간에 고요해지며 지구에서 제일 큰 것이 보였다. 완전히 모르는 세계였다.”
다른 세계와의 만남은 그러나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프리다이빙은 애쓴다고 잘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스스로를 억지로 끌고 가서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의지로, 최선을 다해서, 스스로 몰아붙여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에 익숙했던 저자는 프리다이빙 앞에서 당혹스럽다.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못하는 연습, 내려놓는 연습, 욕심을 버리는 연습, 힘 빼는 연습. 그리고 그런 자각 속에 변화가 찾아온다. “언젠가부터 꿈에서 나의 행동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꿈에서 나는 나를 재촉하는 사람에게 도리어 화를 낸다. 왜 이딴 걸 해야 하느냐고 따진다. 이러한 꿈의 변화는 내가 더 이상 시험이나 평가로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 아무런 계기 없이도 나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나는 한계가 많은 인간이라 어떤 방식으로건 나를 증명을 한 뒤에야 더 이상 나를 세상에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_경계
저자는 프리다이빙을 익히고 바다를 배워가며 모르는 것들에 대해, 나 아닌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특히 갈라파고스섬에서 해양동물을 관찰하는 시인이자 해양생물학자인 데이비드 화이트의 말을 새기며 “나 자신에게서 풀로, 나무로, 새로, 거북이로, 고래로, 바다로, 자신을 확장해가는 그의 마음을 상상하려고 애쓰면서” 경계에 대한 고민을 한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과 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계 사이에서만 무언가 ‘진짜로’ 일어난다는 그의 말을 따라 모르는 마음을 알아가고, 그 목소리를 찾기 위해, 잠수를 한다.
“어쩌면 바다는 텅 비어 있다. 나는 잠수를 할 때마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을 배우고 나온다. 그리고 부이로 올라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웠는지 말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는다. 어제의 깨달음은 오늘의 편견이 될 수도 있고 오늘은 슬펐지만 내일은 기쁠 수도 있다. 그냥 계속 해야 할 일을 한다. 다만 전보다 나다운 방식으로. 다음 잠수에서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준비호흡을 시작한다. 몸에 특별히 긴장이 서린 곳은 없는지 느껴본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또 내쉬며, 편안하게 릴랙스….”
작가. 프리다이버. 하마글방의 글방지기. 무언가 되고 싶어 아득바득 살았는데 막상 좋아진 건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알려준 것들이다. 글쓰기와 바다가 그래서 좋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을 썼고, 함께 지은 책으로 『상처 퍼즐 맞추기』,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걸어간다, 우리가 멈추고 싶을 때까지』가 있다.